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떼가 등장하는 드라마 <킹덤>은 유통 플랫폼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인 넷플릭스이기 때문에 제작이 가능했다. 제작진은 “좀비라는 소재를 제약 없이 표현할 수 있었고, 이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전세계에서 손쉽게 보게 되면서 ‘한국형 좀비’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창작자의 과감한 시도를 가능하게 해 결과적으로 한국 콘텐츠의 장르를 확장하는 데 일조한 것이다.
요즘 콘텐츠 시장을 재편하고 있는 오티티는 창작자의 숨통을 틔워주는 비상구가 되고 있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에 한정됐던 콘텐츠 생산·유통 창구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인데다 플랫폼의 특성상 소재 제약이 적어 다양한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티티는 또한 때로 한계에 봉착한 창작자들끼리 전략적으로 뭉쳐 시너지를 내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사단법인 한국영화감독조합과 지상파 3사 합작 오티티인 웨이브가 손잡고 시즌제 작품을 만드는 최근의 시도는 이러한 복합적인 취지를 담은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은 8부작 단편 <에스에프(SF) 8>을 만들어 오는 7월 웨이브에서 한달간 독점 선공개한 뒤, 8월 <문화방송>(MBC)에서 단막극 형태로 방영한다. 한국영화감독조합 대표인 민규동 영화감독은 “지난 2년간 회원 감독들의 창작 기회를 확장해줄 쇼트 폼 영화 플랫폼을 찾고 있던 터에, <문화방송> 쪽에서 제안이 왔고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시도인 것 같아 수락했다”고 말했다. <허스토리> 민규동 감독, <패션왕> 오기환 감독, <연애의 온도> 노덕 감독,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장철수 감독,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안국진 감독, <나를 잊지 말아요> 이윤정 감독, <아워 바디> 한가람 감독, <죄 많은 소녀> 김의석 감독 등이 참여한다.
지상파 오티티 웨이브와 손잡고 <에스에프(SF) 8>을 만드는 감독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의석, 노덕, 민규동, 오기환, 한가람, 장철수, 이윤정, 안국진. 문화방송 제공
영화와 티브이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는 흔한 일이 됐지만 이번엔 그 창구가 오티티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티브이에서 시도하기 힘들었던 장르의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킹덤>이 넷플릭스를 만나 한국형 좀비물을 시도했던 것처럼, <에스에프 8>은 웨이브를 만나 한국형 에스에프에 도전한다. <에스에프 8>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기술 발전을 통해 완전한 사회를 꿈꾸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기본으로 한다. 여기에 감독 8인이 각각 게임, 판타지, 호러, 데이터, 초능력, 재난, 인공지능(AI),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등을 접목한다. 민규동 감독은 “에스에프영화는 많은 영화감독에게 꿈을 키워준 원동력이었지만 상대적으로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데 견줘 한국의 콘텐츠 시장이 좁다는 한계 때문에 지금까지 아쉽게도 다양한 작품이 탄생하지 못했다”며 “오티티라는 공간에서 개봉 성적에 대한 부담과 자기 검열의 필터를 내려놓고 온전히 자기만의 이야기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새로운 창구를 통해 창작자들에게 기회를 넓혀준다는 측면에서도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감독조합에 따르면 소속 감독 361명 중 50%가 연봉 2천만원 이하다. 그중 35%는 연봉이 1천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한국 영화계는 산업적으로 성장했지만 정작 감독들에겐 작품을 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이번 시도의 성공으로 감독과 오티티 사이에 튼튼한 다리가 놓인다면 감독들에겐 새로운 기회가 열리게 될 수 있다. 또 지상파 입장에선 웨이브를 통해 독점 콘텐츠를 공급하면서 가입자 수를 늘려 수익을 창출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민규동 감독은 “오티티나 방송국도 고삐 풀린 감독들의 도전적인 피를 수혈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런 시도는 앞으로 더 다양해지고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국외 오티티 이용자 수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왓챠플레이나 웨이브 외에도 국내 토종 오티티의 경쟁이 불타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씨제이이엔엠은 <제이티비시>(JTBC)와 합작을 했고, 케이티(KT)는 지난해 11월 ‘시즌’을 공개하며 가세했다. 올해는 디즈니플러스의 한국 시장 상륙도 예정돼 있어 오티티 시장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 치열한 전쟁터에서 가장 적중률 높은 무기는 바로 ‘좋은 독점 콘텐츠’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오티티가 주요 시장으로 급부상하면서 콘텐츠가 더욱 중요해졌다. 다양한 이들이 손을 맞잡고 틀을 깨는 시도를 통해 서로 윈윈 하는 전략이 다채롭게 펼쳐질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결국 콘텐츠의 성장도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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