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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거리두기 차별’에 우는 음악가…스크린으로 간 밴드

등록 2021-03-29 04:59수정 2021-03-29 07:39

[인디밴드 코로나시대 생존법]
밴드 ‘새소년’ 공연 CGV서 상영
밴드 ‘기프트’도 5개 도시서 개봉
CJ ‘아지트 라이브’ 시리즈 일환

국내밴드 공연실황, 영화관서 처음
국카스텐도 전국 52개관 관객맞이
좌석 매진 잇따라…관객 “갈증 풀려”

클래식·뮤지컬보다 집합제한 고강도
100명 이상 모이는 콘서트 불가능
돌파구 찾는 시도·대책 촉구 잇따라
극장에서 상영된 밴드 새소년의 ‘아지트 라이브 프리미엄’ 장면. 씨제이문화재단 제공
극장에서 상영된 밴드 새소년의 ‘아지트 라이브 프리미엄’ 장면. 씨제이문화재단 제공

‘와~, 이게 얼마 만이야?’

지난 20일 저녁 서울 씨지브이(CGV) 용산아이파크몰 상영관에 들어가니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거리두기로 비워둔 좌석을 제외하곤 모든 자리가 꽉 찬 것이다. 지난해 초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뒤로 이런 광경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대체 무슨 영화이기에? 놀라지 마시라. 이날 사람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은 건 그냥 영화가 아니다. 밴드 새소년의 ‘공연’이다.

“안녕하세요? 새소년입니다. 비록 화면 너머 계시지만, 저희 가사, 연주, 에너지가 온전히 잘 닿기를 바랍니다.” 붉은 머리의 밴드 리더 황소윤(기타·보컬)이 스크린 속에서 말했다. 실제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았다. 이어 박현진(베이스), 유수(드럼)와 함께 연주를 시작했다. 지난해 2월 발표한 미니앨범(EP) <비적응>의 수록곡 ‘이방인’. 온통 흰색인 우주선 내부 같은 공간에서 연주하는 이들을 공연장 무대가 아닌 스크린으로 보는 게 처음엔 어색했지만, ‘비적응’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연주자들의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내쉬는 숨결까지 잡아낼 정도로 바짝 당겨 찍은 카메라, 360도로 몸을 휘감는 ‘빵빵한’ 사운드가 몰입도를 극도로 끌어올렸다.

극장에서 상영된 밴드 새소년의 ‘아지트 라이브 프리미엄’ 장면. 씨제이문화재단 제공
극장에서 상영된 밴드 새소년의 ‘아지트 라이브 프리미엄’ 장면. 씨제이문화재단 제공

첫 곡이 끝나자 극장 안에 정적이 흘렀다. 누군가가 소심하게 “오~” 하고 소리를 지르자 또 다른 누군가가 살짝 웃었다. 새소년이 두번째 곡 ‘집에’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느리고 장중한 ‘이방인’보다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곡이 흐르자 객석 여기저기 웅크려 있던 검은 그림자들이 고개를 까딱이고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시동이 걸린 모양이었다. 두번째 곡이 끝나니 박수와 함성이 터졌다. 관객들도 적응을 마친 것이다.

새소년은 <비적응> 수록곡을 연이어 들려줬다. 지난해 미국의 권위 있는 음악 웹진 <피치포크>는 이 앨범을 ‘올해의 록 앨범 35’에 선정했다. 새소년은 앨범 발매를 기념해 10개국 20개 도시를 도는 월드투어를 하려 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취소해야 했다. 국내 공연도 못 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앨범 제작을 지원해준 씨제이(CJ)문화재단과 머리를 맞댄 결과, 극장 상영용 공연 영상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 1시간30분 분량의 영상을 만들어 ‘아지트 라이브 프리미엄’이란 이름을 붙였다. 씨제이문화재단이 이전부터 유튜브 채널에 꾸준히 올려온 ‘아지트 라이브’ 시리즈를 극장판으로 확장한 것이다.

극장에서 상영된 밴드 새소년의 ‘아지트 라이브 프리미엄’ 장면. 씨제이문화재단 제공
극장에서 상영된 밴드 새소년의 ‘아지트 라이브 프리미엄’ 장면. 씨제이문화재단 제공

극장에서 상영된 밴드 새소년의 ‘아지트 라이브 프리미엄’ 장면. 씨제이문화재단 제공
극장에서 상영된 밴드 새소년의 ‘아지트 라이브 프리미엄’ 장면. 씨제이문화재단 제공

새소년과 또 다른 밴드 기프트의 ‘아지트 라이브 프리미엄’이 지난 11~21일 서울, 인천, 대구, 부산, 광주 등 5개 지역 극장에서 상영됐다. 유투(U2)·메탈리카 등 외국 유명 밴드나 방탄소년단 등 아이돌 스타, 김호중·송가인 등 트로트 가수의 공연 실황을 극장에서 상영한 적은 있지만, 국내 밴드 음악을 다큐 영화가 아닌 공연 실황으로 상영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밴드 멤버들은 전국을 돌며 무대 인사를 다녔다. 새소년의 서울 상영회는 모조리 매진돼 추가 상영까지 했다. 열흘간 새소년의 공연을 본 이들은 2300여명. 현행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100명 미만 규모로 공연을 했다면, 24차례 공연한 것과 맞먹는 셈이다.

“앨범을 내고 너무 오랫동안 공연을 못 했는데, 이렇게라도 무대를 선보이게 돼 후련해요. 우리도 오랜만에 에너지를 분출하니 개운하네요.” 황소윤이 인터뷰 영상에서 말했다. 가장 최근 발표한 신곡 ‘자유’를 마지막으로 공연을 마치고, 스크린에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객석에서 누구 하나 자리를 뜨지 않았다. 새소년 응원 타월을 가지고 온 최예진(23)씨는 “재작년 말 새소년 공연을 보고 나오는 길에 이 응원 타월을 샀는데, 이후 공연이 계속 취소돼 쓸 일이 없다가 오늘에야 처음 들고 왔다. 이렇게라도 공연을 즐길 수 있어 조금이나마 갈증이 풀렸다”고 말했다. 김모란 씨제이문화재단 과장은 “이번에 상영한 영상은 4월 말이나 5월 초에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한차례 공개할 예정이다. 반응이 좋아 아지트 라이브 프리미엄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전했다.

극장에서 상영된 밴드 기프트의 ‘아지트 라이브 프리미엄’ 장면. 씨제이문화재단 제공
극장에서 상영된 밴드 기프트의 ‘아지트 라이브 프리미엄’ 장면. 씨제이문화재단 제공

밴드 국카스텐의 공연 실황을 담은 <국카스텐 콘서트 실황: 해프닝>도 지난 24일 개봉해 전국 씨지브이 52개 관에서 상영 중이다. 지난해 1월 발매한 공연 실황 디브이디(DVD) <해프닝>을 대형 스크린과 5.1채널 사운드 시스템을 갖춘 극장 환경에 맞게 재편집한 것이다. 국카스텐 소속사 인터파크엔터테인먼트의 김은혜 대리는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진 이후 단독 공연을 못 하고 있다. 이미 디브이디를 집에서 본 분들도 극장에서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라고 극장판을 개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밴드들이 공연장 대신 극장으로 가는 건 코로나19 사태 탓에 100명 이상 모이는 공연을 할 수 없어서다. 정부는 지난 1월31일 발표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서 대규모 콘서트를 설명회, 공청회, 집회 등과 같은 행사로 분류하고 수도권은 49명, 비수도권은 99명까지만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지난 2월 말 뮤지컬, 클래식 등 공연은 ‘동반자 외 거리두기’를 하면 규모와 상관없이 할 수 있도록 완화했지만, 대중음악 공연은 별도 지침 없이 지자체와 협의해 개최 여부를 정하도록 했다. 지자체는 이전처럼 대중음악 공연을 행사로 보고 현행 사회적 거리두기(수도권 2단계, 비수도권 1.5단계) 지침에 따라 99명까지만 허용하고 있다.

지난 24일 개봉해 상영 중인 &lt;국카스텐 콘서트 실황: 해프닝&gt; 포스터. 인터파크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 24일 개봉해 상영 중인 <국카스텐 콘서트 실황: 해프닝> 포스터. 인터파크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에 따라 대중음악 공연들이 잇따라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3월18일~4월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가수 이소라 콘서트는 결국 공연을 일주일여 앞둔 지난 10일 취소를 알렸다. 반면 같은 공연장에서 뮤지컬 <위키드>는 아무 문제 없이 공연되고 있다. 앞서 이달 초 아이돌 그룹 몬스타엑스 공연도 취소됐으며, ‘미스터트롯 톱6’ 콘서트, ‘싱어게인 톱10’ 콘서트도 다음달로 연기됐다.

공연장이나 지자체마다 기준이 오락가락하는 것도 문제다. 가수 폴킴은 지난 12~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100명 이상 모이는 공연을 했다. 공연에 클래식 현악기 콰르텟을 편성하고 크로스오버 공연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크로스오버 그룹 라포엠이 27~28일 서울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하려던 공연은 지자체의 불허로 다음달로 연기해야 했다. 반면 크로스오버 그룹 포레스텔라는 26~2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했다. 대중음악 관계자들이 결성한 ‘대중음악공연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24일 공식 입장을 내어 “생존권을 막고 있는 공연 간 차별을 없애달라. 다른 장르 공연과 같은 기준으로 집객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촉구했다.

규모가 작은 서울 홍익대 앞 라이브클럽에서도 공연을 제대로 못 하기는 마찬가지다. 라이브클럽은 대부분 일반음식점으로 등록하고 공연을 해왔는데, 최근 마포구청이 일부 라이브클럽을 단속하면서 공연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현행 방역지침상 일반음식점에서 공연할 수 없는 건 맞지만, 실제 공연장처럼 운영되는 라이브클럽을 여느 일반음식점과 같은 잣대로 단속하는 건 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이 인디 밴드 공연을 “칠순잔치”에 빗댄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큰 공분을 사고 있다. 인디 음악가들과 이들 음악을 좋아하는 시민들은 ‘공연음악 생존을 위한 연대모임’을 결성하고 지난 24일부터 ‘마포구청장에게 보내는 공개 질의서’ 연서명운동을 벌이며 사과와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나름의 돌파구를 찾는 시도도 나온다. 밴드 데이브레이크는 어떻게 하면 취소 없이 공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소속사 엠피엠지(MPMG) 사옥 라운지에서 관객 49명까지만 받는 공연을 지난해 9월부터 지난 1일까지 21차례나 했다. 그럼에도 이런 시도나 공연 실황 극장 상영 등이 제대로 된 공연을 대신할 수 없다고 대중음악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종현 엠피엠지 대표는 “근본적으로 정부가 하루빨리 대중음악 공연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만들어 업계가 고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대우 라이브클럽협동조합 사무국장은 “라이브클럽에 대한 법을 개정하면 좋겠지만 언제 될지 모르는 상황인 만큼, 방역수칙을 잘 지키는 라이브클럽에 한해 공연할 수 있도록 하는 유연한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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