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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가루 날리던 태안 그곳에서…VR로 김용균을 만나다

등록 2021-02-03 04:59수정 2021-02-03 12:39

[MBC ‘너를 만났다 시즌2’ 두번째 이야기]
가상현실·특수영상기술 활용
사진·영상 토대로 작업장 구현
가족 재회 아닌 ‘간접 경험’ 초점
이전과는 다른 VR저널리즘 강조

제작진 “체감도 자체가 다른 체험
산재 관심 없던 제3자가 눈여겨보길
부스 만들어 시민들 체험 권하고파”
가상현실(VR)을 접목한 휴먼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시즌2>(문화방송)가 4일 방송에서 2018년 사망한 고 김용균씨를 다룬다.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했던 그의 죽음 이후 하청 노동자 산재가 사회적 화두에 올랐다. 그가 일했던 노동 현장을 가상현실로 구현해 시청자들이 간접 체험하게 하며 반복되는 사고의 심각성을 알린다.문화방송 제공
가상현실(VR)을 접목한 휴먼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시즌2>(문화방송)가 4일 방송에서 2018년 사망한 고 김용균씨를 다룬다.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했던 그의 죽음 이후 하청 노동자 산재가 사회적 화두에 올랐다. 그가 일했던 노동 현장을 가상현실로 구현해 시청자들이 간접 체험하게 하며 반복되는 사고의 심각성을 알린다.문화방송 제공

죽은 사람은 있는데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지난 1월26일 대전지법 서산지원에서 김용균 사망 사건과 관련한 첫 공판이 열렸다. 그가 2018년 12월11일 새벽,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운송설비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한 지 25개월여 만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그는 별다른 안전 장비도 없이 혼자 일했다. “또 다른 김용균을 만들지 않겠다”던 엄마 김미숙씨의 울부짖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에도 인천 영흥발전소에서 안전 장비 없이 일하던 하청업체 노동자가 숨지는 등 2020년 한 해 동안 882명(고용노동부 잠정 집계)이 산재 사고로 사망했다. ‘위험의 외주화’로 불리는 하청 노동자 산재는 반복되고 있다.

아들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엄마는 그가 어떤 환경에서 일했는지 알게 됐다.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용균의 동료들과 함께 둘러본 공장은 사고가 난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탄가루가 눈처럼 날리고, 컨베이어벨트 쪽은 좁고 어두웠다. 비상 정지 장치마저 줄이 늘어져 있어 평소에는 사용할 수 없고, 비상시에도 원청의 허락이 있어야 당길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아들은 혼자서 숨져갔다. 그러고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니.

‘잊힐 권리’를 논하는 세상에서 절대 잊혀서는 안 되는 이름을 휴먼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문화방송 4일 밤 9시20분)가 다시 한번 각인시킨다. 가상현실(브이아르·VR)과 특수영상기술 등으로 보고 싶은 이들을 복원해 가족과 재회하도록 돕는 내용으로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3월 시즌1에서 희귀병으로 떠난 아이가 엄마와 만났고, 지난 1월21일 시작한 시즌2 1부에서는 남편이 사별한 아내를 만나 팔베개를 해주는 모습으로 또 한번 시청자의 눈시울을 뜨겁게 적셨다. 4일 방송하는 2회 ‘용균이를 만났다’ 편은 지금까지와 다른 ‘브이아르 저널리즘’을 추구한다. 김종우 피디는 “어머니 김미숙씨와 브이아르로 되살아난 김용균씨의 재회가 아니라, 그의 노동현장을 브이아르로 복원해 우리가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제작진은 산업재해에 관심이 없는 제3자가 프로그램을 통해서나마 이 사건을 눈여겨보길 바랐다.

고 김용균씨가 일하던 현장을 가상현실 기술로 복원했다. 예고 영상 갈무리
고 김용균씨가 일하던 현장을 가상현실 기술로 복원했다. 예고 영상 갈무리
문화방송 제공
문화방송 제공
<너를 만났다>는 배우가 모션 캡처에 참여했고, 목소리를 성우와 합성하는 보이스 컨버전 기술을 적용해 최대한 실제와 비슷하게 만들었다. ‘용균이를 만났다’편에서는 앞서 선보였던 두 사례와 달리 브이아르로 구현하는 게 특히 더 조심스럽고 힘들었다고 한다. 어머니한테 받은 김용균의 사진과 영상을 토대로 그를 구현했고, 작업장은 직접 들어가 볼 수 없어서 갖가지 영상을 보고 최대한 비슷하게 재현했다. 작업 현장을 촬영해 보고해야 했던 김용균의 휴대폰에는 작업 현장 관련 영상과 사진이 가득했다. 브이아르로 되살아난 김용균이 노래하는 부분에서는 실제 그의 목소리도 입혔다. 시간과 제작비의 한계로 애초 구상을 다 구현하지는 못했다. 김종우 피디는 “내가 김용균이 돼보거나, 김용균의 컵라면을 들어보거나, 기계를 멈추게도 하고 싶었지만, 시간과 비용의 부족으로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제작비를 지원받았다.

‘용균이를 만났다’에서 시도하는 브이아르 저널리즘은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한 영역이다. 제작진에 따르면 국외에서는 <뉴욕 타임스>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연설 현장을 복원해 기자들에게 군중 사이에서 직접 듣는 듯한 체험을 제공하거나, 시리아 난민의 상황을 체험하도록 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김종우 피디는 이번 시도를 계기로 한국에서도 브이아르 저널리즘이 본격화하기를 기대한다. 그는 “부스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직접 체험하게 하고 싶다. 기사나 뉴스로 보는 것과는 체감도 자체가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촬영을 위해 시민들을 모아 체험하도록 했더니 다들 놀랐다고 한다. 김종우 피디는 “어머니한테는 권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마음 아픈 어머니에게 가상으로라도 경험해보란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너를 만났다 시즌2>에서 ‘브이아르 저널리즘’을 시도한 김종우 피디. 문화방송 제공
<너를 만났다 시즌2>에서 ‘브이아르 저널리즘’을 시도한 김종우 피디. 문화방송 제공
최근 방송가에서는 브이아르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에이아이·AI)까지 컴퓨터 기술을 활용한 프로그램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세기의 대결 에이아이 vs 인간>(에스비에스)은 김광석 등 기억 속 가수의 목소리를 되살린 에이아이와 가수의 대결을 펼쳤다. 지난해 <다시 한번>(엠넷)에서는 홀로그램을 활용해 김현식, 터틀맨, 신해철 등이 되살아났다. 방송에서는 앞으로 비슷한 시도가 더 많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본다. 하지만 에이아이 챗봇 ‘이루다’ 논란에서 보듯 주의해야 할 것도 많다. 특히 세상에 없는 사람을 복원한다는 점에서 유족의 동의를 받는 것부터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를 불식하는 것까지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너를 만났다> 제작진도 촬영에 앞서 윤리 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했다고 한다. 김종우 피디는 “가족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고, 개인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작은 단서들을 모으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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