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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K좀비 만드는 ‘몸 디자이너’의 세계

등록 2020-04-12 19:42수정 2020-04-13 16:32

사람 맞습니까? 우리에겐 칭찬!
좀비도 빙의도 우리 없인 안돼
‘부산행’ ‘킹덤’ 장르물 성장
‘보디 무브먼트 컴포저’ 주목받아

리듬체조 코치 출신 안무가 박재인
‘곡성’ 크레딧에 처음 이름 올린 뒤
전영·김흥래·한성수 등 전문화시켜
입을 쩌~억 벌리고 좀비가 달려든다. “커억~” 하고 내지르는 괴성에 온몸이 움츠러든다. 도망가도 소용없다. 어찌나 빠른지 떼로 몰려들어 이미 당신의 목을 물어뜯고 있다. 허기에 질주력이 ‘만렙’에 오른 케이(K)-좀비다. 한국 제작진이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2019·2020)은 미국 문화의 상징인 좀비를 한국식으로 완성해 호평을 받았다. 시즌1·2를 통틀어 좀비 연기에만 약 3000명이 참여했는데, 제작진과 배우들은 “좀비 배우들이 진짜 주인공”이라고 입을 모은다.

영화 <부산행>(2016)으로 시작된 좀비물은 드라마 <킹덤>을 거치며 한국에서도 각광받는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영화 <반도> <얼론>,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제이티비시) 등 좀비를 소재 삼은 작품이 지금도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다. 좀비물의 성장에 지대한 공을 세운 이들이 바로 ‘보디 무브먼트 컴포저’다. ‘모션 디렉터’라고도 하는데 좀비의 특성을 만들고 움직임을 구현하는 이른바 ‘몸 디자이너’ 역할을 한다. 외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기괴한 움직임만 전문으로 다루는 대형 스튜디오가 운영되는 등 이 직업군이 주목받았지만, 한국에서는 좀비와 오컬트물이 인기를 끈 최근에야 각광받는다. 보디 무브먼트 컴포저라는 이름이 엔딩크레딧에 정식으로 오른 건 2016년 개봉한 영화 <곡성>이 처음이다.

<킹덤> <반도> 등에서 좀비의 동작을 만든 전영. 넷플릭스 제공
<킹덤> <반도> 등에서 좀비의 동작을 만든 전영. 넷플릭스 제공
지금껏 무술감독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이 분야를 전문화한 이들이 박재인, 전영, 김흥래, 한성수, 조한준, 정광국 등이다. 리듬체조 코치 출신 안무가인 박재인이 <곡성>에서 기이한 몸짓을 디렉팅한 뒤 <부산행>에서 본격적으로 좀비 디자인에 나섰다. 이때 관절을 비틀어 추는 춤인 ‘본 브레이킹’에 뛰어난 전영이 합류했다. 이후 전영은 <킹덤> <반도> 등 수많은 작품에서 좀비를 도맡아 형상화하고 있다. <부산행>과 <킹덤>에서 좀비 역할을 했던 배우 한성수가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보디 무브먼트 컴포저로 참여하는 등 인력 풀도 점차 확장하고 있다. 영화 <미스터고>(2013)에서 고릴라 역할을 맡아 유명해진 김흥래도 영화 <창궐>(2018)과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2018·티브이엔)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으아아아~” 그까짓 것 대충 기괴한 소리 한번 내면 되지 디렉팅이 뭐가 필요하냐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땀 한땀 전문가의 손길이, 어설펐던 좀비를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놀라운 형체로 성장시켰다. 이들은 작업 수개월 전부터 준비에 들어간다. <킹덤>은 6개월 전부터 준비했다. 한성수는 “방영 예정인 <지금 우리 학교는>은 지난 1월부터 논의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좀비들이 어떤 이유로 누구에게 물렸는지 등 히스토리까지 생각해 콘셉트를 잡는다. <킹덤>은 배고픈 백성들이 역병에 걸린 인육을 먹은 뒤 좀비가 됐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동작을 만들었다. 전영은 “평소에는 온몸에 힘을 빼고 무기력하게 널브러져 있다가 먹이가 나타나면 입을 벌리고 목만 내민 채 놀라운 속도를 내는 방식으로 돌변한다”며 “미국 좀비와 달리 입만 사용해 먹이를 물어뜯게 했다”고 설명했다. 박재인은 <부산행>에서 좀비를 연령대별·성별로 분류하고 군인, 야구부, 등산객 등 인물군의 특성에 맞춰 각각 다른 동작을 빚었다. 첫 좀비 심은경은 뒤로 누워 있다 허릿심만으로 일어나게 하고, 그에게 물린 여자 승무원은 허리를 뒤집고 발작하도록 핵심 동작을 부여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 참여하는 한성수.
<지금 우리 학교는>에 참여하는 한성수.
그렇다고 괴상하게만 보여서는 안 된다. 김흥래는 “한국 좀비의 경우 감성적인 부분이 중요하기에 손짓 발짓 하나하나에 내면의 정서를 담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보디 무브먼트 컴포저는 연기, 안무, 디렉팅 능력을 모두 갖춰야 한다. 박재인은 <곡성>에서 구니무라 준이 네 발로 걷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일본 전통춤 부토를 공부했고, 김흥래는 <손 더 게스트>(2018·오시엔)에서 빙의된 부마자를 디렉팅하려고 수개월간 과학서적과 공포소설을 섭렵했다. 여기에 동작을 잘 표현하려고 무용과 무술도 직접 배웠다. 전영은 “기존 영화 등 이미 시각화된 작품을 참고하면 비슷해질 수도 있어서 만화나 게임 등을 보면서 레퍼토리를 다양화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배우들을 지도하는 것 역시 이들의 몫이다. 박재인은 <곡성>에서 효진(김환희)이 발작을 일으키는 장면을 5개월간 훈련시켰다. 2개월 동안 근력을 만든 뒤 리듬체조를 익히도록 했고, 움찔거리는 동작부터 소리 지르며 고통스러워하는 몸짓 등 점차 극적인 동작을 가르쳤다. 전영은 <킹덤>에서 좀비 배우들을 단계별로 트레이닝했다. 그는 “1주차는 변이 과정, 2주차는 걸음걸이, 3주차는 달리기, 4주차는 손 모양 등 단계별로 좀비를 만들어나갔다”고 말했다.

<손 더 게스트> <본대로 말하라> 등에 참여한 김흥래.
<손 더 게스트> <본대로 말하라> 등에 참여한 김흥래.
보디 무브먼트 컴포저의 역할은 기괴한 장면을 연출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김흥래는 드라마 <본 대로 말하라>(2020·오시엔)에서 김바다가 맡은 연쇄 살인범 캐릭터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전영은 드라마 <방법>(2020·티브이엔)에서 저주로 몸이 뒤틀려 죽는 이의 모습을 빚었고, 영화 <염력>(2018)에서 초능력이 생긴 신석헌(류승룡)이 염력을 쓰는 자세도 디렉팅했다. 구토하는 장면, 베드신 등 세세한 부분까지 이들이 디렉팅하기도 한다. 요즘은 게임과 애니메이션에서도 이들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손 더 게스트> 김홍선 피디는 “시청자들의 비주얼에 대한 눈높이가 점점 높아지고, 드라마의 소재도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전통적인 연기·움직임에서 벗어난 요소들이 많이 요구된다. 보디 무브먼트 컴포저의 활약은 점점 커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킹덤>의 김성훈 감독은 “시즌1, 1회에서 역병 환자가 산처럼 쌓이는 모습은 더미(인체 모형)를 사용하지 않고 배우 21명이 전영의 지도에 따라 만들었다”며 “보디 무브먼트 컴포저의 정확한 계산 없이는 불가능한 명장면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보디 무브먼트 컴포저를 전문가로 인정하는 것은 물론 이런 작업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것은 필수다. 좀비·오컬트 장르를 넘어 더 과감하고 앞선 시도도 이어져야 한다. 전영은 5명으로 구성된 본 브레이킹 팀과 다양한 장면을 함께 논의하기도 하고, 김흥래는 특수 연기를 전문으로 하는 퍼포먼스 팀을 꾸려 후배 양성에도 나서고 있다. 김흥래는 “노하우가 쌓이려면 관련 작품이 많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전영은 “독특한 기술을 가진 이들이 끊임없이 발굴되어 신선한 시도가 이어져야 이 분야가 성장할 수 있다”며 “끝없는 연구와 수련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야, 너도 좀비 될 수 있어… ‘K좀비’ 되는 법

좀비물이 많아지면서 작품마다 ‘좀비 찾기 대작전’이 벌어진다. <킹덤>에는 ‘좀비 가족’이라고 불린 고정 출연자 40명이 있었다. <지금 우리 학교는>(제이티비시)에는 60명이 좀비로 고정 출연한다. 그때그때 필요한 인원까지 포함하면 좀비로 등장하는 배우가 수백명에서 수천명에 이른다. 모두 오디션을 거쳐 훈련받은 뒤 투입된다.

움직임이 느릿한 <워킹 데드>(미국드라마)는 얼굴이 하얗고 마르면 발탁되기 쉽다는데, 한국 좀비는 몸이 유연해야 한다. 입을 크게 벌리고 빠르게 뛰는 장면이 많기 때문이다. <킹덤> 제작진은 “가능한 한 머리카락과 수염을 기르고 체중을 줄여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30~40분간 분장을 하는데 검은 피와 붉은 피를 나눠 얼굴에 칠하고 시야를 제한하는 ‘백태 렌즈’를 착용하는 등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도 작품마다 경쟁이 치열하단다. 좀비 영화 <부산행>과 <반도>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 때는 소재 자체가 낯설어서 그런지 지원자 중에 아마추어가 많았는데, <반도> 때는 지원자 모두 연기를 너무 잘해 놀랐다”고 했다.

누구나 좀비가 될 수 있다. 도전 해보자. 전영 보디 무브먼트 컴포저가 <킹덤> 속 좀비가 되는 방법을 알려줬다.

【1단계】 목을 부여잡아라

-좀비에 물렸다고 생각한 부위에 손을 대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어라. 그리고 쓰러져라.

【2단계】 목과 머리 부위의 경련에 집중하라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다고 상상하고 구토와 발작을 일으키는 듯 아래턱을 활용해 흔들어라. 뚝뚝 끊어지는 듯한 움직임이 중요하다.

【3단계】 온몸을 뒤틀어라

-점차 사후경직이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몸 전체를 힘차게 뒤틀어라.

【4단계】 벌떡 일어서라

-심하게 다친 곳의 힘을 빼고 나머지 신체로 온몸을 일으켜라.

【5단계】 절뚝이며 걸어라

-물릴 때 다친 부위에 따라 걸음걸이를 설정해 움직이고 뛴다. 목을 물렸으면 목을 꺾은 채 달리면 되고, 다리를 물렸으면 다리를 절뚝이며 달려라. <킹덤>은 목을 길게 빼고 입을 크게 벌리는 게 포인트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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