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인위적 사건보다 정서 담아 내밀한 얘기 더 다가갔으면”

등록 2020-09-07 04:59수정 2020-09-07 09:58

[②‘남매의 여름밤’으로 로테르담 입성한 윤단비 감독]

요즘 한국 영화계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여성 감독들의 약진이다. 국내외 영화제 59관왕을 달성한 <벌새> 김보라 감독을 비롯해 <우리들> 윤가은 감독, <메기> 이옥섭 감독 등이 대표적이다. 이 명단에 올려야 마땅한 여성 감독 둘이 한꺼번에 등장했다. 최근 장편 데뷔작으로 호평받고 있는 <69세> 임선애 감독과 <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감독을 만나봤다.

영화 &lt;남매의 여름밤&gt;을 연출한 윤단비 감독.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연출한 윤단비 감독.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쳇바퀴 돌듯 학교와 집을 오가던 고3 학생에게 광주극장은 소중한 아지트였다. 관객석이 2층까지 있는 오래된 단관극장 공간이 주는 아늑함이 좋았다. 일주일에 2~3번꼴로 야간자율학습을 빼먹고 가서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봤다. 진로를 아직 정하지 못했던 그는 국민대 연극영화과에 지원했고,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아버지는 광주광역시에서 나고 자란 외동딸을 서울로 보내는 걸 내키지 않아 했다. “영화는 박찬욱·봉준호 같은 사람들이 하는 건데, 여자인 네가 어떻게 하겠냐”며 불안해했다. “아버지는 제가 쉽지 않은 길을 갔다가 좌절하면 어쩌나 걱정하셨던 것 같아요. 아버지도 젊은 시절 신춘문예에 도전했다 좌절한 경험이 있거든요.”

걱정과 달리 윤단비 감독의 첫 장편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됐다. 딸의 영화를 본 아버지는 “네가 만들어서가 아니라 정말 좋은 영화다”라며 열렬한 지지자가 돼주었다. 영화는 한국영화감독조합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고, 올해 초 네덜란드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밝은미래상을 받기도 했다. 지난달 20일 개봉해 “올해 들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동진 평론가)이라는 극찬을 들었고, 국외 영화제 초청도 끊이지 않는다.

영화 &lt;남매의 여름밤&gt;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 <남매의 여름밤> 스틸컷.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남매의 여름밤>은 어린 남매가 할아버지의 오래된 2층 양옥집에서 여름방학을 보내는 이야기를 담았다. 특별한 사건 없이 가족이 모여 밥을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때론 소소하게 다투는 장면의 연속이다. 남매는 처음에 할아버지를 어려워하다가 차츰 마음을 열어간다. “인위적 사건보다는 정서를 담고 싶었어요. 제가 7살 때 집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같이 산 적이 있었어요. 그때 할머니를 무서워하며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거든요. 할머니 돌아가시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슬픔과 죄책감이 밀려왔어요. 그때 못 했던 애도를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영화에 가족의 화기애애한 모습만 나오는 건 아니다. 남매의 고모가 이혼 위기에 처하는 등 숨기고 싶은 치부까지 낱낱이 드러낸다. “저도 부모님이 싸우거나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서 형편이 어려워지는 등 치부가 있었지만 친구들에게 숨겼어요. 미디어에는 화목한 가족만 나왔거든요. 안 좋은 얘기를 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다들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더라고요. 누구나 마찬가지라는 걸 영화로 보여줌으로써 위안을 전하고 싶었어요.” 그의 뜻대로 많은 이들이 영화를 보고 “우리 가족 얘기 같다”며 공감을 나타낸다.

영화 &lt;남매의 여름밤&gt;을 연출한 윤단비 감독.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연출한 윤단비 감독.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올해 갓 서른인 윤 감독은 <우리들> 윤가은 감독과 <벌새> 김보라 감독의 계보를 잇는 차세대 여성 감독으로 일컬어진다. 그는 “각자 방식은 달라도 내밀한 성장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이 비슷해서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며 “두 작품을 보고 자극도 받고 용기도 얻었다”고 말했다.

“과거엔 충무로 도제 시스템을 통해 감독이 나왔지만, 이제는 대학원이나 영화아카데미를 거쳐 독립영화 감독이 되는 길이 보편화하면서 여성에게도 기회가 많이 열린 것 같아요. <우리들> <벌새>처럼 이전과 다른 시선을 담은 여성 감독 영화가 좋은 반응을 얻은 것도 사실이고요. 앞으로 감독이 남자든 여자든 간에 다양한 얘기, 내밀한 얘기가 사람들에게 더 많이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교보문고에 ‘한강 책’ 반품하는 동네서점 “주문 안 받을 땐 언제고…” 1.

교보문고에 ‘한강 책’ 반품하는 동네서점 “주문 안 받을 땐 언제고…”

‘일용 엄니’ 김수미…“엄마, 미안해” 통곡 속에 영면하다 2.

‘일용 엄니’ 김수미…“엄마, 미안해” 통곡 속에 영면하다

감탄만 나오는 1000년 단풍길…2만그루 ‘꽃단풍’ 피우는 이곳 3.

감탄만 나오는 1000년 단풍길…2만그루 ‘꽃단풍’ 피우는 이곳

김수미가 그렸던 마지막…“헌화 뒤 웃을 수 있는 영정사진” 4.

김수미가 그렸던 마지막…“헌화 뒤 웃을 수 있는 영정사진”

셰프들도 김수미 추모…“음식 나누고 베푼 요리 연구가” 5.

셰프들도 김수미 추모…“음식 나누고 베푼 요리 연구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