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갑작스럽게 환경이 변하면 사람들이 원래 가졌던 성품이 더욱 증폭될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한 지 벌써 일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비대면, 재택근무, 원격수업, 사회적 거리두기, 밀접 접촉자…. 이전에는 잘 사용하지 않던 단어들이 누구에게나 익숙해지게 되고 이제는 마스크와 알코올소독액이 생활필수품이 되었습니다. 변화의 와중에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예민해지면서 예전부터 내재해 있던 자신의 모습들이 조금씩 더 증폭되어 나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40대 부부인 영미씨와 정식씨도 그렇습니다.
영미씨는 젊을 때부터 감성이 풍부하고 섬세한 편이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책을 읽으면 내용에 몰입해서 자신이 주인공인 것처럼 눈물을 흘리며 쉽게 감정에 동화되는 매우 예민한 사람이지요. 작은 소리에 쉽게 놀라기도 하고 사소한 말에도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평소에도 다른 사람보다 높은 수준으로 긴장이 유지되는데, 코로나로 인해 예민 지수가 더욱 높아지면서 영미씨는 이따금 폭발 직전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 수업으로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지내게 되면서 아이들 공부도 시켜야 하고 층간소음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삼시세끼를 챙겨야 했습니다. 더욱이 정식씨처럼 매우 꼼꼼한 남편이 재택근무를 하게 된다면 무척 힘든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남편인 정식씨는 영미씨와 동갑으로, 금융 계통 회사의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정식씨는 무척 꼼꼼하고 완벽주의적인 사람입니다. 직장에서는 유능하고 성실한 직원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꼼꼼한 성격 덕에 업무에 실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 컴퓨터”라는 별명처럼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에는 약합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그의 꼼꼼함은 무척 심해졌습니다. 하루 종일 집안을 쓸고 닦으며 아파트 현관 주위와 화장실을 매일 락스로 닦고 운동화도 매일 세탁했습니다.
문제는 정식씨가 영미씨에게도 집안 청소와 소독에 동참하라고 요구하며 시작되었습니다. 한번은 영미씨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정식씨가 텔레비전을 꺼버리고 당장 집을 치우라며 영미씨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영미씨는 그 소리에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고 심하게 어지러움을 느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도 답답해지면 창문을 자주 열었는데 그럴 때마다 정식씨는 바이러스가 들어온다며 바로 문을 닫았습니다. 서로 언성을 높이는 일이 잦아지면서 두 사람은 더 이상 함께 지내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습니다.
예민한 영미씨에게는 남편의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몇배로 크게 들렸을 겁니다. 감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사람은 소리에 특히 민감합니다. 음악을 하는 분들이 아주 민감한 귀를 가지고 작은 음의 차이도 파악하는 것처럼요. 정식씨가 내지른 크고 날카로운 목소리는 영미씨의 교감신경계를 최대로 활성화해 긴장을 높이고 심박출량도 급격히 증가시킵니다. 이러한 현상으로 머리가 핑 돌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던 것입니다. 공황발작이 일어난 것이지요. 남편의 지나친 결벽증 탓에 숨이 막힐 것 같은 답답함을 자주 느꼈고, 무기력해지고 자주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남편 얼굴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소원이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영미씨의 상태에 대해서 심층적인 검사를 해보았습니다. 먼저 폐나 심장 검사에서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뇌에 이상이 있는지 자기공명영상(MRI)과 자기공명혈관조영술(MRA)을 통해 확인해보았습니다. 엠아르아이는 뇌의 모양을 보기 위한 검사이고, 엠아르에이는 뇌혈관을 보기 위한 검사입니다. 하지만 엠아르아이 기계 안에서 심한 공황발작 증상을 일으켜 중간에 촬영을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공황 증상은 버스·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터널·극장·대형마트·비행기 등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운 장소에 있을 때 흔히 발생합니다. 공황이 발생하면 우리 뇌는 평소에 위험하지 않은 소리나 자극을 민감하게 느끼게 되고 응급 상황에 대응하는 교감신경계를 활성화시킵니다.
엠아르아이와 엠아르에이상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생체신호를 측정하는 바이오피드백 검사를 시행했을 때 스트레스 상황에서 갑자기 호흡수와 맥박과 근긴장도가 증가하는 특징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심리검사에서는 우울감과 ‘예기불안’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불안감과 긴장감이 상승하면서 평소에도 에너지 소모가 크고, 쉽게 깜짝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항상 긴장하다 보니 집중력이 떨어져서 방금 들은 것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사람 이름을 생각해내지 못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우울증으로 집중력 저하가 온 것일 뿐 치매 초기에 보이는 단기기억의 저하나 방향감각의 저하는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감정 기복이 심해지면 아침에 더 늦게 수면 상태에서 깨게 됩니다. 생체리듬이 오후나 밤으로 밀려, 생활리듬과 생체리듬 시간이 맞지 않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무기력해지고 불면증과 우울증, 공황장애가 올 수도 있습니다.
정식씨는 과도하게 청결에 집착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자신의 불안을 줄이기 위해 해온 것입니다. 이것을 ‘강박행동’이라고 합니다. 결벽증은 강박증의 한 종류인데 병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따금 증상이 심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직업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심한 경우 자신의 에너지를 지나치게 사소하고 필요 없는 것에 집착하게 만들어 가족들이나 동료들까지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정식씨도 영미씨처럼 몸이나 뇌에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심리검사 땐 의자에 무엇이 묻어 있지 않은지 반복해서 확인하고 나서야 앉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과제에서 정식씨는 무척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한가지 일을 반복하는 것은 잘했지만 몇가지 일을 번갈아가면서 수행하도록 하면 전체적인 일의 진행이 매우 느려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불안이 증가하면서 강박행동이 더 심해졌습니다. 스스로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해 반복적으로 강박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강박행동의 다른 증상으로는 수를 반복적으로 센다거나, 집에 있는 물건이 똑바로 놓이게 한다거나, 반복적으로 손을 씻는 행동,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놓는 행동 등이 있습니다.
영미씨와 정식씨를 공통적으로 힘들게 만드는 것은 ‘예민한 마음’이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 탓에 두 사람 모두 이전보다 무척 예민해졌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성향이 강화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영미씨는 원래 감정 기복이 있는 편이었는데 우울하고 불안하면서 숨이 쉬어지지 않고 심하게 어지러움을 느끼는 우울과 공황 증상으로 나타났고, 정식씨는 결벽증이 있는 편이었는데 과도하게 청결에 집착하는 강박 증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성향을 인지하고 이해해주는 것입니다. 예민하고 민감한 사람들은 함께 있으면 서로 의지가 되고 편안한 대상이 가까이 있으면 증상의 호전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이것을 ‘안전기지’라고 하는데 어린아이가 엄마에게서 느끼는 편안함을 어른이 되어서 느끼는 것입니다.
영미씨는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는 공간에서 불안감이 커지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데, 그렇다고 편안하지도 않고 줄곧 불안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게 됩니다. 이럴 때 정식씨가 영미씨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맛있는 것도 먹고, 쇼핑도 같이하면서 신경을 분산시키면 영미씨도 답답한 마음이 많이 편해지고 공황 호전에도 도움이 됩니다. 영미씨에게 의지가 되는 역할을 지속적으로 담당해주면 영미씨는 정식씨를 안전기지로 느끼게 됩니다. 특히, 정식씨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이 영미씨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영미씨는 다시 공황발작이 오지 않을까 지나치게 걱정하기 쉬운데 이것을 ‘예기불안’이라고 합니다. 남편 목소리만 들으면 그때의 공포가 떠오르기 때문에 정식씨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영미씨는 정식씨에게 미운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정식씨가 영미씨에게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이야기하면 영미씨 또한 불필요한 긴장 때문에 소비되는 많은 에너지를 줄일 수 있습니다.
영미씨는 공황발작이 일어나면 바로 자리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천천히 복식호흡을 해야 증상을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정식씨는 청결 강박을 줄이려면 청소 시간을 정해두고 너무 길지 않게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한번 특정 시간에 청소를 하고, 그 외에 하지는 않는 것이 좋습니다. 퇴근 뒤에는 자신의 꼼꼼함도 회사에 남겨두고 집으로 와야 합니다. 자주 명상을 하면서 편안하게 행동해보면 정식씨의 마음뿐 아니라 영미씨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위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가족이 함께 모이게 된 지금이 좋은 기회입니다. 자신을 이해하고 가족을 이해하면 이웃과 직장 동료를 이해하고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힐 수 있습니다.
▶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의 지은이 전홍진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예민한 사람과 둔감한 사람에 관해 설명합니다. 매우 예민하다는 것은 ‘외부 자극의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고 자극적인 환경에 쉽게 압도당하는 민감한 신경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례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모두 가명을 썼습니다. 자세한 것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이 글로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