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7월 열린 백남준의 보이스 추모굿 ‘늑대걸음으로’ 현장.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백남준이 보이스의 작업 소재인 속 빈 피아노에 삽으로 흙을 떠 뿌리고 있다. 갤러리 현대 제공
“보이수…보이수…”
작가는 중얼거리면서 담뱃대로 요강을 두들기고 땅을 파며 삽질을 했다.
31년 전,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거장 백남준(1932~2006)은 이런 퍼포먼스로 망자가 된 친구의 영혼을 불러냈다. 그 친구는 1960~80년대 ‘우리 모두가 예술가’라는 구호를 외쳤던 독일의 전위 예술가 요제프 보이스(1921~1986). 삶 자체를 예술로 재해석하며 세계 미술계에 개념의 혁명을 몰고 왔던 풍운아다. 백남준은 당시 4년 전 심장병으로 돌연 숨진 보이스를 위한 진혼 굿판을 차렸다. 그의 이름 보이스를 보이수(普夷壽)란 한자 이름으로 바꿔 적은 4폭 병풍을 앞에 둔 채였다. 망자가 작업 재료로 애용했던 속이 빈 피아노를 옮겨와 삽으로 흙을 떠 안에 털어 넣기를 반복했다. 관객까지 합세해 흙을 다 채우고 굿판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강풍이 휘몰아치고 천둥 번개가 쳐 일대가 정전됐다. 일부 관객은 보이스의 영이 내려왔다고 수군거렸다.
백남준이 58살 생일이던 1990년 7월20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현대화랑 마당에서 벌인 ‘보이스 추모굿’은 지금도 회자되는 한국 현대 미술사의 일대 사건이다. 무덤 구덩이에 흙을 흩뿌리는 한국식 매장 제의와 보이스의 피아노 행위예술이 녹아든 굿판 퍼포먼스였다.
1960년대 초 독일에서 현대미술 동인 플럭서스의 동지로 만나 친구가 된 보이스와 백남준. 둘은 스스로를 샤먼 무당으로 자처했다. 무속의 원시 생명력에서 영감을 얻어 사람과 지역, 삶과 예술 사이의 소통을 꾀했던 두 작가는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1963년 독일에서 전위작가로 두각을 나타낸 백남준이 부퍼탈에서 첫 개인전을 차렸을 때도 그랬다. 소품으로 들고 온 낡은 피아노를 도끼로 깨어 부수는 즉석 퍼포먼스를 실행한 이도 바로 보이스였다.
요제프 보이스는 1987년 현대미술제인 독일 카셀 도쿠멘타에서 상수리나무를 심는 이색 퍼포먼스를 펼쳤다. 카셀시의 프리데리치아눔 전시관 앞에서 삽으로 흙을 퍼 나무를 심고 있는 보이스의 모습. 지구 생태계의 원시적 생명력을 사람들과 연결하는 샤먼을 자처했던 보이스는 지구에 더는 나무를 심을 곳이 없어질 때까지 나무를 심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한겨레> 자료사진
굿판 이후 31년이 지난 올해는 보이스의 탄생 100돌을 맞는 해다. 또 29일은 백남준이 세상을 떠난 지 15주기를 맞는 날이다. 유럽에 코로나 광풍이 몰아쳤지만, 독일 등 유럽 각지에서는 보이스의 추모 전시, 학술행사, 전문가 대담 등이 일년 내내 이어질 예정이다. 모국인 독일에서는 교수로 일했던 뒤셀도르프와 고향인 크레펠트, 아헨, 뒤스부르크 등에서 그가 길러낸 후대 작가의 헌정 전시와 회고전이 열린다.
반면, 국내에선 두 거장의 관계를 재조명하는 행사가 전무하다. 백남준아트센터 주관으로 29일 서울 봉은사에서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추모제와 디지털 문화전문가 레프 마노비치와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의 대담 생중계 정도가 기획됐을 뿐이다.
지난 2003년 10~11월 서울 국제갤러리 1관에서 열렸던 요제프 보이스 회고전 ‘샤먼과 숫사슴’의 당시 전시 모습. 국제갤러리 제공
국내에도 보이스의 자취는 남아 있다. 백남준의 작품을 처음 국내 미술 시장에 본격 소개한 갤러리 현대 신관은 보이스 추모 굿판이 펼쳐진 자리에 지어졌다. 화랑 쪽은 당시 추모굿 관련 소품과 자료를 보관 중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보이스의 사진과 드로잉을 비롯해 백남준이 보이스에게 영감을 받아 만든 고지도 등 10여점의 관련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삼성 리움도 보이스의 주요 명품을 소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화랑가에서는 국제갤러리가 1996년과 2003년 보이스의 명품 회고전을 차렸고, 부산 조현화랑도 2010년 전시를 연 바 있다.
김준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올해 중 고장난 백남준의 대표작 <다다익선>을 시범 가동하면서 기념전을 여는 데 치중하다 보니 보이스 컬렉션 전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도형태 갤러리 현대 대표는 “백남준 선생이 굿판을 벌이고 나서 보이스 탄생 100주년 행사도 살아서 만들고 싶다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올해 관련 전시를 못 한 건 여러모로 아쉽다”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