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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수업’ 진한새 작가 “n번방 사건처럼 끔찍한 현실, 드라마로 반추했으면”

등록 2020-05-14 18:16수정 2020-05-15 02:35

[화제·논란에 서면으로 답하다]
‘죄는 왜 나쁜가’ 원론적 질문
진지하게 답해보고 싶다 생각

윤리적 민감한 소재 다루니
미화하게 될까 두려움 가득

청소년은 소외돼 온 계층
아이들 고민에 귀 기울여야

“청춘이라기엔 간당간당한
나이대 주인공 얘기 하고파”
논란과 화제를 부른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의 진한새 작가. 넷플릭스 제공
논란과 화제를 부른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의 진한새 작가. 넷플릭스 제공
“윤리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룬다는 것에 대한 부담은 컸다. 하지만 ‘죄라는 건 왜 나쁜가’라는 원론적 질문에 진지하게 답해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가장 들여다보기 불편한 부분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 4월29일 공개 뒤 반응이 극단으로 갈리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을 쓴 진한새 작가는 작품을 둘러싼 논란에 이렇게 답했다. 이 드라마는 혼자 생계를 책임지며 사는 지수(김동희)와 구속하는 부모 밑에서 억눌려 살던 규리(박주현)를 주인공으로, 청소년 성매매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그동안 흔히 봐온 청소년 범죄물을 넘어서는 이야기에 어른들은 적잖이 놀랐다. “이게 현실”이라는 평가와 “젠더 감수성이 화두인 시대에 역행하는 것은 물론 청소년 범죄를 미화한다”는 의견이 충돌했다.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드라마를 둘러싼 논란에 13일 그가 서면으로 답했다.

―아무리 표현이 자유로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오티티·OTT)라고는 해도 한국에서는 위험한 소재다.

“뉴질랜드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한 아이가 친구들에게 담배를 파는 장면을 목격했다. 범죄를 저지르는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돈을 벌고자 하는 동기, 그 무게가 실감이 안 났다. ‘안 잡히기만 하면 되는 걸까?’ 어른이 돼 작가로서 소재를 찾던 중 10대 청소년이 조직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그 물음이 되살아났다. ‘죄라는 건 왜 나쁜가’ 하는 유치원생 같은 질문에 진지하게 답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란과 화제를 부른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의 진한새 작가. 넷플릭스 제공
논란과 화제를 부른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의 진한새 작가. 넷플릭스 제공
―10대 범죄 중에서도 성매매에 초점을 맞춘 이유가 있나?

“원론적 질문에 최대한 진지하게 답하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가장 들여다보기 불편하고 건드리기 고통스러운 부분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인간수업>은 상처를 후벼 파는 것 같은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규리가 유도부 등 친구들을 성매매에 끌어들이려는 설정 등은 상당히 충격이었다. 집필하면서 한국 시청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려하진 않았나?

“윤리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다. 자칫 죄를 비판하기는커녕 미화하게 될지도 몰랐기에 매 순간 시한폭탄을 해체하는 기분이었다. 혹시 내가 놓쳤을지 모를 윤리적 가치 판단에 관한 다양한 사람들의 피드백을 강박적으로 들었다. 공개 전후에도 대단히 불안했다. 지난 1주일간 스트레스성 소화불량에 시달려 체중도 꽤 줄었다.”

―여느 청소년 범죄물과 달리 범죄를 벌이는 주인공이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학교생활과 범죄라는 상이한 소재 사이의 대조를 부각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설정이 이뤄졌다. 모든 인물은 고등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형적 인물상에서 출발해 각각의 세세한 감정선을 다듬어나갔다.”

<인간수업>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인간수업>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엔(n)번방 사건과 맞물리면서 더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불편하다는 시각과 그러니 불편하더라도 마주해야 한다는 시각이 엇갈린다.(이 드라마는 엔번방 사건이 알려지기 전인 2018년 집필했다.)

“당연히 엔번방 사건이 보도됐을 때 경악했다. 관련자들이 제대로 법의 심판대에 서서 응당한 처분을 받게 되기만을 바랐다. <인간수업>은 비록 허구의 이야기지만, 이러한 끔찍한 현실에 대해서 반추할 기회를 마련하는 데에 미력하나마 기여했으면 한다.”

―고등학생이 주인공인데 19금이다. 어른들이 봤으면 하는 청소년의 세계를 담은 셈인데, 어른들한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

“청소년들은 어쩌면 외면당하는 것이 당연시돼온 계층인지 모른다.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어른이 되고, 자연스럽게 지난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지기에 그들의 목소리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묻힌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문제에 대해 모두 다 겪은 일이라며, 참고 기다리면 된다고 가볍게 넘기기도 한다. 그러나 청소년에게 그것은 언제 지나갈지 알 수 없는 겨울이고 엄연한 현실이다. 그 현실을 이야기하는 시선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어른들의 책임을 대놓고 강조하지도 않는다.

“어른들의 책임이 부재 혹은 부족한 상태를 묘사함으로써 오히려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었다. 아이들은 스스로의 행동이 선과 악, 어느 쪽에 속하는지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할 때가 있다. 머리로는 구분해도 가슴으로는 그러지 못할 수도 있고. 그 구분을 돕는 것이 어른의 책임 중 하나다.”

<인간수업>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인간수업>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결국 아이들의 세계에 귀 기울이자는 이야기인데, 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나, 드라마는 다큐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한다. 드라마가 사회의 민낯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런 작품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어야 한다. 드라마는 어때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비하는 입장에서 다양한 취사선택이 가능하도록 여러 결의 작품이 혼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드라마든 어느 정도는 사회를 반영할 수밖에 없지만, 메시지를 메시지로 만드는 것은 결국 시청자의 역할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뿐, 작품에 대한 가치 판단은 결국 시청자의 몫이다.”

―시대별 학원물을 보면 당시 청소년의 생활이 보인다. 어머니인 송지나 작가가 집필했던 1982년 <호랑이 선생님> 때와 비교하면 2020년 <인간수업> 속 아이들의 피폐해진 모습이 안타깝다.

“지금과 형태는 다를지 모르지만 당시에도 각자의 어려움과 고민이 있지 않았을까. 반대로 어느 시대에나 고통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밝고 따뜻한 작품도, 어두운 작품도 나올 수 있다.”

건축디자인을 전공한 진한새 작가는 2017년 웹드라마 <아이리시 어퍼컷>으로 데뷔했다. <인간수업>은 두번째 작품이다. “건축에 재능이 없었고 그래도 뭔가는 해야 먹고 사니까, 그나마 이해도가 있었던 이 분야를 택했다”는데 두 작품 만에 화제의 중심에 선 것을 보면 어머니의 디엔에이를 이어받은 것일까. 그는 어머니가 <인간수업>에 대해 어떤 조언을 했느냐는 질문에 “발전 방향에 대해 이런저런 피드백을 줬다”고 말했다. “추구하는 작품 세계는 없다”지만 청춘의 고뇌에 관심이 많다. 차기작에 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청춘이라기엔 이제 좀 간당간당한 나이의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그럭저럭 일상을 살아내고 있던 이들이 어느 날 엉뚱한 사건에 말려드는 식의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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