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장(가운데 모자 쓴 이) 세종손글씨연구소 대표와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수강생들이 신영복체로 쓴 전태일 열사의 문장들을 펼쳐보이고 있다. 김청연 기자
“‘신영복체’에는 1980년대와 90년대의 가치가 전부 담겨 있지요. 사회변화를 바라는 그 시대 사람들의 염원과 감수성이 글자의 선과 획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김성장(62) 세종손글씨연구소 대표가 신영복체에 매료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오래 전부터 예술의 구체적 쓰임새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지만 문학이나 미술과 달리 서예에서 진보적 가치를 찾기는 흔치 않은 일이다.
지난 4일 서울 마포 작업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신영복체를 만났던 순간을 기억해냈다. “서예를 배우면서 신영복 붓글씨가 눈에 들어왔어요. 역동적이고 자유로운 느낌이었어요. 곡선 중심의 획으로 변화무쌍하게 진행되지요. 수평으로는 안정돼 있고 수직으로는 비권위적이죠. 흔들리는 모양새를 보고 있노라면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져요. 균형을 깨뜨리며 옆자리 획과 글자들이 서로 끊임없이 약점을 보완하는 구조인데 사회적 연대를 상징한다고 할 수도 있고 인간관계의 실상을 표현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어요.”
김성장 세종손글씨연구소 대표.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제공
그는 지난 2008년 ‘신영복 한글 서예의 사회성 연구’라는 주제로 원광대 대학원에서 석사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선생과 인연을 맺고 좀더 꼼꼼하게 서체를 분석했다. “신영복체는 기본적으로 전서(篆書), 예서(隸書), 해서(楷書), 행서(行書) 등의 한자 서체를 익혀야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하지요. 단련 과정이 오래 걸려요. 저 역시 한자의 기본을 익힌 뒤 2~3년 정도 지나서야 겨우 모양이 나왔고요. 그런데 현대인들이 그걸 다 소화하기엔 너무 길어요. 그래서 신영복체를 재구성해서 한글을 주로 쓰면서도 기초를 익힐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 겁니다. 6년여의 실험이 성공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 대표는 글자 획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한자 서체를 통해 익혀야 할 요소들을 한글에 압축 적용했다. “힌트만 주면 딱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스스로 오랫동안 글씨를 쓰면서 실패를 거듭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방법인 것 같아요. 배운 지 1년도 채 안 된 분들이 곧잘 쓰는 걸 보면 뿌듯합니다.”
2008년 ‘신영복체’ 연구로 석사학위
한글로 신영복체 구현 6년 ‘실험’
15일 ‘전태일 50주기’ 붓글씨 전시
새달 22일 ‘한겨레교육’ 1대1 강습
전교조 해직교사·시인·문화활동가
“생전 신 선생 ‘나보다 잘 쓴다’ 인정”
그의 노력을 생전의 신영복 선생이 제대로 알아봤다고 한다. “한 번은 대전의 한 시민단체에서 선생에게 글씨를 청했대요. 그때 선생이 ‘대전 옆 옥천에 나보다 신영복체를 더 잘 쓰는 사람이 있다’며 저를 소개했다고 해요.” 시인, 전교조 교사, 조선일보 반대운동에 앞장선 문화활동가로 불리던 그가 이제는 ‘신영복체를 가장 유려하게 쓰는 서예가’로 불리는 이유다. 그는 “신영복체를 배우려는 이가 늘었다는 걸 실감하는데 참 특별한 현상”이라면서 “그런 흐름의 한 부분을 제가 담당하고 있다는 것도 뜻밖”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 세종시에 머물면서 붓글씨 강좌와 영상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일주일에 하루는 서울 마포구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신영복체를 가르친다. 오는 15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리는 ‘전태일 분신항거 50주기 붓글씨 전’에 수강생 26명과 함께 ‘오늘은 우리가 전태일입니다’를 주제로 전시할 예정이며 오는 29일부터 10월17일까지는 서울 노원구 더숲갤러리에서도 전시회를 연다.
전태일의 글을 신영복체로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수강생 백인석(53)씨는 “‘신영복체’가 갖는 사회성과 전태일 열사가 열망했던 메시지를 전하려 전국 각지의 수강생이 모여 전시회를 기획했다”고 소개했다. 수강생 최우령(48)씨는 ‘글씨에 마음이 담기는 과정’을 설명했다. “신영복 선생님 말씀 중에 ‘자유’라는 말이 있어요. ‘자기 이유’.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가 있으면 어떤 어려운 일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말인데요. 그 말을 토대로 제 글씨와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글씨를 쓰면서 ‘이 글씨에 내가 담겨야 한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수련 중이에요. 전시를 보러 오는 분들께도 이런 마음이 전해졌으면 해요.”
김 대표는 오는 10월22일부터 한겨레교육에서 ‘신영복처럼 쓰기 : 어깨동무체 배우기’를 강의한다. 일대일 개인지도를 통해 진행하므로 초심자부터 경력자까지 누구나 수강이 가능하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