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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사라진 딸 준원이가 꼭 봤으면 하는 영화 ‘증발’

등록 2020-11-17 17:36수정 2020-11-18 02:06

[장기 실종아동 문제 다룬 다큐 ‘증발’]
아버지 최용진씨·7년 공들인 김성민 감독
영화 <증발> 속 아버지의 사건수첩. 인디스토리 제공
영화 <증발> 속 아버지의 사건수첩. 인디스토리 제공
2000년 4월4일 오후 3시께 서울 중랑구 망우동 집 앞 놀이터에서 놀던 준원이가 사라졌다. 당시 6살로,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인근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 들어간 지 한달밖에 안 됐을 무렵이었다. 집에서 차로 3시간 거리에서 일하고 있던 아버지 최용진씨에게 둘째 딸의 실종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그날 이후 준원이네 가족의 시계는 멈췄다.

20년이 흘렀다. 최용진씨는 여전히 그때 그 집을 지키며 준원이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지난 16일 망우동 집 근처 찻집에서 만난 최용진씨가 명함을 건넸다. 명함에는 자신의 이름 대신 준원이 사진과 신체적 특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연락처는 011로 시작하는 전화번호였다. “20년 전 번호 그대로예요. 당시 준원이가 이 번호로 저에게 전화도 했었어요. 그러니 어떻게 바꿀 수 있겠어요.”

영화 <증발> 속 준원이가 남긴 물건. 인디스토리 제공
영화 <증발> 속 준원이가 남긴 물건. 인디스토리 제공
그는 “처음 겪는 일이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미친 듯이 여기저기 뛰어다녔다”고 했다. 준원이 사진을 넣은 전단을 만들어 동네 구석구석에 붙였다. 이어 차츰 중랑구로, 인근 구리시로 범위를 넓혀나갔다. 지역 케이블방송과 언론사, 국회의원 등을 찾아갔다. “6개월을 다니다 보니 준원이 같은 아이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이 찾는 일이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몫이라는 걸 깨닫고 부모 모임을 결성해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죠.”

노력의 결실로 2005년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실종아동법)이 만들어졌다. 이후 장기실종아동은 눈에 띄게 줄었지만, 준원이처럼 법 제정 이전에 실종된 아이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올해 4월 기준으로 20년 이상 장기실종아동은 564명이다. 실종 당시 경찰의 부실한 초동수사에 실망한 최용진씨는 자신만의 사건수첩을 꼼꼼히 기록하며 20년째 직접 준원이를 찾고 있다.

영화 <증발>의 김성민 감독(왼쪽)과 20년 전 실종된 준원이의 아버지 최용진씨가 지난 16일 준원이가 마지막으로 놀았던 서울 중랑구 망우동 놀이터가 있던 자리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서정민 기자
영화 <증발>의 김성민 감독(왼쪽)과 20년 전 실종된 준원이의 아버지 최용진씨가 지난 16일 준원이가 마지막으로 놀았던 서울 중랑구 망우동 놀이터가 있던 자리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서정민 기자
김성민 감독이 준원이 아버지를 처음 만난 건 2014년 초였다. 대학에서 다큐멘터리 연출을 공부하고 첫 장편 다큐영화를 준비하던 김 감독은 2011년 실종된 지인을 찾아 나섰던 기억을 떠올렸다. 다행히 지인은 열흘 만에 돌아왔지만, 부모가 괴로워하던 모습이 생생했다. “성인이 사라져도 부모가 이토록 힘들어하는데, 아이가 사라지면 오죽할까 싶었어요. 장기실종아동 문제를 다뤄보기로 마음먹은 까닭입니다.”

여러 실종아동 부모를 만나던 김 감독 눈에 준원이 아버지는 남달랐다. “대부분 당시 감정을 떠올리면 고통스러워하고 못 견뎌 하셨어요. 그런데 준원이 아버님은 단단하고 강해 보이셨어요. 그동안 어떤 시간을 거쳐 오셨기에 이렇게까지 단단한 껍질이 생겼을까 궁금해졌어요.”

최용진씨는 2005년 실종아동법이 제정되기까지 실종아동 부모 모임 대표를 하면서 언론 인터뷰를 많게는 하루에 18건까지 했다. “너무 힘들었어요. 인터뷰할 때마다 2000년 4월4일로 돌아가는 아픔이 반복됐어요. 어느 순간 ‘내가 강해지지 않으면 무너지겠구나. 준원이를 찾으려면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증발> 속 경찰 장기실종수사팀과 준원이 아버지의 수사 장면. 인디스토리 제공
영화 <증발> 속 경찰 장기실종수사팀과 준원이 아버지의 수사 장면. 인디스토리 제공
방송에 수없이 출연한 그도 영화 출연은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혼자라면 얼마든지 응하겠지만, 준원이 엄마와 큰딸 등 가족이 마음에 걸렸어요.” 그래도 준원이를 찾는 데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6개월 고민 끝에 수락했다. 그렇게 찍기 시작한 영상에서 준원이 아버지는 제보를 따라 동분서주한다. 2016년 경찰에 장기실종수사팀이 꾸려지면서 본격적인 재수사도 이뤄진다. 이런 과정을 계속 담다 보니 촬영이 4년 넘게 이어졌다. 김 감독은 “언젠가부터 촬영을 끝내는 게 준원이 찾는 걸 끝내는 것처럼 느껴져 그만둘 수가 없었다”고 했다.

다른 가족도 어렵사리 마음을 열었다. 준원이 언니 준선씨는 1년6개월 만에, 어머니는 4년 만에 카메라 앞에 섰다. 어머니는 생지옥 같은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갔다. 아버지와 준선씨는 대화가 끊긴 지 오래다. 아버지가 준원이를 찾아 전국을 떠도는 동안 준선씨는 고립돼갔다. 다른 가족의 숨은 고통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영화 <증발> 속 준원이 언니 준선씨. 인디스토리 제공
영화 <증발> 속 준원이 언니 준선씨. 인디스토리 제공
촬영분은 2년간의 편집을 거쳐 영화 <증발>로 완성됐다. 영화는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 장편상, 디엠제트(DMZ)국제다큐영화제 한국경쟁 심사위원 특별상 등을 받은 데 이어 지난 12일 마침내 개봉됐다. 기획부터 꼭 7년 만이었다. 어느덧 김 감독은 첫돌을 앞둔 딸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아빠가 되고서야 준원이 아버님 심경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더 많은 이들이 영화를 보고 공감해서 실종아동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면 준원이와 다른 아이들이 돌아올 거라 믿어요.”

최용진씨는 “수만명, 수천만명이 영화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선가 준원이가 꼭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분 더, 문재인 대통령께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실종 사건은 가정을 파괴하고 가족을 죽이는 악랄한 사건입니다. 지금은 준원이지만, 다음은 누가 될지 몰라요. 이런 인식을 공유하고 정부가 함께 해결해야 해요. 의지만 있다면 꼭 찾을 수 있습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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