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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해결사로 나선 드라마…속시원하십니까?

등록 2021-04-30 05:00수정 2021-04-30 07:55

‘로스쿨’ ‘마우스’ ‘모범택시’
실제사건 모티브 드라마 잇따라
사적 복수 통해 법의 허점 비판
피해자들에게 상처 줄 우려도
“공익성 등 가이드라인 필요”
<로스쿨>의 한 장면. 방송화면 갈무리
<로스쿨>의 한 장면. 방송화면 갈무리

“형법 제10조 2항에 의해 ‘주취감경’ 할 수밖에 없음에 판사로서 자괴감이 듭니다.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는 조항은 내 뼈에 사무칠 것입니다.”

지난 15일 방영한 드라마 <로스쿨>(제이티비시) 2화. 김은숙(이정은) 판사는 이만호 사건 2심 최종 판결에 앞서 이렇게 호소했다. 미성년자 성폭력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형을 받은 이만호는 음주 상태였다는 이유로 2심에서 12년형으로 감형받았다. 이는 2008년 실제 있었던 ‘조두순 사건’을 모티브 삼은 것이다. 당시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2018년 심신미약 ‘의무 감경’에서 ‘판사 재량껏 감경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 <로스쿨>의 이 장면처럼 실제 사건을 빗대 현실의 법을 비판하는 드라마들이 최근 잇따르고 있다.

&lt;마우스&gt;의 한 장면. 방송화면 갈무리
<마우스>의 한 장면. 방송화면 갈무리

■ 실제 사건 빗대 현실 비판

지난해 12월 조두순 출소가 불을 지핀 것일까. 조두순을 연상시키는 인물을 등장시켜 현실을 비판하는 드라마들이 잇따랐다. <마우스>(티브이엔)에선 10년형을 살고 출소한, 조두순의 분신 ‘강덕수’가 피해자에게 접근한 것에 대해 항의하는 형사 고무치(이희준)에게 전자발찌 업무 담당 경찰관은 말한다. “강덕수가 관할 지역 안에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모범택시>(에스비에스)도 조두순을 연상시키는 ‘조도철’이 출소하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두 드라마 모두 조두순을 비롯한 실제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 닮았다. <마우스>에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유영철 사건을 모티브로 한 사건들이 등장한다. <마우스>의 최란 작가는 <피디수첩> 등 시사교양 작가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모범택시>는 아예 모든 소재가 실제 사건이다. 극 중 유데이터 박양진 회장 사건은 국내 웹하드 업체 양진호 회장 사건의 판박이다. 이제는 고인이 된 한 대기업 회장의 성매매 사건, 엔(n)번방 사건, 진주아파트 방화 사건까지 다뤘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오래 연출한 박준우 피디는 <모범택시> 제작발표회에서 “현실에서 제대로 처벌되지 않은 사건이 등장한다. 피해자들의 억울함과 고통, 정의가 이뤄지지 못하는 데 대한 울분을 녹여낼 것”이라고 말했다.

&lt;모범택시&gt;의 한 장면. 방송화면 갈무리
<모범택시>의 한 장면. 방송화면 갈무리

■ 해결법은 ‘사적 복수’

이들 드라마가 택한 해결법은 ‘사적 복수’다. 이를 통해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마우스>에서 사이코패스 정바름(이승기)은 강덕수 등 범죄자들을 살해한다. 이 또한 범죄이지만, 꼬마가 강덕수를 죽인 정바름에게 “구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장면은 법을 믿지 못하는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모범택시>는 아예 ‘사적 복수’가 주제다. 피해자 유가족이 연대해 택시 회사에서 일하며 자신들처럼 범죄 피해를 당한 이들을 대신해 복수한다. 무지개운수 대표 장성철(김의성), 직접 택시를 운전하며 복수하는 김도기(이제훈), 택시 정비사인 기술자 최 주임(장혁진)과 박 주임(배유람), 아이티(IT) 전문가인 경리과 직원 안고은(표예진)이 중심이다. 최 주임과 박 주임은 2019년 진주아파트 방화 사건 피해자 유가족, 안고은은 엔번방 사건 유가족으로 나온다.

“드라마에서라도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다 해결해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인지 반응도 좋다. <모범택시>는 24일 방송 시청률이 16%까지 올랐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실화를 가져와) 피해자들의 엄청난 고통에 견줘 잘못을 저지른 자들에 대한 처벌이 과연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시청자들에게 던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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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택시>의 한 장면. 방송화면 갈무리

■ 통쾌하지만…피해자 상처 우려도

시청자들에겐 통쾌함을 주지만, 피해자가 사건을 다시 떠올리며 고통스러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 이에 대해 드라마 제작진은 “특정 사건을 떠올리고 대본을 쓴 경우는 (유가족과 피해자에게) 양해를 구하는 등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세심하게 신경썼다”고 말했다. 또 “법이 해결해주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드는 작품인 만큼 실제 사건을 재미를 위해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실존 인물이 연관된 범죄물인 만큼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화 바탕 웹소설 등 콘텐츠를 만드는 팩트스토리의 고나무 대표는 “실화 소재 드라마·영화는 기획개발 과정에서 법적·윤리적 문제를 점검해야 한다. 명예훼손이나 초상권 침해 가능성 체크는 물론, 범죄 피해자에 대한 묘사도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공식적 가이드라인은 존재하지 않지만, 지금까지 나온 실화 소재 영화, 드라마 또는 소설 판례가 간접적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며 “한국의 여러 판례는 드라마·영화뿐 아니라 웹소설·웹툰도 실화를 다룰 경우 공익성을 고민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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