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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대구서 ‘7세기 블랙박스’ 신라 목간문서 11점 첫 출토

등록 2021-04-28 09:37수정 2021-04-28 20:54

팔거산성에서…삼국통일 직후 천도 추진했던 곳
보리·벼 등 곡식 이름 기록…물자조달 보고용 추정
‘王私’(왕사) ‘下麦’(하맥) 정확한 의미는 아직 안갯속
발굴된 1호 목간의 적외선 사진. ‘임술년안거례감마곡’(壬戌年安居礼甘麻谷)이란란 글자들이 판독된다. 임술년은 602년, 감마곡은 옛 지명으로 추정된다.
발굴된 1호 목간의 적외선 사진. ‘임술년안거례감마곡’(壬戌年安居礼甘麻谷)이란란 글자들이 판독된다. 임술년은 602년, 감마곡은 옛 지명으로 추정된다.

7세기 말 신라 신문왕이 삼국통일 직후 경주를 대신하는 새 도읍지로 천도 계획을 추진했던 옛 ‘달구벌’(대구) 지역에서 당대의 곡식 이름들이 줄줄이 적힌 나무쪽 문서(목간)들이 쏟아져 나왔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삼국시대 군사방어 유적인 대구 팔거산성(대구광역시 기념물)에서 7세기 초반 신라 사람들이 물자 조달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목간 11점이 나왔다고 28일 발표했다. 대구 지역에서 처음으로 고대 목간이 다수 출토됐을 뿐 아니라 출토지인 팔거산성이 천도 계획 이전 달구벌 지역의 군사·행정 거점 구실을 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나 고고역사학계의 관심이 쏠린다.

연구소가 낸 자료를 보면, 목간들은 매장 문화재 조사기관인 화랑문화재연구원이 지난해 10월부터 대구시 노곡동 산1-1번지에 있는 산성을 조사하다 경내 집수지(물을 모은 시설) 유적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이후 연구소가 연구원 쪽에서 발견된 목간 11점을 넘겨 받아 표면을 자연광·자외선으로 촬영하고, 두 차례 판독 자문회의 등 기초 조사를 벌여 실체를 파악하게 됐다.

조사 결과, 전체 목간 11점 가운데 7점에서 글자 또는 글자의 흔적이 나타났다. 판독해보니 제작 시점을 추정할 수 있는 연대명인 간지(干支)와 ‘麦’(맥·보리), ‘稻’(도·벼), ‘大豆’(대두·콩) 따위의 곡식 이름 등이 확인됐다고 연구소 쪽은 설명했다. 8점에선 목간 한쪽에 끈을 묶기 위해 나무를 잘라낸 흔적이 나왔고, 이들 가운데 일부 목간에서는 실제로 끈을 묶었던 자취도 발견됐다.

특이한 건 목간 4점에서 3종류의 다른 간지가 발견됐다는 점이다. ‘임술년’(壬戌年)과 ‘병인년’(丙寅年), 글자가 있는 부분이 파손돼 간지 중 두 번째 글자 일부와 세 번째 글자 ‘년’(年)만 보이는 미지의 간지다. 임술년과 병인년은 각각 602년과 606년으로 추정되는데, 목간을 작성한 시점으로 보고 있다. 목간에 적힌 보리, 벼, 콩 등의 곡식 이름들은 당시 산성에 물자가 집중된 상황과 성이 지닌 행정적·군사적 구실을 짐작하게 한다. 목간에는 ‘王私’(왕사)와 ‘下麦’(하맥)이라는 표현도 등장하는데, 정확한 의미는 아직 안개에 싸여 있다.

목간에 끈을 묶은 흔적(사각형 표시된 부분).
목간에 끈을 묶은 흔적(사각형 표시된 부분).

목간에 담긴 문자들의 내용이 상당부분 곡식과 관련되고, 신라의 지방 거점이 대부분 산성이었다는 점, 기존 신라 목간 출토지 대부분이 군사와 행정 거점이라는 점 등에서 팔거산성도 다른 목간 출토 지역처럼 군사적 요지로 물자가 집중됐던 지방 거점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구소 쪽은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보면, 목간이 제작될 무렵인 7세기 초반은 백제가 본격적으로 신라를 침공하기 시작하는 시점”이라면서 “서쪽 지방 방어가 중요해진 상황에서 낙동강과 금호강의 합류 지점 인근에 자리하면서 주변의 수로나 육로를 통제하던 팔거산성의 입지가 주목받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팔거리현’(八居里縣)이란 대구의 옛 지명이 나오는데, 그동안 팔거산성이 위치한 대구 칠곡 지역을 가리킨다고 막연히 추정만 해왔다. 이번에 출토된 목간을 통해 칠곡 지역 중심의 금호강 하류와 낙동강이 합류하는 지역을 통제하던 곳이 팔거산성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연구소 쪽의 설명이다.

목간이 출토된 팔거산성의 집수지 2호 토층 전경.
목간이 출토된 팔거산성의 집수지 2호 토층 전경.

목간이 출토된 당시 모습.
목간이 출토된 당시 모습.

팔거산성에서는 지난 2015년 대구 북구청이 정비 복원을 위해 지표 조사를 벌인 것을 시작으로 2018년 시굴 조사를 거쳐, 2020년 10월부터 학술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발굴 조사에서는 석축 7기, 추정 집수지 2기, 성 안의 물을 흘려 보내는 통로인 수구(水口) 등이 드러났다. 석축은 북쪽 경사면에 조성됐고, 집수지는 남쪽 평평한 곳에 두 곳이 확인된다. 신라 목간이 출토된 추정 집수지 2호는 길이 7.8m, 너비 4.5m, 높이 약 3m로 남북으로 경사지게 땅을 파고 목재 구조물을 설치한 뒤 돌과 진흙을 사용해 뒤를 채운 것이 특징이다.

대구 팔거산성 유적 전경.
대구 팔거산성 유적 전경.

신라 지방 유적에서 목간이 출토된 사례는 인천의 계양산성, 경기도 하남의 이성산성, 경남 함안의 성산산성 등이 있다. 지난 2019년 11월에는 대구 인근인 경산 소월리에서 6세기 신라 토지 관련된 정보를 담은 역대 최대 크기의 목간이 발견되기도 했다. 연구소와 연구원 쪽은 28일 낮 현장 조사 성과와 출토 목간에 대한 기초 조사 내용을 공개하는 현장 설명회를 연다. 두 기관은 앞으로 출토된 목간과 추정 집수지에 대한 보존 처리와 추가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도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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