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그 노래 소리는/ 내 마음에 울려 퍼졌어요/ 내 마음은 이미 찍혔어요/ 린도르가 상처를 냈어요/ 그래, 린도르는 내 사람이에요/ 그래요, 나는 맹세코 뜻을 이룰 거예요~♬” 지난 11일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중에서 로시나가 부르는 ‘방금 그 노랫소리는’의 한 대목이 서울 북촌 마을에 울려 퍼졌다. 오랜 나무 내음이 가득한 전통 한옥을 울리는 서양 오페라의 결연한 사랑 맹세는 어쩐지 좀 더 처연하게 느껴진다.
이날 북촌 한옥에서 이 곡을 들려준 소프라노 박혜상은 “따뜻한 햇살도 비추고 자연 안에 안긴 느낌도 들어 같은 곡이라도 새롭게 느껴진다”고 했다. 2019년 글라인드본 페스티벌에서 로시나 역으로 화려한 조명을 받았던 그에게도 한옥에서 부르는 이 곡이 색다른 감정을 샘솟게 한 것이다. 박혜상은 2017년 오페라에 데뷔해 세계 주요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 무대에 서고 있다. 지난 5월 한국인 소프라노 중에는 조수미 이후 두번째로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 ‘도이체 그라모폰’과 계약을 맺었다.
같은 곡이라도 다른 느낌을 주는 공간. 한옥에서 연주하는 라이브 공연 ‘기와’(kiwa) 촬영 현장이다. 유니버설뮤직 코리아가 2018년 11월부터 시작한 프로젝트로, 국내외 아티스트들이 한옥에서 공연한 뒤 이를 유튜브 채널에서 공개한다. 한옥에서 여는 미니 콘서트로 눈길을 끌었는데, 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며 공연을 보는 게 쉽지 않아지면서 관심이 더 높아졌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쪽은 “콘텐츠 홍수 시대에 다양한 아티스트의 음악을 여러 채널로 소개하고 싶었다. 한국적인 무대에서 공연하고 유튜브를 통해 글로벌 소비자에게 풀어내면 이국적인 느낌에 끌리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장르를 아우르는 15팀이 출연했다. 피아니스트 이루마, 크로스오버 보컬 그룹 포르테 디 콰트로, 클래식 트리오 오원을 비롯해 영국 싱어송라이터 캘럼 스콧과 조너스 블루, 3인조 록밴드 라이프 앤 타임, 방탄소년단의 ‘낙원’ 작곡가로 유명한 영국 싱어송라이터 엠엔이케이(MNEK) 등이 한옥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박혜상의 이날 공연은 10월 중 업로드가 될 예정이다. 처음엔 모든 아티스트를 대상으로 했지만 여러 이유로 유니버설뮤직과 계약을 맺은 아티스트로 범위를 좁혔다.
앞서 5월 공개된 이루마의 영상은 조회수 125만을 기록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된 화려한 공연장보다 우연성과 돌발성이 가미되는 한옥에서 펼치는 공연이 더 자연스럽고 친근한 느낌을 준다. 영상을 보고 있으면 아티스트의 음악 소리에 생생한 현장음이 섞여든다. 이루마의 영상에서는 낙엽 소리와 새소리가 백미다.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쪽은 “촬영 당일 바람이 많이 불어 낙엽 소리를 제어할 수가 없었는데, 오히려 그 소리가 정말 좋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했다. 박혜상의 촬영장에서도 매미가 힘차게 울었다. 주로 아티스트의 신곡과 인기곡을 선보이지만, 때론 한옥과 어울리는 곡을 선정해 오기도 한다. 박혜상은 “한옥 분위기에 맞게 한국 가곡을 넣는 등 선곡에 신경썼다”고 했다. 박혜상은 이날 우리 가곡인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와 헨리 퍼셀의 ‘음악은 잠시 동안’을 들려줬다.
음악도 아름답지만, 이 공연의 또 다른 핵심은 역시 한옥이다. ‘기와’ 프로젝트는 음악으로 우리 전통을 알린다. 이루마 등이 연주한 남산골 한옥마을 민씨가옥을 보며 누리꾼들은 “여기가 어디냐”며 찾아본다.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쪽은 “서울이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인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지금껏 총 6곳의 한옥을 소개했다. 하지만 소음도 신경써야 하고, 대관도 잘 되지 않아 준비 작업은 만만치 않다. 림 킴의 경우 곡 ‘몽’의 신비스러운 느낌과 어울리는 곳을 찾느라 한옥을 본떠 만든 지붕으로 유명한 경기도 화성 우리꽃식물원에서 촬영을 했다.
준비는 어렵지만 모두가 색다른 경험에 만족한다. 특히 국외 아티스트들은 한옥 실내에서 맨발로 촬영하는 것을 가장 신기해했단다. 캘럼 스콧은 공연 뒤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전통적이고 아름다운 한옥에서 공연한 독특한 경험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썼다. 박혜상은 “세계 무대에서 노래할 때 한국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며 “이번 촬영을 계기로 우리 문화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을 더 많이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엠엔이케이(MNEK).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제공
이 프로젝트도 코로나19 사태 영향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팀과 지난해 말부터 촬영을 논의했지만 출연진 중 확진자가 나오면서 취소됐다. 국외 아티스트가 자유롭게 방한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쪽은 “역설적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온라인 라이브 콘텐츠에 대한 갈망이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의 전통을 음악으로 알리는 이 프로젝트를 좀 더 다각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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