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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2020 ‘춘향’…6년 전의 그 춘향도 싹 잊어라

등록 2020-05-14 05:00수정 2020-05-14 08:03

[국립창극단 ‘춘향’ 이소연·김우정]
창단 70돌 기념…김명곤 극본·연출
시대상 반영해 주체적 여성 거듭나

몽룡이 건넨 혼인증서 박박 찢고
“사랑하는데 이런 징표 따윈…”
몽룡이 갑자기 이별을 통보하자
“어떻게 그럴 수가” 따져 물어

김우정은 풋풋한 신세대식 춘향
이소연은 몽룡 리드 누나 리더십
왼쪽부터 신윤복의 ‘월화정인’ 속 여성, 김은호의 ‘춘향도’, 신윤복의 ‘미인도’, 작자미상 조선말 미인도. 문화재청 누리집 갈무리
왼쪽부터 신윤복의 ‘월화정인’ 속 여성, 김은호의 ‘춘향도’, 신윤복의 ‘미인도’, 작자미상 조선말 미인도. 문화재청 누리집 갈무리

춘향이 ‘지고지순한 정절의 표상’이라고? 21세기에 이 무슨 케케묵은 소리인가. 자, 지금까지의 춘향은 싹 다 잊자. 사랑에 적극적이고 감정에 솔직한 주체적인 춘향이 찾아온다. 국립창극단이 14~24일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선보이는 창극 <춘향>에서다. 국립극장 창설 70돌 기념공연으로, 영화 <춘향뎐>과 국립창극단 최초 완판장막창극 <춘향전>(1998)의 대본을 썼던 김명곤이 극본과 연출을 맡는다. 김명곤 연출은 “전통 <춘향전>을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힘든 지점이 있다”며 “요즘 세대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겠다”고 한다.

국립창극단이 선보인 ‘춘향’은 시대에 따라 여러모로 변해왔다. 창단 기념으로 1962년 무대에 올린 여성 국극식 공연 <춘향전>으로 그 시작을 알렸고, 1980년 창극 <대춘향전>에서는 장면을 거슬러 오르는 플래시백 기법을 차용해 화제를 모았다. 1988년 <춘향전>에서는 놀이마당 형식으로 관객과 소통했으며, 1990년 <춘향전>은 무려 6시간 동안 공연하는 등 실험적인 시도가 잇따랐다.

1980~90년대가 외형적 변화를 추구한 시기였다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간 2010년 이후부터는 춘향이란 인물의 변화가 도드라졌다. 2010년 <춘향>과 외국 연출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2014년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 속 춘향은 이몽룡과 사랑 앞에서 동등한 ‘21세기형 당찬 여성’으로 등장한다.

국립창극단 &lt;춘향&gt;에서 춘향 역을 맡은 김우정. 사진 국립창극단 최문혁
국립창극단 <춘향>에서 춘향 역을 맡은 김우정. 사진 국립창극단 최문혁

6년 만에 찾아오는 이번 <춘향>은 그 정점에 서 있다. 젠더 감수성이 화두가 되고, 여성 인권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 흐름에 따라 춘향은 더 이상 남자에게 끌려다니는 나약한 여성이 아니다. 이몽룡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건넨 혼인 증서를 춘향은 박박 찢어버린다. “한 남자와 여자로 사랑을 하는데 이런 징표 따윈 필요 없다”는 뜻이다. 서울로 떠난다며 갑작스러운 이별을 통보하는 이몽룡을 눈물로 보내는 대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따져 묻는다. 춘향이 몇 년 동안 편지 한장 없는 이몽룡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게 답답했다고? <춘향>에서는 두 사람이 재회하는 시간을 확 줄여 혹시 있을지 모를 거부반응을 차단한다.

이런 변화를 완성하는 것은 춘향 역을 맡은 배우들의 면면이다. 2020년 ‘춘향’은 이소연과 김우정이 번갈아 연기한다. 이소연은 2010년 <춘향>을 앞두고 오디션으로 선발된 뒤 객원으로 활동하다가 2013년 국립창극단 정식 단원이 된 이후 춘향 역을 도맡아왔다. 김우정은 이번 작품을 위해 치러진 오디션에서 선발돼 객원으로 투입됐다. 과거에는 옛 춘향의 감정에 이입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2020년 춘향을 맡은 배우는 배역을 해석하는 시각부터 남다르다. “이몽룡이 이별을 고한다고 속으로 삭이고 순순히 이별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어요. 전통 소리를 배울 때부터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많았는데, 이번엔 그게 다 해소되니 너무 시원하고 재미있어요. 이몽룡이 이별을 얘기하면요? 붙잡진 않겠지만, 할 말 다 하고 확실히 정리할 것 같아요!”(김우정)

국립창극단 &lt;춘향&gt;에서 춘향 역을 맡은 이소연. 사진 국립창극단 최문혁
국립창극단 <춘향>에서 춘향 역을 맡은 이소연. 사진 국립창극단 최문혁

과거엔 ‘명창’으로 불리던 이들이 춘향 역을 맡았다면, 지금은 연기·소리·무용 등 다방면에 뛰어난 ‘탤런트’가 맡는다. 지금껏 김소희, 안숙선, 유수정, 박애리 등 15명이 춘향을 맡았다. 1980~90년대 춘향은 명창 안숙선이었다. 가장 오랫동안 맡아 ‘영원한 춘향’이라고 불린다. 이소연은 “안숙선 춘향은 기세 있고 당당하고 절개 있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박애리가 맡으면서 부드러움이 가미됐다면, 2010년 이소연이 맡으면서부터는 적극적인 느낌이 더해졌다. 2020년 김우정이 합류하자 16살이라는 춘향의 나이에 걸맞게 요즘 세대의 당돌함이 도드라진다. “연출님이 밝고 쾌활한 요즘 10~20대 같은 사랑을 해야 한다거나 중학생 같은 느낌으로 하라고 하신다”며 김우정은 웃었다. 스스로도 ‘나도 모르게’ 사랑 앞에 적극적인 모습을 연기한다. 김우정의 춘향이 풋풋함이 짙다면, 이몽룡 역의 김준수보다 나이가 많은 이소연은 ‘누나 리더십’이 돋보인다. 이소연은 “연출님이 조금만 자제하라는데, 저도 모르게 적극적인 연기가 나온다”고 했다.

국립창극단 &lt;춘향&gt;의 두 배우인 이소연(왼쪽)과 김우정. 국립창극단 제공
국립창극단 <춘향>의 두 배우인 이소연(왼쪽)과 김우정. 국립창극단 제공

‘춘향’이 검증된 실력자의 뽐내기 마당인 동시에 능력 있는 신인의 등용문이라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지만, 요즘은 여러 방면에서 뛰어나단 점을 인정받아 단숨에 스타가 된다. 이소연도 <춘향>을 연기한 이후 다양한 기회가 찾아왔다고 했다. 다만, 이몽룡과 달리 춘향을 맡는 배우의 생명력이 더 짧다는 점은 아쉽다. 그동안 이몽룡 역은 남상일·왕기철 등 10명이 거쳐 갔다. 이번에 이몽룡은 김준수 혼자서 연기한다. 이소연은 “남성 배우의 수명이 더 긴 것은 사실인 것 같다”며 “더 열심히 해 더 멋진 춘향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문의 (02)2280-4114.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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