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미의 TV 톡톡]
“왜 요즘 예능은 아무 의미 없이 연예인들 밥 먹는 모습만 보여주나 몰라. 예전에는 예능에서 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에게 냉장고를 주고, 형편 어려운 사람들 집도 고쳐주고, 좋은 책 선정해서 권하기도 했었는데 말이지”라는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 방송의 공익적 의미는 점차 희미해지고, 개인방송처럼 변해감을 지적한 것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연예인들끼리 웃고 떠드는 토크쇼가 주를 이루더니, 연예인들의 체험을 보여주는 리얼리티쇼가 뒤를 이었다. 그중에서도 ‘먹방’과 ‘쿡방’은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는데, 여기에 개인방송의 시대가 열리면서 ‘먹방’과 ‘쿡방’은 가장 대중적이고 꾸준히 팔리는 콘텐츠가 됐다.
‘먹방’과 ‘쿡방’도 진화를 거듭했다. 단순히 맛집을 탐방하거나 연예인의 요리 솜씨를 보여주는 것에서 벗어나, 공익성과 쌍방향성을 추구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맛남의 광장>(에스비에스), <편스토랑>(한국방송2)이 그렇다.
<맛남의 광장>은 <푸드코트> <골목식당> <고교 급식왕> 등을 통해 지역 상권을 살리고 급식의 질을 높이는 데 앞장서온 백종원이 지역 농산물 소비 촉진에 나선 프로그램이다. 백종원과 ‘농벤져스’들이 전국을 다니며,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다양한 메뉴를 개발해 고속도로 휴게소나 공항에서 음식을 맛보인다.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은 단조롭고 무성의하다고 여겨져왔지만, 이영자가 고속도로 휴게소 맛집을 언급한 이래 맛집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맛남의 광장>은 아예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를 쿡방의 근거지로 삼아 농어민도 돕고 국내 관광 수요도 늘리겠다는 야심 찬 기획으로 출발했으나, 코로나19로 궤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사람 간 접촉을 줄이기 위해 시식은 산지에서 조촐하게 진행하고, 레시피 공개를 통해 각 가정에서 요리해 농산물 소비를 진작시키는 식으로 포맷이 바뀌었다. 하지만 인기는 여전하다. 초반에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과 네이버 한성숙 대표 등을 찾아가 협업을 끌어낸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이후 백종원과 ‘농벤져스’의 티격태격하는 합이 좋고 송가인 등 특급 게스트를 합류시켜 재미를 더했다. 블로그, 유튜브, 식당 등에서 방송 레시피를 따라하고, 재고 농산물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상생의 공익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먹방과 쿡방의 가장 큰 난제는 시청자들에게 ‘그림의 떡’이 되기 쉽다는 사실이다. <편스토랑>은 화면 속 요리를 편의점 간편식으로 사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쌍방향성을 갖는다. 1인 가구와 간편식이 늘고 미디어와 실제 삶 사이의 연결에 민감한 젊은 세대에게 최적화된 기획이다. 연예인이 메뉴 개발을 하는 모습을 비추면서, 그들의 집, 가족, 일상이 노출되는데, 이는 연예인 유튜브를 즐기는 젊은 세대에게 친숙하게 느껴진다. 연예인의 수준 높은 요리 실력에 감탄하고, 시식과 품평 등 대결 구도에 긴장감을 느끼며, 최종 우승 메뉴를 다음날이면 편의점에서 맛볼 수 있으니 참여의 재미까지 쏠쏠하다.
출연자의 면면도 흥미진진하다. 이영자의 음식을 향한 집념은 푸근함을 안기고, 신비한 이미지의 이정현이 살림왕이라니 반전 매력에 빠져든다. 악녀 캐릭터를 자주 맡던 이유리의 엉뚱하면서도 도전 정신 가득한 모습도 볼수록 매력적이다.
그러나 가장 큰 울림을 주는 출연자는 역시 오윤아다. 레이싱 모델 출신의 화려한 외모로 주목받던 오윤아는 어느새 14살의 발달장애 아들을 키우는 싱글맘이 됐다. 오윤아가 요리하는 동안 민이는 엄마 몰래 빵을 집어 먹으며 흡족해하고, 카메라감독에게 다가와 껴안는다. 때로는 감정조절을 못 해 엄마에게 미안해하고, 엄마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한다. 이 모든 광경이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흔히 ‘싱글맘에 장애아’ 이야기라면 ‘휴먼 다큐멘터리’를 떠올린다. 불행, 슬픔, 연민 등을 키워드 삼아 울 준비를 하고 본다. <편스토랑>은 예능 프로그램이고, 민이의 장애는 주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 어떤 장애를 주제로 한 교양 프로그램보다 장애 인식을 개선하는 공익적 역할을 훌륭히 해낸다. 장애를 불행의 시선이 아니라 일상적 돌봄의 시선으로 보기 때문이다.
오윤아는 “민이를 데리고 나오면 뭐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그 사람들을 탓했지만, 이분들도 우리가 많이 안 나와서 적응이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더 자주 데리고 나와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한다. 차별의 시선에 주눅 들거나 적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에게 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익힐 기회를 주겠다는 태도는 얼마나 민주적인가. 오윤아는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민이로 인해 능력자가 됐음을 토로한 바 있다. 엄마 배역의 연기에 더욱 몰입했으며, 고소공포증을 이기며 절벽 하강을 했다. 아들을 먹이기 위해 갈고닦은 요리 실력으로 마침내 우승한 뒤 발달장애인을 위해 수익금을 기부하는 모습은 존경스럽다. 장애를 ‘불행’으로 소비하지 않고 ‘능력의 신장’으로 사고하게 해준 오윤아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맛남의 광장>과 <편스토랑>은 쿡방이 빠지기 쉬운 자족적인 쾌락에 머물지 않고, 공익성과 쌍방향성을 추구하며, 공동체 정신과 민주적인 시민교육에 일조하는 착한 예능이라는 점에서 찬사를 받을 만하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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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남의 광장>. 에스비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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