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극단 시어터 호라이즌의 <루-팅 더 머맨>
“헐벗고 굶주리고 죽도록 일했는데/ 매 맞고 억눌려도 말 한마디 안 했는디/ 쉬지도 눕지도 잠들지도 못했는디/ 어허 이게 웬일이여/ 내가 무슨 죽을죄라/ 이리도 벌이 모질드란 말이냐”
임진택이 힘 있는 목소리로 부르는 <소리내력>이 지난 27일 서울혁신파크 느티나무홀을 에워쌌다. 고단한 민중의 삶과 독재 정치에 대한 비판을 담은 창작 판소리다. 고단한 삶을 토로했다가 권력에 대한 비판으로 몰려 억울하게 죽어가는 도시 빈민의 절규가 폐부를 찌른다.
이날 임진택의 목소리는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부르짖다 분신한 전태일을 대변했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전태일기념관에서 주최하고 나무닭움직임연구소에서 주관한 ‘동아시아 민중연극제’가 이날 개막해 31일까지 열린다.
동아시아 민중연극제는 세계의 민중극단이 힘을 모아 준비했다. 한국, 홍콩, 대만, 타이
4곳에서 12개 극단(국내 8팀, 국외 4팀)의 젊은 연극인들이 참여한다. 노동, 인권, 생명, 평화를 주제로 연극, 판소리, 전위예술 등 다양한 장르의 무대를 꾸민다. 전태일기념관 이수호 관장은 “노동과 인권의 가치를 되새기고 침체한 공동체에 생기를 불어넣는 연대의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 나라 민중극단의 연대는 한국의 ‘운동’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나무닭움직임연구소는 지난해 홍콩의 한 포럼에 참여했다가 그곳 극단 친구들이 한국의 민주화운동 과정을 꿰뚫고 있다는 데 놀랐다. 나무닭움직임연구소 임은혜 기획감독은 “이한열 열사, 광주 5·18, 전태일 열사, 87년 노동자 대투쟁, 촛불집회도 알고 있었다. 그들이 한국의 젊은 연극인들과 교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연구소 자체적으로 천막극장을 설치하고 전태일 50주년을 기리려던 계획에 전태일기념관이 합류하면서 판을 키웠다.
주로 우리 역사를 들여다보고 노동의 문제를 꼬집는 작품이 많다. 극단 함께사는세상이 선보이는 가두극장 <하차>(29일 저녁 6시)는 소년 하차꾼을 통해 ‘알바 노동자’의 모습을 담아낸다.
효림 스님과 자권의 <시와 노래의 만남>(30일 저녁 7시)은 청춘의 애환을 노래한다. 아신아트컴퍼니의 <협상 1948>(30일 오후 3시, 4시)은 제주 4·3사건의 평화협상 실화를 다룬다. 음악으로 홍콩의 현실을 우화 형식으로 표현한 홍콩 시어터 호라이즌의 <루-팅 더 머맨>(28일 밤 8시)과 민족의 정신적 세계를 보여주는 대만 극단 샤인하우스 시어터의 <더 위스퍼 오브 더 웨이브>(29일 밤 8시)도 눈길을 끈다.
공연 대부분은 극단이 평소 선보이던 작품 중에 선택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준비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나라가 참여해 폐막작을 만들려던 계획이 취소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국내 공연은 100% 사전예약제로 서울혁신파크 무대에 오르지만, 국외 공연은 온라인으로 봐야 한다. 모든 공연은 유튜브 ‘동아시아민중연극제’에서 만날 수 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