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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풀타임 예술가’가 직업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꿈에 동참해주세요

등록 2021-04-10 11:16

[토요판] 강유가람의 처음 만난 다큐
⑦ 불빛 아래서
<불빛 아래서>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불빛 아래서>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얼마 전 어느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게 되었다. 극장의 미래에 대해 독립영화인의 시선으로 이야기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코로나19로 많은 산업이 피해를 봤다. 특히 영화와 음악, 공연업계는 큰 타격을 받았다. 극장의 관객이 70%가량 감소했고,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은 물론 영화를 틀고 관객을 만날 자리를 가꾸던 사람들의 자리도 점점 좁아졌다.

그 인터뷰에서 나는 내가 겪은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도 공유했다. 케이티앤지(KT&G)에서 사회공헌사업으로 운영하던 극장인 상상마당 시네마가 휴관을 거듭한 끝에 결국 영화사업부 직원들을 권고사직 처리한 것은 상징적인 일이었다. 나 역시 상상마당 시네마가 배급하기로 한 다음 영화의 개봉을 1년 가까이 미뤄왔던 터라 이런 상황이 충격이었다. 관객들이 에스엔에스(SNS) 운동으로 함께해준 덕분에 케이티앤지는 상상마당 시네마를 폐관하지는 않겠다고 발표했고, 현재는 새로운 운영사를 공모 중이다. 하지만 그 역시 이전과 같은 규모는 아닐 것이라는 사실이 어두운 극장 산업의 전망을 보여준다.

 그 인터뷰 영상이 공개된 뒤 어느 날 무심코 댓글들을 훑어보던 중 유독 한 댓글이 눈에 와 박혔다. ‘예술을 하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은 줄 알라’는 말. 그렇다. 나는 축복받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축복받았기에 문화예술인이 속한 기형적인 구조와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비대면 상황이 늘어나고, 인간적인 관계망이 변화할수록 예술과 문화의 힘은 더욱 중요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인간을 위로하고 인간의 삶 자체를 노래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의 삶의 조건도 중요하다.

 다큐멘터리 <불빛 아래서>(2017, 감독 조이예환)는 홍대 인디신에서 주목받았던 인디뮤지션들의 꿈과 고군분투기를 통해 인디뮤직신의 현실과 문화예술인의 삶을 그려냈다. 카메라는 ‘로큰롤라디오’, ‘웨이스티드 쟈니스’, ‘더 루스터스’라는 세 그룹의 결성 초기부터 이들이 음악을 하기 위해서 버티는 시간들을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웨이스티드 쟈니스는 이름을 알릴 수만 있다면 오디션 프로그램이든 무엇이든 씩씩하게 경험해나간다. 생계를 위해 레슨을 해야 하는 시간 속에서 ‘록’에 대한 열망이 점점 흐려지기도 한다. ‘록스타’에 대한 열망이 강했지만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등의 이유로 더 루스터스는 영화 도중 해체를 결정한다. 로큰롤라디오의 멤버들은 결성 초기 홍대 인디신의 루키로서 각광받는다. 해외 투어를 가고, 록 페스티벌에 나갈 기회도 주어진다. 자신들이 홍대 인디신 밴드 상위 10% 정도 안에는 들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로큰롤라디오의 멤버들은 무엇 때문에 음악을 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돈 때문에 음악을 한다. 내 직업이니까. 그리고 그걸로 돈을 벌고 싶으니까’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렇게 자부심 가득한 밴드 일로 월 100만원을 벌고 싶지만 그것은 여전히 난망한 일이다. 2천만원을 들여서 녹음한 앨범의 저작권 수입은 4명 합쳐서 60여만원. 웃고 있는 멤버들 얼굴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나 역시 얼마 전 정산받은 다큐멘터리의 저작권 수입은 연 10만원 남짓이었다. 어떻게 먹고사느냐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외주제작 일도 하고, 강의도 하고, 이렇게 글도 쓴다. 그래도 너는 하고 싶은 일 하잖아라는 말을 종종 듣지만, 실제로 문화예술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 예술만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떼돈을 벌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걸로 생계를 조금씩 이어가면서 자신의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과 살아가고 싶다는 꿈, “그 꿈에 동참해주세요”라는, 웨이스티드 쟈니스 보컬 안지원의 멘트가 마음을 울린다. 사실 근원적인 문제는 승자독식의 기형적인 플랫폼 구조와 미디어, 독과점의 구조 등 시스템에 있다. 그리고 이렇게 팬데믹과 같은 재난 상황이 닥치면 그 상황을 견딜 자본이 없는 예술인들은 처참하게 터전 자체를 잃어가게 된다.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갈 때쯤 출연자 모두들 안녕들 하신지, 걱정이 되었다. 극장과 공연장은 점점 문을 닫고 있다. 다시 우리가 일상을 되찾았을 때 우리가 그들의 꿈에 동참할 기회가, 혹은 우리가 그들이 꾸었던 꿈을 함께 즐겼던 그 순간이 돌아올 수는 있는 걸까.

영화감독

▶ 강유가람 감독은 <모래>(2011) <이태원>(2016) <시국페미>(2017)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볼만한 다큐멘터리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쓴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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