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한글문화연대 정재환 공동대표
지난해 1월 겨울밤 어느 자리. 조선어학회를 다룬 영화 <말모이>에 대한 대화가 오가던 중 그가 고백했다. “사실 조선어학회 관련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어요. 영화를 보고나니, 오락성을 빼고 그들의 활약을 차근차근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욕구가 더 솟구칩니다.” 당시 함께 있던 사람들의 응원이 힘이 됐던 걸까? 그로부터 1년여 뒤 그가 책 한권을 들고 나타났다. <나라말이 사라진 날>. 책의 서두에 이렇게 썼다. “민족어를 지키고자 했던 노력 또한 독립운동이었다. 조선어학회 사건을 되짚는 일은 또 다른 형태의 독립운동과 마주하는 경험이자, 우리 말글이 만들어지고 성장해온 과정을 목격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최근 서울 종로 한글학회에서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이자 방송인 정재환(59)씨를 만났다.
조선어학회를 다룬 학술서는 많지만, 일반 독자를 상대로 쉽게 전달한 책은 별로 없다. <나라말이 사라진 날>은 1942년 10월 발생한 ‘조선어학회 사건’을 중심으로 전후 우리말의 역사를 훑는다. 조선어학회 사건의 전모, 한국어 어문규정과 사전 편찬 과정, 조선어학회 주요 인사들의 해방 후 활동 등의 이야기가 제법 쉽고 상세하게 담겼다. 그는 “일제에 의해 말살될 뻔했던 우리 말글을 지키려는 조선어학회의 투쟁은 교과서에도 짧게 언급된다. 이 책을 통해 조선어학회가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게 됐다는 감상평을 볼 때 가장 반갑다”고 말했다.
특히 “해방 이후 조선어학회의 활동을 소개하는 데 힘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좌우 이념 갈등 속에서도 조선어학회가 맞춤법, 외래어 표기법, 표준말 등 민족어 3대 규범을 제정하며 말글 문제는 비교적 혼란 없이 틀을 잡아간다. 그가 “해방 이후 조선어학회가 한 일 중에 가장 중요하다는 한글 전용 운동”과 해방 이후 <큰 사전>이 완성되는 순간도 담담하게 풀어낸다. 그는 “1929년부터 1957년까지 28년 <큰사전> 편찬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 등 파란과 격동, 부침의 한국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고 말했다. 10월 초 나온 책은 2쇄를 찍었고 반응이 좋다.
‘나라말 사라진 날’ 한달만에 2판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이후로
우리말글이 자리잡는 역사 살펴 신문기사 등 찾아 자료부족 극복 “한글 제대로 알고 잘 썼으면
책 쓰면서 반성 많이 했어요” 조선어학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가 이 책을 내는 과정도 꽤 힘들었다. 조선어학회 사건에 관한 자료는 대부분 소실됐다. 남아 있는 자료도 예심종결결정문과 고등법원 최종판결문 정도여서 수사에서 재판에 이르는 과정 대부분은 관련자의 기억에 의존해 복원되었다. 그는 “대학 박사 논문으로 한글 운동사를 쓴 적이 있어서 그때 열심히 공부했던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주시경 선생에 관한 자료와 여러 학자의 논문을 찾아보고 당시 나온 신문기사를 읽는 등 닥치는 대로 공부했습니다.” 그간 <한글의 시대를 열다>(2013년) <우리말은 우리의 밥이다>(2000년) 등 한글 관련 책을 꽤 냈지만, 이 책을 쓰면서 어려웠던 점은 기록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에 의존하는 자료가 많아 서로 다른 주장 속에서 그 스스로 답을 찾아내야 한다는 점이었다. ““조선어학회 사건의 시작이 된 학생 이름은 ‘박영옥’이 아니라 ‘박영희’가 맞고, 이희승 선생이 2년 6개월형이 아니라 3년 6개월형이라는 것, 큰사전 원고 뭉치를 찾은 날은 9월8일이 아니고 10월2일이 사실에 가깝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최현배 선생이 쓴 친필 자료 등 책 속에 그의 발품 판 노력이 보인다. 그는 “책을 준비하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읽는 우리도 반성을 하게 된다. 한글을 더 제대로 알고 잘 사용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신조어, 외래어, 줄임말 등을 유행에 앞서가는 것인 양 아무 생각 없이 쓰지는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또 하나, 정재환씨는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한글에 관심을 가질까도 궁금해진다. 그는 언어학자가 아니라, 코미디언이자 방송사회자이지 않나.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잘 모르겠다”며 그가 크게 웃었다. “처음에는 방송일을 하면서 일본식 표현이 너무 많은 걸 보고 놀랐어요. ‘우라까이’ ‘입봉’ 등 그런 표현이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모음집을 낸 적도 있었죠. 좋은 진행자가 되려면 우리 말을 정확하고 바르게 써야겠다고 하는 마음으로 국어를 공부했어요. 그러다 보니 빠져들게 됐고, 한글 운동도 하게 되고, 역사도 공부하게 됐고.” 우리말의 역사를 꿰뚫으려면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니 그는 일본어 학원에 다니며 일어까지 배웠다. 방송을 그만둘 생각은 아니었는데 나이 40살에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뺏기다 보니 방송일이 서서히 끊겼다고 한다. “연예인으로 사는 게 더 좋지 않으냐고들 물어보시는데, 그때도 좋았지만 전 지금도 좋아요. 처음부터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고 산다기보다는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 궁금한 것을 알아가며 사는 사람이라.” 평소에도 한글을 바르게 쓰려고 노력한다는 그는 “외래어가 범람하는 시대, 우리 말글의 소중함을 잊은 것은 아닌지, 이 책을 통해 한 번 더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글 지킴이로 살면서 한가지 안 좋은 점은 있단다. “페이스북을 하는데 댓글 달기가 무섭다고 하고 친구들은 문자 보내기가 두렵다고 해요. 하하하. 괜찮습니다 여러분 편하게 보내시고, 글 달아주세요!”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평소 우리 말글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정재환씨가 조선어학회의 활약상을 담은 책을 냈다. 그를 최근 서울 종로구 한글학회에서 만났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이후로
우리말글이 자리잡는 역사 살펴 신문기사 등 찾아 자료부족 극복 “한글 제대로 알고 잘 썼으면
책 쓰면서 반성 많이 했어요” 조선어학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가 이 책을 내는 과정도 꽤 힘들었다. 조선어학회 사건에 관한 자료는 대부분 소실됐다. 남아 있는 자료도 예심종결결정문과 고등법원 최종판결문 정도여서 수사에서 재판에 이르는 과정 대부분은 관련자의 기억에 의존해 복원되었다. 그는 “대학 박사 논문으로 한글 운동사를 쓴 적이 있어서 그때 열심히 공부했던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주시경 선생에 관한 자료와 여러 학자의 논문을 찾아보고 당시 나온 신문기사를 읽는 등 닥치는 대로 공부했습니다.” 그간 <한글의 시대를 열다>(2013년) <우리말은 우리의 밥이다>(2000년) 등 한글 관련 책을 꽤 냈지만, 이 책을 쓰면서 어려웠던 점은 기록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에 의존하는 자료가 많아 서로 다른 주장 속에서 그 스스로 답을 찾아내야 한다는 점이었다. ““조선어학회 사건의 시작이 된 학생 이름은 ‘박영옥’이 아니라 ‘박영희’가 맞고, 이희승 선생이 2년 6개월형이 아니라 3년 6개월형이라는 것, 큰사전 원고 뭉치를 찾은 날은 9월8일이 아니고 10월2일이 사실에 가깝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최현배 선생이 쓴 친필 자료 등 책 속에 그의 발품 판 노력이 보인다. 그는 “책을 준비하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읽는 우리도 반성을 하게 된다. 한글을 더 제대로 알고 잘 사용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신조어, 외래어, 줄임말 등을 유행에 앞서가는 것인 양 아무 생각 없이 쓰지는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또 하나, 정재환씨는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한글에 관심을 가질까도 궁금해진다. 그는 언어학자가 아니라, 코미디언이자 방송사회자이지 않나.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잘 모르겠다”며 그가 크게 웃었다. “처음에는 방송일을 하면서 일본식 표현이 너무 많은 걸 보고 놀랐어요. ‘우라까이’ ‘입봉’ 등 그런 표현이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모음집을 낸 적도 있었죠. 좋은 진행자가 되려면 우리 말을 정확하고 바르게 써야겠다고 하는 마음으로 국어를 공부했어요. 그러다 보니 빠져들게 됐고, 한글 운동도 하게 되고, 역사도 공부하게 됐고.” 우리말의 역사를 꿰뚫으려면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니 그는 일본어 학원에 다니며 일어까지 배웠다. 방송을 그만둘 생각은 아니었는데 나이 40살에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뺏기다 보니 방송일이 서서히 끊겼다고 한다. “연예인으로 사는 게 더 좋지 않으냐고들 물어보시는데, 그때도 좋았지만 전 지금도 좋아요. 처음부터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고 산다기보다는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 궁금한 것을 알아가며 사는 사람이라.” 평소에도 한글을 바르게 쓰려고 노력한다는 그는 “외래어가 범람하는 시대, 우리 말글의 소중함을 잊은 것은 아닌지, 이 책을 통해 한 번 더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글 지킴이로 살면서 한가지 안 좋은 점은 있단다. “페이스북을 하는데 댓글 달기가 무섭다고 하고 친구들은 문자 보내기가 두렵다고 해요. 하하하. 괜찮습니다 여러분 편하게 보내시고, 글 달아주세요!”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연재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