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6년, 미세먼지로 가득한 지구에서 인류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 살아간다. 미세먼지 항체 주사를 맞은 시(C)와 그렇지 못한 엔(N). 태어날 때부터 항체의 유무로 구분된 두 집단의 삶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격차로 벌어진다. 기대수명이 100살인 시와 달리 엔의 평균수명은 고작 30살에 불과하다. 엔 사이에서도 수명을 연장하고 싶어 청정복을 구해 입은 엔시시(NCC)와 나머지 집단의 구분이 있지만, 엔시시들조차 청정복의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탄생과 동시에 삶의 여러 가지 가능성에서 차단된 엔들은 그들만의 거주 지역인 엔타운에 분리된 채 나름의 생존 방식을 터득해나간다.
지난달 토종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 웨이브를 통해 선공개된 에스에프(SF) 앤솔러지 시리즈 <에스 에프 에잇>(SF8)이 지난 14일부터 문화방송(MBC)에서도 방영을 시작했다. 이 시리즈의 세번째 에피소드이자 이번주 방영작인 ‘우주인 조안’은 오염된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재난물이다. 공교롭게도 지금의 현실과 맞물리면서 더 화제를 모은 작품이기도 하다. “미세먼지보다 더 큰 재앙은 차별”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약자를 향한 혐오와 배제가 일상으로 자리 잡은 극 중 배경이 동시대의 그림자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범유행 시대를 통과하면서 우리는 재난이 불평등을 어떻게 심화시키는가를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다. ‘우주인 조안’이 그리는 세계는 이 같은 재난불평등이 아예 일상화된 디스토피아다.
역설적이게도 ‘우주인 조안’의 아름다움은 바로 그 잔혹한 비극 위에서 빚어진다. 주인공 이오(최성은)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시의 안전한 세계 안에서 정해진 궤도만을 밟고 살아온 청춘이었다. 하지만 병원 쪽의 실수로 자신에게 항체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 인생의 결정적 전환점을 맞이한다. 이오는 그전까지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던 엔의 세상 속으로 발을 들인다. 그리고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던 조안(김보라)을 만나 그에게 매료된다. 언제 죽음이 닥칠지 모르는 엔의 현실 속에서도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조안의 열정은 이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주인 조안’은 이오와 조안의 만남과 사랑을 통해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던 두 세계가 교차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찬란하게 그려낸다. 드라마의 하이라이트 신에서 이오와 조안의 머리 위로 펼쳐진 광활한 우주는 두 세계에 가로놓인 장벽이 아무리 높고 견고해도 소통의 욕망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우리 모두는 연결돼 있는 게 아닐까?”라는 조안의 마지막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격리를 강조하는 코로나19의 재난 시국에 운명처럼 도착한 ‘우주인 조안’은 그렇게 연결의 가치를 환기하는 작품이자 올해 가장 눈부신 드라마 중 하나다.
배우들의 연기도 빛을 발한다. 제이티비시(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통해 차세대 연기파 배우의 가능성을 보여준 김보라와 영화 <시동>을 통해 충무로 대형 신인으로 급부상한 최성은의 케미스트리는 보는 이들의 가슴까지 두근거리게 한다. 좀 더 큰 스크린으로 다시 보고 싶은 이들은 오는 9월10일 개막할 제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도 만날 수 있다.
티브이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