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처음부터 신들린 듯한 재능을 뽐내는 천재 예술가를 우러러본다. 하지만 모두가 천재일 순 없다. 벼락같은 성공과는 거리가 있어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예술가들 덕에 우리는 위로와 용기, 희망을 얻는다. 2021년 소의 해를 맞아, 지금껏 그랬듯 올해도 소처럼 우직하게 걸어갈 예술가들을 소개한다. 그들의 발걸음을 되새기고 응원하며 우리도 함께 뚜벅뚜벅 걸어보자. ①미술작가 최선 ③싱어송라이터 김목인
“그만두고 싶은 적 없었어?” “스타가 되고 싶었을 거 아냐?” “벌써 데뷔 15년이야?” “35살? 나이가 많네.”
사람들은 전승빈이라는 그의 이름보다 뒤따르는 꽉 찬 이력에 먼저 눈길을 준다. 신인인 줄 알았는데 경력이 의외로 많다. 2006년 연극 <천생연분>으로 데뷔해 영화 <못말리는 결혼>(2007), 드라마 <애자 언니 민자>(2008) <천추태후>(2009) <근초고왕>(2010) <대왕의 꿈>(2012) <일편단심 민들레>(2014) <징비록>(2015) <보좌관>(2019) <나쁜 사랑>(2019) <나를 사랑한 스파이>(2020)까지 드라마를 종횡무진했다. <징비록> 이후 군대에 다녀온 것 외엔 거의 한해도 쉬지 않았다.
하지만 시청자는 아직 그가 낯설다. 그래서 자꾸 “늦은 것 같은데 괜찮냐”는 재촉의 물음을 던진다. 그럴 때마다 전승빈은 그저 빙그레 웃는다. 그리고 다짐한다. “연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사람들은 내가 유명하지 않아 슬플 거라고 생각하나 봐요. 그저 나를 믿을 수 있게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겠죠.” 새해를 앞두고 지난해 12월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마주한 그가 다부지게 말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제 길을 걸어왔다. 15년간 작품마다 그는 조금씩 성장했다. 2006년 연극을 본 드라마 관계자 눈에 띄어 <천추태후> 오디션을 봤고, 이 작품으로 드라마를 처음 촬영했다. 여러 역할을 거쳐 2010년 <근초고왕> 때 ‘사기’로 처음 굵직한 조연을 맡은 뒤 연기 시작 8년 만에 <일편단심 민들레>에서 주연을 꿰찼다. <징비록>에서도 쟁쟁한 선배들 틈에서 ‘송희립’을 잘해냈다. 하지만 이듬해 군대에 가며 흐름이 끊겼다. 그는 “배우로서 아쉽기도 했지만 가야 할 때라 갔다. 최전방 백두산부대였다”며 “쉼표가 필요했다. 오히려 군대는 인생을 생각할 기회가 됐다. 내 연기가 뭐가 부족한지, 배우로서 아쉬운 게 뭔지 돌아봤다”고 말했다.
들어 보면 연기에 대해 그는 진심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11년 동안 태권도를 하다 고등학교 때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만두고 1~2년 방황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본 연극에 빠졌다. 드라마와 영화와는 다른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강렬함에 매료됐다. 저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에 신생 극단에 들어가 연기의 기본을 배웠다. 연기 욕심이 들어 뒤늦게 경희대 연극영화과에 입학도 했다.
물론 스타가 되고 싶어 조급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친구가 세상을 떠난 날,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을 연기에 도움이 될까 관찰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자괴감이 들었다고 한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식음을 전폐하고 한동안 고민했다. 그 경험이 큰 공부가 됐고, 조급함이 사라졌다. “배우가 사람과 연기에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계기가 됐죠.”
전승빈은 다양한 작품을 오가는 마스크가 장점이다. 의외로 수염이 잘 어울려 사극에서 그를 많이 찾는다. 슈트를 자주 입는 역할도 단골이다. 그도 자신의 장단점을 잘 안다. “연기할 때 몸에 힘을 주는 습관이 있어요. 군대에서 오랜 기간 고치려고 노력했죠.” 효과가 있었는지 제대하자마자 <보좌관>에 캐스팅됐다. 연기가 한결 자연스러워졌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일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지난해는 12월 종영한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 순정남 ‘피터’로 꽤 이름도 알렸다.
새해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지금까지 그랬듯 묵묵히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편안한 동네 형 같은 역할로 새로운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기회가 되면 다시 연극 무대에도 서고 싶고요.” 남들은 느리다고 자꾸 걱정하지만, 앞으로도 그는 연기의 맛을 ‘되새김질’할 줄 아는 꾸준하고 성실한 배우로 살아갈 것이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기획 [소의 해, 우직하게 걷는 예술가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