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보헤미안 랩소디’ 편집 논란
설날 특선 ‘보헤미안 랩소디’ 편성
‘감동의 영화’ 대대적 홍보 했지만
동성 키스 장면 등 싹둑 가위질해
‘15세 관람가’여서 편집했다 해명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지만
이성 키스, 여성 노출은 그대로 방영
삶의 주요 축 범성애자 정체성 실종
민망한 편집으로 성소수자들 모욕
‘보헤미안 랩소디’ 편집 논란
설날 특선 ‘보헤미안 랩소디’ 편성
‘감동의 영화’ 대대적 홍보 했지만
동성 키스 장면 등 싹둑 가위질해
‘15세 관람가’여서 편집했다 해명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지만
이성 키스, 여성 노출은 그대로 방영
삶의 주요 축 범성애자 정체성 실종
민망한 편집으로 성소수자들 모욕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라미 말렉)가 열창하는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위대한 싱어 ‘삶’ 삭제한 편집 그리고, 일이 터졌다. 에스비에스는 프레디 머큐리의 성 정체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대목, 그러니까 프레디 머큐리(라미 말렉)가 남자와 키스하는 장면이나 게이바에 들어가는 장면은 죄다 삭제했고, 뮌헨 파티 장면에서 배경에 걸리는 남성들 간의 키스는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모욕감을 느낀 이들이 항의하자 에스비에스 관계자는 “동성애에 ‘반대’할 의도는 없었”으나, 지상파 방송사에서 가족 동반 시청률이 가장 높은 저녁 시간대에 15세 관람가로 방영된 만큼 신체 접촉 시간이 긴 장면은 편집했노라고 밝혔다. (‘‘보헤미안 랩소디’ 동성 키스신 삭제 SBS 해명 따져보니’, <미디어오늘> 2021년 2월15일. 김예리 기자) 아무래도 인터뷰에 응한 관계자가 회사의 전력을 잘 모르시는 모양이다. 에스비에스는 <아내의 유혹>(2008~2009)을 온 가족이 보는 저녁 7시20분에 15세 관람가로 방영해도 된다고 판단했고, 지금도 <펜트하우스>를 15세 관람가로 방영 중인 방송사인데, 고작 남자들끼리 키스하는 정도가 저녁 시간 15세 관람가 등급에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니.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왼쪽)와 매니저 폴 프렌터(앨런 리치)가 키스하는 장면. 화면 갈무리
그럴 거면 왜 방영했나 프레디 머큐리의 삶에서 퀴어로서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장면들은 지우고 나머지만 취하고 나니 그림이 심하게 민망해진다. 설 명절을 맞이해 프레디 머큐리가 제 인생을 녹여낸 노래들로 시청률은 높이고 싶으니 ‘싱얼롱’ 하면서 보라며 후반 20분간은 영어 가사 자막까지 입혀서 방영했지만, 동성 키스신을 내보냈다가 혐오 세력의 항의를 받을 것은 두렵고 피곤한 일이니 노래 속에 녹아든 인생은 걸러서 내보내겠다는 사고의 흐름은 노골적으로 읽힌다. 그 결과는 닐슨 전국 기준 시청률 6.3%, 설 연휴에 방영된 특선 영화 중 1위였다. 설 대목 장사 잘 끝났으니 나머지 문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걸까?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의 공식적인 문제제기에도, 퀸의 객원 보컬 애덤 램버트의 항의에도, 에스비에스는 아직 별다른 사과의 말이 없다. 하긴, 명색이 서울시장이 되겠다고 나온 거물급 정치인들조차 대부분이 퀴어퍼레이드에 대한 확답을 피하고 얼버무리거나, “안 보고 싶은 사람들의 인권도 생각해야 한다”며 시내 중심부는 피해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인 망발을 일삼고 있는데, 굳이 에스비에스가 먼저 나서서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겠지. 방송사 입장에서야 그저 혐오 세력과의 충돌이라는 피곤한 일을 피하기 위한, 별 뜻 없는 조치였는지 모른다. 혹시라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양복을 차려입고 출석해야 할 수도 있다는 스트레스 또한 크겠지. 편하게 집에서 티브이 보고 글을 쓰는 나 같은 사람이 실무자들의 고충을 다 알진 못할 것이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건, 졸지에 사랑하는 사람과 입을 맞추는 일을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선 보기 불편한 장면’ 취급당하며 그 존재가 지워지고 부정당한 성소수자 동료 시민들이 느꼈을 모욕과 스트레스보다 더 크진 않았을 것이란 사실이다. 명절 특선 영화부터 서울시장 예비후보들까지 앞장서서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지우려고 하는 동안, 성소수자 극작가 한분과 성소수자 인권활동가 한분이 세상을 떠났다. 침묵과 배제를 강요하는 공기 속에서 동료 시민들이 질식해 쓰러져가는 걸 애도하느라 바빠서, 그만 방심위에 호출될 걸 걱정하는 방송사 실무자들의 크나큰 고충을 몰라 뵈었다. 비아냥이 너무 심한가? 아픈가? 이 글이 그렇게 아프면, 존재 자체가 지워진 이들은 얼마나 아팠을까?
▶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TV)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담당 기자가 처음 ‘술탄 오브 더 티브이’라는 코너명을 제안했을 때 당혹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굳이 코너명의 이유를 붙이자면,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무시되거나 간과되기 쉬운 이들을 한명 한명 술탄처럼 모시겠다는 각오 정도로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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