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이슈> 창간 10돌 기념 앨범 <시트>에 참여한 빅이슈 판매원들. 왼쪽부터 문영수·안연호·오현석·서명진씨. 빅이슈 제공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가 들린다.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지나는 소리도 들린다. 어느 지하철역 입구의 시끌벅적한 소음을 뚫고 한 사내가 외친다. “<빅이슈>가 한권에 5천원!” 이어지는 가수 이민휘의 서늘한 목소리.
“꽃이 핀다고 너무 기뻐하지 말아요/ 꽃이 진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하늘이 맑다고 들뜬 마음 감추지 못하거나/ 하늘이 검다고 너무 우울해하지 말아요/ 당신이 내가 아니듯 내가 당신이 아니지만/ 불어오는 바람에 서로를 스쳐 가겠지만/ 결코 덧없이 사라지는 무의미한 존재는 되지 말아요”
덧없는 인생일지언정 무의미한 존재는 아니길 갈구하는 거리의 철학자 노래인가. ‘역사(驛舍)의 시간’은 그렇게 흐른다. 지난 25일 발매된 <빅이슈> 창간 10돌 기념 앨범 <시트>(SEAT) 수록곡이다.
<빅이슈> 창간 10돌 기념 앨범 <시트> 표지. 빅이슈 제공
<빅이슈>는 1991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잡지다. 보금자리를 잃고 거리에서 노숙하는 ‘홈리스’들이 잡지를 팔아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기업 ‘빅이슈’가 만든다. 잡지 판매금의 절반을 판매원이 가져간다. <빅이슈>는 현재 세계 6개국에서 8종을 발행하고 있다. 한국판 <빅이슈>는 2010년 7월 창간해, 격주간지로 독자와 만나고 있다. 지난 10년간 1159명(중복 인원 제외하면 525명)이 ‘빅판’(빅이슈 판매원)으로 참여했다.
문영수(60)씨가 빅판으로 일한 건 2015년부터다. 한때는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살았지만, 경제적 문제로 집을 나와 연락이 끊긴 지 20년째다. 2011년 공장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했다. 왼쪽 발가락이 괴사해 5개 모두 잘라야 했다. 회복하고 복직했지만, 2013년 또 사고를 당해 왼쪽 무릎을 다쳤다. 공장에선 일이 많았다. 매일 밤늦게까지 잔업을 해야 했다. 부상 후유증에다 장시간 노동에 녹초가 된 그는 2014년 말 공장을 그만뒀다.
공장 컨테이너 기숙사를 나오니 갈 곳이 없었다. 나이도 있고 다리도 불편하다 보니 재취업이 쉽지 않았다. 친형 집에 얹혀살며 술로 시간을 보내다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다큐멘터리 3일>(KBS) 빅이슈 편을 봤다. 그길로 빅이슈 사무실을 찾아갔다. “일하고 싶습니다.” 경기 부천 역곡역을 배정받고 근처 고시원에 들어갔다. 부끄럼 많은 성격이라 거리에서 종일 외치는 게 쉽지 않았다. 하루 10권 팔기도 버거웠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마침 자리가 난 서울 신도림역으로 옮기면서 사정이 나아졌다. 그는 따뜻한 글귀를 손수 쓴 손편지를 잡지에 넣어 팔기 시작했다. 감동한 독자들은 단골이 됐다.
<빅이슈> 창간 10돌 기념 앨범 <시트>에 참여한 빅이슈 판매원들과 프로듀서 말립. 왼쪽부터 오현석·말립·문영수·안연호·서명진씨. 빅이슈 제공
2017년 12월이었다. 잡지 표지 모델이 아이돌그룹 엑소의 카이였다. 누군가가 잡지를 사면서 “내일 이 근처 고척스카이돔에서 엑소가 참석하는 음악 시상식이 열리니 팬들이 많이 올 거예요. 책 많이 갖다 놓으세요”라고 귀띔했다. 이튿날 하루 500권 넘게 팔았다. “사람들이 줄 서서 책을 사 간 건 처음이었어요. 엑소 팬들이 빅판들 고생한다고 빵과 음료수도 잔뜩 가져다줘서 집에 싸 갔다니까요. 고마운 마음 평생 못 잊을 거예요.”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2018년 7월이었다. 동료 빅판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하러 갔다. 간암 말기라 했다. 병상의 동료는 환하게 웃으며 그를 맞았다. 복잡한 심경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뒤 “다음에 또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나서는데, 동료의 누님이 따라 나왔다. “동생이 한달밖에 못 산대요.” 눈물을 쏟는 누님에게 “힘내세요”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아등바등 벌어서 간신히 임대주택을 마련했는데, 그곳으로 못 돌아간다니….’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그날 밤 시를 썼다. 동료가 떠난 뒤, 시는 노래가 됐다. 이민휘가 그 대신 부른 ‘역사의 시간’이다. 앨범 전체를 작곡하고 프로듀싱한 디제이 겸 프로듀서 말립(본명 고재경)은 가사에 숨은 사연을 미처 알지 못했다. 왠지 슬픈 마음이 느껴져 노래도 그렇게 만들었다. 문영수씨는 완성된 노래를 듣고는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앨범을 제안한 건 말립이었다. 그는 고3 때 텔레비전에서 <빅이슈> 창간 소식을 접하고 무작정 사무실로 찾아갔다. 뭐든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이후 10년간 판매 도우미, 홈리스 월드컵 도우미 등으로 간간이 활동하며 인연을 이어왔다. “올해 10주년을 맞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노래 하나 만들어보자고 제안한 것이 결국 7곡을 담은 앨범이 됐네요.” 작업에는 디제이 솔스케이프, 힙합그룹 엑스엑스엑스(XXX)의 프랭크, 허키 시바세키, 250, 주럼퍼그, 박준우, 기타리스트 구영준, 베이시스트 이재, 드러머 김다빈, 첼리스트 조지 더럼 등 10여명이 기꺼이 힘을 보탰다.
말립은 참여를 희망하는 빅판들에게서 자신의 얘기를 담은 가사를 받고 그에 맞는 곡을 만들었다. ‘역사의 시간’을 제외한 다른 노래들은 가사를 쓴 사람이 직접 부르도록 했다. 문영수씨는 ‘서 있는 남자’ 가사도 썼다. 하루에 짧게는 5시간, 길게는 10시간까지 거리에 서 있는 빅판들의 고충과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를 직접 불렀다. 여기에 래퍼 장석훈의 랩을 더하니 근사하고 세련된 힙합곡이 됐다.
서명진(48)씨는 부모님이 운영하는 동네 서점에서 일했다. 199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당시 형편이 어려워진 학생들에게 참고서를 외상으로 내줬을 정도로 정이 많았다. 2009년 부모님과 다투고 독립하겠다고 집을 나왔다. 주유소에서 일하다 기름혼합 사고를 내고 잘렸다. ‘될 대로 되라’는 심경으로 시작한 노숙이 3년이나 이어졌다. 고시원에 들어가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대포통장에 명의를 내줬다가 빚만 잔뜩 지고 집행유예형을 받았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2013년 빅이슈 사무실을 찾아갔어요. 인생 2막의 시작이었죠.” 빅판이 된 건 물론, 빅판들이 결성한 ‘봄날 밴드’에도 들어갔다. 보컬 겸 베이스가 그의 자리다.
빅이슈 판매원 문영수씨가 <빅이슈> 창간 10돌 기념 앨범 <시트> 발매를 축하하며 직접 그리고 쓴 메시지. 빅이슈 제공
홀로서기에 성공해 임대주택에 들어간 그에게 사랑하는 사람도 생겼다. 그는 연인에 대한 사랑과 지난 7년간 자신을 찾아준 독자들에 대한 고마움을 중의적으로 담은 노랫말을 쓰고 불렀다. “하루를 7년같이/ 7년을 하루같이/ 날 바라보는 나무같이/ 넌 내게 안식처였지/ 마이 러버~” 경쾌한 록 스타일의 수록곡 ‘러버’다. 그는 내년 봄 자신의 결혼식장에서 이 노래를 축가로 직접 부르는 게 목표다. 빅이슈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그는 <빅이슈>를 알리는 작은 카페를 차려 인생 3막을 여는 꿈을 꾼다.
안연호(51)씨는 이제 8개월 된 신입 빅판이다. 3남 2녀 중 막내인 그는 결혼도 안 하고 시골에서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지었다. 의견 대립이 끊이지 않자 지난 2월 무작정 서울로 왔다. 수중에 돈이 떨어진 뒤 강남역에서 노숙하다 1번 출구 판매원 서명진씨의 권유로 빅판에 합류했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집에서 캔맥주를 마시다 문득 하늘나라로 간 친구를 떠올렸다. “어디로 가야 하나/ 구름 같은 내 인생/ 바람이 부는 대로/ 흘러 흘러가네/ 산 위에 올라보면/ 하늘은 더 높듯이/ 아 이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짙은 페이소스를 머금은 블루스곡 ‘기념일’은 그렇게 빚어졌다.
2020년 11월1일치 <빅이슈> 238호 표지 모델은 배우 이준혁이다. 빅이슈 제공
<빅이슈> 창간 멤버 오현석(50)씨는 가사를 쓰진 않았지만, 4곡에 목소리를 보탰다. ‘역사의 시간’ 들머리 빅판의 외침도 그의 목소리다. 그는 신입 빅판이 오면 교육을 시키고 “인생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이끌어주는, 빅이슈의 산증인이다. 말립이 10년 전 빅이슈를 찾았을 때 처음 인연을 맺은 빅판이기도 하다. “글 재주가 없어” 제시간에 가사를 내지 못한 그에게 말립은 코러스라도 꼭 참여해달라고 청했다. 그는 앨범 문을 닫는 연주곡 ‘집으로 오는 길’에서 허밍으로 노래한다. 가사는 없어도 세상의 모든 소외된 자들을 포근한 안식처로 인도하는 희망가처럼 들린다.
코로나19는 빅판들의 삶까지 뒤흔들었다. 김선호 빅이슈 매니저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매출이 30% 수준까지 떨어졌다. 많을 때는 80명까지 되던 빅판도 35명으로 줄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공연이라도 한판 벌여 더 많은 빅판들이 어깨를 겯고 희망가를 부르기를 소망한다. 이들의 노래는 희망과 용기의 바이러스가 되어 거리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