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물납제,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10여년 전부터 단편적으로 논의됐던 미술품 물납제 논의는 지난 연말 시작된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컬렉션 평가 작업을 계기로 올 상반기 문화계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 건물과 그 앞에 설치된 알렉산더 콜더의 채색 조형물.
“봐요. 이건희 회장 미술품은 우리가 제일 많이 감정하고 평가했어요.”지난 3일 낮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3층의 2021 화랑미술제 개막 전시장. 현장 부스에서 기자를 불러세운 한국화랑협회의 한 간부는 휴대전화를 내밀어 화면의 문자를 보여주면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최근 미술계에서 이슈가 된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미술품 컬렉션 감정평가 작업을 세 개의 주요 미술품 사설 감정기관들이 분담한 현황이 기록되어 있었다. 1만점 넘는 컬렉션 가운데 해외 미술품과 한국 근현대화 작품은 화랑협회와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각각 감정했고 골동품·고서적·고서화는 화랑협회와 미술시가감정협회,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가 나눠 맡았다는 내용이었다. 이 간부는 “전체적으로 그림에 관한 것은 화랑협회가 모두 다 도맡았다. 삼성가에서 우리를 가장 많이 신뢰한다는 얘기”라며 “그런데도 일부 다른 단체에서 자기들이 제일 많이 감정했다는 헛정보를 퍼뜨린다. 언론이 잘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관계자는 <한겨레>에 전혀 다른 말을 전했다. 그는 화랑협회 간부의 말을 두고 ‘터무니없는 발언’이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1만3000여점에 달하는 전체 작품을 감정한 것은 우리 기관이고, 다른 두 협회는 영역을 나눠 6500여점씩 감정한 것으로 안다”며 “전체 컬렉션을 제대로 살피고 총합한 것은 센터가 유일하다”는 주장을 폈다. 2021년 새봄, 컬렉터들이 몰려들며 활기를 찾기 시작한 한국 미술시장에서는 한국 미술품 감정의 대표 기관이라고 자처하는 두 단체 사람들이 이건희 컬렉션을 서로 더 많이 평가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역량을 과시하는 기묘한 신경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 이 신경전의 배경에는 지난달부터 문화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미술품·문화재 물납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5월21~2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사옥에서 경매를 앞두고 사전 공개됐던 당시 간송 컬렉션 소장 불상 2점 모습. 간송 소장품의 상업경매 출품과 뒤이은 유찰은 문화계에 충격을 던지며 가라앉았던 물납제 논의의 물꼬를 텄다.
■ 간송 불상이 물꼬 트고 이건희 컬렉션이 불붙이고
미술품 물납제 도입과 관련해 주된 논의 대상으로 떠오른 초고가 미술품들. 리움이 소장한 추상표현주의 거장 마크 로스코의 대작 <무제>(1956).
■ 일정상 이건희 컬렉션에는 적용 어려워
지난해 11월부터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컬렉터 손창근씨의 기증을 기념해 14년 만에 전모가 공개된 추사 김정희의 명작 <세한도>의 전시 모습. <세한도>의 기증 전시는 문화유산의 국외 유출을 막고 공공 문화자산으로 국민이 공유하자는 취지의 물납제 관련 논의를 활성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 왜 ‘올인’하나? 시장의 덩치와 격이 달라진다
지난해 손창근씨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추사 김정희의 명작 <세한도>의 앞쪽 표제 부분.
■ ‘투명감정’이 관건…유산 보존 대의 지켜야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 중앙대교당에서 열린 ‘문화재·미술품 물납제 도입에 관한 세미나’ 행사 모습. 한국고미술협회, 한국미술협회, 한국화랑협회가 공동 주최한 이날 세미나에서는 미술시장과 학계 관계자들이 나와 물납제 도입의 필요성과 선결적 요건에 대한 발제와 토론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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