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김혜영씨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방송에서 새로 진행을 맡은 라디오 프로그램 <김혜영과 함께>를 소개하며 웃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그는 얼굴만한 보온병을 들고 나타났다. “이전에는 개인 컵을 라디오 부스에 두고 다녔어요. 팬이 제 얼굴을 그려서 선물해준 아주 예쁜 컵.(웃음) 여기는 그러지 않는 것 같아 물을 들고 다녀요.” 아직은 모든 게 낯설다. 마이크 위치도 다르고, 보이는 라디오와 앱에서 보내는 문자메시지도 처음 경험했다. “원고를 읽다가 ‘보라’(보이는 라디오)가 뭔지 몰라 물어봤어요. 어떤 메시지 앞에는 케이(K)가 있는 거예요. K1397. 이게 뭐지? 인터넷 라디오 콩으로 들어온 문자라고. 하하하.”
새 직장으로 옮긴 김혜영의 좌충우돌 근황이다. <문화방송> 표준에프엠(95.9㎒)에서 우리를 ‘싱글벙글’하게 해줬던 김혜영이 8월31일부터는 매일 오후 2~4시 <한국방송> 라디오 해피에프엠(106.1㎒) <김혜영과 함께>로 찾아오고 있다. 1987년부터 올해 5월10일까지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쇼>(이하 <싱글벙글쇼>)를 진행한 세월만 33년. “결혼식 날도 웨딩드레스 입고 생방송했다”는 ‘진행력 만렙’의 김혜영이지만 33년 만의 새 일터는 “일이 끝나면 곧장 집에 가서 재충전을 해줘야 할 정도”로 긴장감 백배다.
“글쎄 첫날은 너무 긴장해서 2시간 동안 물을 1리터나 마셨어요. 진정제까지 먹었다니까요. 왜 한다고 했을까? 잘할 수 있을까? 그만큼의 성과가 있을까? 33년 역사를 가진 여자로 남을걸. 온갖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사연을 읽다가 음악을 직접 틀어야 하는 등 시스템이 다른 것은 둘째 문제. 생애 첫 단독 프로그램이란 점이 크게 다가왔다. “생각해보니 혼자 하는 첫 라디오더라고요. 둘이서 하다가 혼자 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그래서 떨렸나 봐요. 둘이 할 때는 실수도 웃음이 되는데, 혼자 하면 그냥 실수거든요. 더 큰 책임감이 느껴지더라고요.”
방송인 김혜영씨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방송에서 새로 진행을 맡은 라디오 프로그램 <김혜영과 함께>를 소개하며 웃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김혜영은 1973년 시작한 <싱글벙글쇼>에 1987년 합류했다. 33년의 긴 역사 동안 늘 강석과 함께였다. 이미 14년이 지난 탄탄한 프로그램에 투입된 터라 그저 계속 잘해나가면 됐다. “라디오를 오래 했지만 처음 하는 것 같은 새로움도 느껴진다”는 말 속에 첫 단독 진행에 대한 기대감도 엿보인다. <김혜영과 함께>는 이런저런 아이디어까지 내며 처음부터 함께 만들어나갔다. 매니저들이 자기 가수의 노래를 소개해달라고 요청하면 틀어주는 꼭지와 김혜영이 패널로 출연하고 있는 <아침마당>과 연계한 크로스 꼭지는 그가 직접 낸 아이디어다. 주현미, 남진 등 초대손님 섭외에도 적극적이다. “프로그램을 알리고 106.1㎒를 홍보하는 게 제 임무예요.”
신문의 시사만평과도 같았던 <싱글벙글쇼>에서 풍자와 해학을 겸비한 김혜영의 다채로운 끼가 빛났다면, <김혜영과 함께>에서는 좀 더 자연스러운 김혜영을 만날 수 있다. 친근하고 편안하게 대화를 이끌어간다. 채소값이 뛰어 걱정이라는 청취자에게 공감하며 경험담도 들려주고 친구처럼 대화를 나눈다. 어떤 사연에도 관련 정보가 술술 나온다. 33년 내공이 그냥 생긴 게 아니다. “<싱글벙글쇼>를 할 땐 매일 성향이 다른 종이신문 두 가지를 필수로 봤어요. 기사를 봐야 아이템을 이해하니까요. 애드리브(즉흥대사)도 알아야 치죠. 요즘도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기사를 꼭 보려고 노력해요.” 주말농장에서 따 온 야채를 아파트 앞 계단에 두고 주민들과 나눠 먹는 등 평소의 정 많은 성격도 프로그램에 녹아든다. “원래 무한 긍정의 성격이에요. 라디오에서 보이는 모습이 바로 제 삶이에요.”
고등학교 때 학생 모델을 한 뒤 배우를 꿈꿨지만, 친구 따라 시험을 봤다가 덜컥 <문화방송> 3기 공채 코미디언이 됐다. “합격할 줄 몰랐어요. 하하하.” <베스트 극장> 등 드라마에도 출연했지만, 1982년 <별이 빛나는 밤에> 고정 꼭지를 맡아 실력을 인정받으며 데뷔 6년4개월 만인 스물여섯 나이에 <싱글벙글쇼> 진행자로 발탁되면서부터 줄곧 라디오와 함께한 인생이었다.
방송인 김혜영씨가 최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방송에서 라디오 진행자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싱글벙글쇼>로 김혜영이라는 이름을 알렸지만 여러 기회를 잃기도 했다. 그는 현재 출연하고 있는 <아침마당> 패널 외에 라디오 스케줄에 방해가 되는 섭외는 다 거절했다. “아침 정보프로그램 진행도, 드라마 출연도 안 했죠. 했으면 <싱글벙글쇼>를 그렇게 오래 못 했을 거예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내게 기회를 준 기존의 것을 버린다는 게 미안하잖아요. 라디오가 좋아요. 욕심을 안 부렸기에 33년 동안 할 수 있었어요. 그 세월이 없었으면 지금의 김혜영도 없었을 거예요. 항상 고맙죠. 아련하고.”
그런 <싱글벙글쇼>를 그만두고 나서 하루 여섯번 통곡하기도 했단다. “<싱글벙글쇼>를 내려올 때 다시는 마이크 앞에 앉을 일이 없을 줄 알았다”는 그는 이제야말로 김혜영의 참모습을 보여주며 새 역사를 써내려갈 참이다. “오랜 기간 도전을 잊고 살았는데, 이번에야말로 정말 도전하는 기분이에요. 내 시간 동안 즐겁게 충분히 놀다 가고 싶어요.”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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