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예라고 하는 사람, 아니오라고 하는 사람>. 문화발전소 깃듦 제공
대중문화 키워드가 된 좀비가 무대도 뜯어먹을까?
24일 시작하는 연극 <예라고 하는 사람, 아니오라고 하는 사람>(28일까지 대학로 소극장 혜화당)은 “예!”라고 답한다.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동명 희곡에 좀비 코드를 섞은 이 작품은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도시를 배경으로 남녀 고등학생과 여자 교사, 군인 등이 피신하는 과정을 그린다.
뮤지컬 <이블데드>, 코믹 연극 <오 마이 갓!>, 관객참여형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등 그간 좀비가 등장하는 공연은 간간이 있었지만, <예라고 하는 사람, 아니오라고 하는 사람>은 정통 연극에서 좀비 소재를 차용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그동안 좀비 공연이 퍼포먼스나 코믹한 설정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작품은 좀비 코드에 시대의 고민을 담아 묵직한 메시지로 승부를 건다. 노심동 연출은 “‘전체’를 위한 동의가 옳은지, 그럼에도 ‘아니오’라고 해야 하는지, ‘개별성’이 억압당하는 ‘동의’는 지양돼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키려 하는데, 그 상황이 과연 옳으냐를 묻는 것이다.
무대에서 좀비는 어떻게 표현될까.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에선 얼굴을 물어뜯는 모습까지 재현되는 등 한국 좀비는 갈수록 진화해왔지만, 시간적·공간적 한계를 가진 무대 위 좀비들은 주로 퍼포먼스로 관객을 즐겁게 해왔다.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2013)는 대학로 거리에 좀비가 등장하고 관객이 도망가는 형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예라고 하는 사람, 아니오라고 하는 사람>도 극 초반 좀비들이 가면 등을 쓰고 나와 퍼포먼스를 펼친다. 다만 이후 상황을 상상하게 하는 방식으로 무대의 한계를 넘어 좀비의 살벌함을 표현한다. 노 연출은 “좀비로 변하는 상황 등을 고민해봤지만, 급하게 분장을 바꿔야 하는 무대에서 자칫 어설퍼 보일 수 있다. 이 연극은 이후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를 떠올리게 하는 심리적인 측면이 주는 섬뜩함이 주요하다”고 말했다.
드라마·영화에 이어 무대에서도 좀비가 주요 콘텐츠로 성장하려면 태생적 한계를 극복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이런 까닭으로 무대에서 정통 좀비 연극은 성공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대학로 공포 연극 역시 암전 상태에서 배우가 객석을 돌아다니며 관객을 놀라게 하는 등 비슷한 공식이 반복돼 자연스레 재미가 반감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매체의 좀비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케이(K)-좀비로 성장했다. 실제로 <이블데드> 등 좀비 공연을 관람한 관객의 평가 중엔 재미있다거나 새롭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많다. 노 연출도 “무대만의 좀비 표현 방식 등 다양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선보인 작품을 문화발전소 깃듦에서 각색해 새롭게 올린 작품이다. 주인공을 소년에서 소녀도 바꾸는 등 젠더 감수성도 반영했다. 설창호, 이현준, 이지호, 정수연, 오혜민이 출연한다. 전석 2만원.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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