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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단재 신채호가 썼다던 한시, 살펴보니 가짜?

등록 2020-11-05 18:11수정 2020-11-06 02:37

김주현 교수, 논문 두 편 발표
친필 편지 글시와 확연한 차이
자전적·유교적 가치관 어긋나
유묵으로 알려진 서예 작품도
주자 비판 사상·인장 등 달라
서찰 형태로 된 단재의 한시로 알려진 작품. 김주현 제공
서찰 형태로 된 단재의 한시로 알려진 작품. 김주현 제공

단재 신채호의 작품으로 알려진 한시와 서예 작품이 가짜라는 주장이 나왔다.

국문학자 김주현 경북대 교수는 최근 학술지 <국어국문학> 제192호에 실은 ‘신채호의 서찰로 알려진 한시의 진위 고증’과 <한국근현대사연구> 제94집(2020년 가을호)에 발표한 ‘신채호 유묵으로 알려진 서예 작품의 진위 여부 고증’ 두 논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김 교수가 문제 삼은 단재의 한시는 기존에 서찰로 알려진 자료가 오언배율의 한시로 확인되었다는 것으로, 2006년 단재 순국 70주기 추모 학술대회에서 공개되었다. 김 교수는 단재 신채호 전집 편찬위원으로 <단재신채호전집-제7권 문학편>(2008)에 이 한시를 포함했지만, 최근 본격 연구를 거쳐 “과거의 오류를 시정하고자 한다”며 논문을 발표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모두 5언 24행으로 이루어진 이 한시는 신채호가 1901년에 쓴 편지 형식의 한시로 독립기념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충북 청주시 단재 사당에도 사본이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시의 화자가 ‘4년 동안 숙사(塾師, 글방 스승) 생활’을 했다는 등의 사실이 단재의 연보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단재는 1898년 성균관에 입교해 1905년에 졸업했으므로 시의 내용처럼 1898년부터 1901년 사이에 숙사를 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또 시에는 화자에게 80대 대고모(할아버지의 누이)가 있는 것으로 나오지만, “단재에게는 대고모가 존재하지 않았다”.

단재의 서예 작품으로 미술 백과에 소개된 8폭 병풍. 김주현 제공
단재의 서예 작품으로 미술 백과에 소개된 8폭 병풍. 김주현 제공

김 교수는 이 시의 후반부에 학문에 힘쓰고 효제를 생활화하며 사당에 참배하는 등 수신과 제가라는 유교적 덕목을 강조한 내용이 나오는 것이 단재의 사상과 어긋난다고 보았다. 가령 단재가 “유학을 항상 배척하기는 하되 거기 대한 지식은 또한 일가의 견을 가졌다”고 언급한 위당 정인보의 말에서 보듯 “단재는 수신과 제가를 바탕으로 하는 위가지학(爲家之學)보다는 대아적 삶을 실천하는 위국지학(爲國之學)을 중시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와 함께 이 서한의 글씨가 단재의 친필 편지에서 보이는 글씨들과 크게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가령 단재 자신의 이름 가운데 글자인 ‘캘 채’(采) 자의 경우 마지막 두 획이 오언배율에서는 가운데로 말린 형태인 반면 단재의 친필 편지 등에서는 ‘여덟 팔’(八) 자처럼 좌우로 내리뻗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단재가 왕유의 시 일부를 초서체로 쓴 글씨라며 인터넷에 올라온 작품. 김주현 제공
단재가 왕유의 시 일부를 초서체로 쓴 글씨라며 인터넷에 올라온 작품. 김주현 제공

‘신채호 유묵으로 알려진 서예 작품의 진위 여부 고증’은 신채호의 유묵으로 알려진 8폭 병풍, 10폭 족자 그리고 오언시 서예의 진위를 따진 논문이다. 김 교수는 주자의 글로 알려진 ‘부자기문’(不自棄文)의 일부를 옮겨 쓴 8폭 병풍, 역시 ‘주자십훈’을 글씨로 쓴 10폭 족자 그리고 왕유의 시 구절을 초서체로 쓴 서예 등 단재의 글씨로 알려진 작품들을 검토한 결과 이것들이 모두 단재의 글씨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출처가 의심스럽고, 단재가 주자 숭배자를 노예로 간주할 정도로 주자에게 비판적이었으며, 서체가 단재의 친필과 다르고, 단재가 평소 낙관이나 인장을 찍지 않은 데 반해 이 유묵 작품들에는 한결같이 단재의 낙관이 붙어 있다는 점 등을 들어 “8폭 병풍, 10폭 족자, 왕유 시는 단재의 이름을 빌려 조작한 가품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결론 내렸다.

김 교수는 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단재는 글씨가 형편없어서 남의 글을 서예로 써준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고, 그 자신이 시적 재능이 뛰어난 단재가 굳이 남의 글을 써줄 이유가 없다”며 “신채호의 한시와 서예 작품에 가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하는 건 식자로서 책임 회피라는 생각이 들어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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