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손잡은 시도는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전에 없던 새로운 조합으로 제작 과정부터 기대를 모았던 한국형 공상과학(SF) 영화 <에스에프에잇>(SF8)이 공개됐다. 지상파 3사가 손잡고 만든 오티티 웨이브(wavve)에서 7월10일 전편을 풀었고, 8월14일부터 매주 금요일 밤 10시10분에 <문화방송>(MBC)을 통해 한 편씩 내보내고 있다. 28일, 3부 <우주인 조안>의 방영을 앞뒀다.
<에스에프에잇>은 콘텐츠 생산·유통 창구가 다양해진 상황에서 창작자들끼리 함께 발전 방향을 모색한 대표적인 사례다. 지상파 3사가 넷플릭스에 맞서는 한국형 오티티를 만들고, 여기에 한국영화감독조합이 힘을 보태 새로운 장르를 시도했고, 결과물을 오티티와 지상파에 모두 공개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다. 스크린 개봉도 염두에 둬 8부 <인간증명>은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했고, 1부 <간호중>도 영화제 출품을 준비 중이다.
뚜껑을 연 <에스에프에잇>은 시각적인 충격보단 이야기에 집중해 눈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전략을 택했다. 8부작 모두 30년 후의 근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다움, 인간과 로봇의 교감 등 인공지능(AI) 시대에 고민해볼 만한 화두를 던진다. 1부 <간호중>(민규동 감독, 이유영·예수정 출연)은 요양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간호 로봇과 보호자의 교감, 2부 <블링크>(한가람 감독, 이시영 출연)는 경찰과 에이아이 형사의 협력, 3부 <우주인 조안>(이윤정 감독, 최성은·김보라 출연)은 미세먼지 항체 주사를 맞은 시(C)와 맞지 못한 엔(N)의 이야기다. 4부 <만신>(노덕 감독, 이연희·이동휘 출연)은 인공지능 기반 운세 프로그램 만신에 목매는 사람들, 5부 <하얀 까마귀>(장철수 감독, 안희연 출연)는 트라우마를 이용한 게임 속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마주한다. 6부 <증강 콩깍지>(오기환 감독, 최시원·유이 출연)는 애플리케이션 속에서 연애하는 사람들, 7부 <일주일 만에 사랑할 순 없다>(안국진 감독, 이다윗·신은수 출연)는 지구 종말을 앞두고 나타난 초능력자들, 8부 <인간증명>(김의석 감독, 문소리 출연)은 아들의 뇌를 이식한 에이아이가 등장한다. 죽은 아들의 뇌가 완전히 소멸하자 아들처럼 여겨온 로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고민은 곧 닥칠 우리의 고민일 수 있다.
SF8 3부 <우주인 조안>. 프로그램 갈무리
총괄기획자인 민규동 감독은 “지금 (제작) 여건에서 서구의 장대한 에스에프의 구현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일상과 붙어 있는 에스에프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에스에프에잇>은 자율주행이나 허공에 등장하는 디지털 화면 등 편리한 기술 외에는 우리의 일상과 비슷하게 연출해 현실감을 살렸다.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닥친 이야기를 내세워 몰입도도 높였다. 3부 <우주인 조안>은 인간 사회가 미세먼지 항체 유무에 따라 두 부류로 나뉜 모습을 통해 현실의 계급사회를 그대로 투영했다. 미세먼지로 청정복을 입고 다니며 답답해하는 모습은 코로나19로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지금 우리 모습과 닮았다. 이윤정 감독은 “계급이 나뉜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고 결정하는 모든 순간이 지금, 혹은 앞으로 닥칠 우리의 문제”라며 “에스에프는 그것을 조금 더 쉽게 카테고리화해서 질문을 던지게 하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아쉬움과 숙제도 남겼다. 파격보다는 친근함을 택했다 해도 오티티에서 선보이는 만큼 8부작 중 한두 편쯤은 새로운 연출이나 파격적인 이야기를 시도했어도 좋았을 터다. <에스에프에잇>은 1~8부가 유사한 분위기인데, 오티티 시대에 눈높이가 높아진 시청자의 뇌리에 남기엔 역부족일 수 있다.
왜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했을까를 짚다 보면 토종 오티티의 한계와 맞닥뜨린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촬영을 진행해야 했기에 시각적 구현에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민규동 감독은 “작품의 토대가 된 에스에프 원작 소설을 고를 때도 제한된 예산 안에서 가능한 것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애초 오티티용과 티브이용으로 각각 편집하려 했지만, 제작비 한계로 내용이 같아졌다. 회당 10회차 안에 모든 촬영을 완료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도 컸다고 한다.
하지만 에스에프 티브이 영화라는 새로운 시도를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나름의 의미도 있다. 좀비물이 수많은 실패를 거쳐 대중문화의 주요 소재가 된 것처럼 에스에프 역시 수많은 실패를 거칠 수밖에 없다. 민규동 감독은 “우리만의 서사가 강조된 에스에프물이 나오려면 망하고 실패하고 다듬어지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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