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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오늘도 ‘당근’이지! 우리를 소유에서 자유롭게 하니까

등록 2021-01-15 15:16수정 2021-01-16 02:33

[토요판] 밀레니얼 읽기 (4) 당근마켓 열풍

P2P 거래 대세 된 당근마켓
‘검증’된 물건 싼 가격에다
환경보호 기여 부수효과까지

최근엔 동네 커뮤니티 기능도
정보 교환, 이웃 챙기기 역할
느슨해도 다정한 접촉 촉매
당근마켓 앱 갈무리. 
당근마켓 앱 갈무리. 

머뭇거리는 건 신호다. 적어도 당근 거래에서는 그렇다. 지하철역 앞, 백화점 앞, 마트 앞, 주차장 앞에서 누군가의 눈치를 보기라도 하는 듯 기웃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당신의 ‘당근’일 확률이 높다. 다가가 물어보면 곧 정체는 드러난다. 질문도 간단하다. “당근이세요?” 고개를 끄덕이면, 맞다. 그가 당근이다.

거래는 이렇게 성사된다. 물건과 돈을 주고받았다면 별말 없이 ‘쿨’하게 헤어지면 된다. 백마디 말보다 후기 한 줄이 낫다고 했던가. 적절한 후기와 평점은 당근의 온도를 높여준다. 요즘 같은 시기에 높아져도 되는 유일한 온도다. 뜨끈할수록 믿음이 간다. 36.5도 이하로 떨어지면 큰일이다. 당근에서 누군가를 믿을 만한지를 판별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 바로 이 온도이기 때문이다.

당근마켓 누리집 화면 갈무리.
당근마켓 누리집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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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당근’ 시대

‘당근 시대’가 왔다. 2020년 국내 모바일앱 내려받기(다운로드) 순위 1위를 기록했다.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보다 잘나간 셈이다. 2020년, 월간 사용자(MAU)는 1000만명을 넘겼다. 2019년보다 3배 높은 수치다. 당근마켓은 나스닥 상장을 눈앞에 둔 쿠팡에 이어, 쇼핑 카테고리에서 월간 사용자 수 2위를 기록했다. 로켓배송도, 로켓프레시도, 새벽배송도 없는 중고거래 앱임을 고려하면 놀라운 수치다. 사용자 충성도도 높다. 이용자들이 하루에 당근을 들여다보는 평균 체류 시간은 20분으로, 쇼핑앱 중에서 최고 수준이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당근에 중독되어버린 걸까.

1일 1당근을 실천 중인 회사원 김태리(31)씨는 당근마켓의 최고 매력을 “기본적으로 한번 타인의 선택을 받은 아이템을 살 수 있는 것”으로 꼽았다. 중고 물건이라고 할 때 누군가는 헌것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다른 눈으로 보면 그 물건은 이미 한번 검증을 받은 ‘특별한’ 아이템이다. 새 물건을 살 땐 일일이 어떤 물건이 더 좋은지, 가격은 어떤지 비교해야 하지만 당근에선 조금 더 일이 쉬워진다. 마켓에 올라오는 물건은 누군가의 취향에 의해 선택된 물건이기 때문에 한번 걸러진 양품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듣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논리다. 꼭 새것일 필요는 없다. 적당하거나, 아름답거나, 필요한 물건이면 그만이다. 당근마켓에 줄줄이 올라오는 ‘꽤 쓸만한 물건’들이 절찬리에 팔려나가는 이유다. 키워드 알림 설정을 해 놓고 가만히 기다리다 보면 명품 브랜드의 물건도 심심찮게 올라온다.

“당근에는 생각보다 특별한 아이템이 많아요. 예쁜 그릇들도 있고, 컵도 있고요. 구하기 힘든 아이템들이 불쑥불쑥 나타나는데, 그때마다 그걸 잡아채는 재미가 있어요.” 당근으로 산 분홍빛이 도는 와인잔 한 쌍을 자랑하며 태리씨는 말했다. 당근마켓은 단순한 중고거래의 장 이상이다. 덜 쓸모 있더라도 아름답고 특이한 희귀템을 얻을 수 있는 빈티지 마켓의 기능도 충실히 하고 있는 중이다.

밀레니얼에게 소비는 더 이상 소유를 위한 것이 아니다. 대신 경험하기 위해 산다. 사서 경험해보고, 금방 되파는 것이 논리적으로도 실리적으로도 계산에 맞는다. 필요할 때 잠깐 쓴 다음 갖고 있는 대신 팔아버리고, 다른 필요한 물건을 사는 식이다.

새 침대를 값싸게 당근에서 산 뒤, 가지고 있던 토퍼를 같은 사람에게 판 경험이 있는 문예원(29)씨는 당근마켓을 이용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를 ‘비거니즘의 실천’으로 꼽았다. 그는 비건 식습관 지향인이기도 하다. “더 이상 새 물건을 사지 않으려고 해요. 멀쩡하면서도 버려지는 물건들이 많은데, 굳이 새 물건을 살 필요는 없잖아요.”

많은 밀레니얼들이 이전 세대보다는 환경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실천하려 애쓰는 이들도 늘었다. 패스트패션처럼 옷을 찍어내고 버리기를 반복하는 흐름에도 못마땅한 시선을 보낸다. 그렇다 보니, ‘당근’은 그들의 삶과 달라붙기에 더 적합한 마켓이 됐다.

이런 면에선 한국의 당근은 미국의 덤프스터 다이빙과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미국에는 빠르게 돌아가는 유통시장과 소비 스펙트럼에 반대하기 위해 ‘덤프스터 다이빙’을 하는 이들이 있다. 덤프스터 다이빙이란 말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다이빙해, 아직 쓸 만하지만 버려진 물건들을 주워 모아 재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덤프스터 다이빙을 하는 ‘다이버’들의 유튜브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우리 주변의 일상과 유사한 풍경이 펼쳐진다. 아직 먹을 수 있는 과일이나 사용할 수 있는 공산품,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버려진 물건들이 마트 근처의 커다란 쓰레기통에 가득하다. 아직 쓸 만한 것들이 줄지어 올라오는 당근으로 매일마다 ‘다이빙’하는 ‘당근 다이버’들을 부를 적절한 단어가 필요한 시점이다.

당근마켓은 적극적으로 환경 문제를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나의 당근 가계부 확인하기’를 누르면, 당근마켓을 통해 거래를 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나무를 심은 셈인지를 환산해서 알려준다. “우리 동네 ○○동 근처 주민들이 당근마켓 거래를 통해 재활용한 자원의 가치는 소나무 9147그루를 심은 것과 같아요”라고 알려주는 식이다. 기후 위기를 막는 데 마켓 이용자가 일정한 기여를 하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알려줌으로써, 당근마켓을 이용해야 할 이유를 계속 만들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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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밀조밀한 동네 커뮤니티

‘당근’이라는 인사만큼 당근마켓은 다정한 커뮤니티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동네 사람들과 느슨하게 이어질 수 있는 연결망이 된다. 러닝과 워킹을 시간 맞추어 함께 하겠느냐는 게시글은 지속적으로 커뮤니티 한편을 차지하고, 물건을 나눠 살 의향이 있는 사람들을 모으는 ‘공구 게시물’도 인기다. ‘당근’에서 이루어지는 생활과 취향의 연결은 꽤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내린 눈으로 만든 작품을 소개하는 당근마켓 게시판 사진들. 천다민 제공
최근 내린 눈으로 만든 작품을 소개하는 당근마켓 게시판 사진들. 천다민 제공

최근 당근마켓은 이른바 ‘붕세권’(붕어빵+역세권), ‘호세권’(호떡+역세권)을 표시할 수 있는 동네 지도 서비스를 시작했다. 붕어빵과 호떡, 계란빵 등의 겨울 간식 트럭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알려주는 유사한 서비스 ‘가슴속 3천원’과 유사한 서비스다.

다른 점은 유저가 직접 가게의 위치를 표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동네 커뮤니티에 “붕어빵이 너무 먹고 싶은데 트럭 어디 있나요?”라고 올리지 않아도, 서비스되는 지도만 보면 붕어빵을 언제든지 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지도가 있어도, 동네 커뮤니티 기능은 여전히 활성화되어 있다.

분실물을 수소문하거나, 급하게 물건을 구하거나, 동네 목욕탕 정보를 물어보는 등 동네 사람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특별한 정보가 오가는 장이다. 귀여운 것들이 오고 가는 오밀조밀한 커뮤니티이기도 하다.

요 며칠 서울엔 대설주의보가 내릴 정도로 심한 폭설이 지나갔다. 시기에 맞추어 몇몇 당근마켓 동네 커뮤니티에는 각자가 만든 눈사람을 자랑하는 게시판이 임시로 생기기도 했다. “제 오리 눈사람 보세요”, “제 올라프입니다” 등의 게시물이 앞다투어 올라왔다. 썰매를 5000원에 팔거나, 오리 눈사람을 선착순으로 분양해주는 이들도 있었다.

조금은 생활과 밀접한 팁들도 분주하게 자리를 잡았다. “수도관이 동파됐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급하게 목욕탕에서 씻어야 하는데 문 연 곳 있을까요?” 같은 게시글에는 “여자분이시면 저희 집에 오셔서 씻으셔도 돼요” 같은 다정한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느슨하지만 독특한, 꽤 다정한 방식의 접촉과 연결이 당근마켓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눈 밝은 밀레니얼들이 오늘도 ‘당근’ 하는 이유다.

천다민 뉴닉 에디터

▶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들은 정보기술(IT)에 능하고 개성이 강한 특징이 있다고 분석된다. 부당한 일에 적극 목소리를 내면서 앞날에 대한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이들이기도 하다. ‘나 때는 말이야’라고 툭하면 가르치려는 ‘라떼 세대’는 모르는 밀레니얼 세대의 문화를 소개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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