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함부로 다루던 인공지능 로봇들의 반란을 그린 <웨스트월드>의 한 장면. 에이치비오 누리집 갈무리
수많은 전문가들이 바이러스의 역습은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바이러스는 열대지방 삼림 속 박쥐나 원숭이 등 자연 숙주에 기생하는데 인간이 자연을 훼손하면서 스스로 바이러스를 호출했다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바이러스의 역습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진 가운데,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가져올 또 다른 재앙을 비추는 드라마가 새 시즌을 시작한다.
인공지능의 역습을 그린 미국 드라마 <웨스트월드 시즌3>(스크린, 20일부터 금요일 밤 11시, 8부작)과 좀비 바이러스가 조선을 습격하는 <킹덤 시즌2>(넷플릭스 13일 전회 공개)다. <웨스트월드 시즌3>에서는 인간이 함부로 다루던 인공지능 로봇들이 인간에게 맞서고, <킹덤 시즌2>에서는 권력 실세들이 정권을 잡으려고 죽은 왕을 되살리면서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나간다. 과학 윤리를 고민하지 않은 채 돈이 되는 기술 개발에만 골몰하고, 권력에 눈먼 자들이 힘없는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인간이 함부로 다루던 인공지능 로봇들의 반란을 그린 <웨스트월드>의 한 장면. 에이치비오 누리집 갈무리
<웨스트월드>는 <왕좌의 게임>을 만든 미국 케이블채널 <에이치비오>(HBO)가 제작했고 2016년 시즌1이 방송됐다. 소설가 마이클 크라이턴이 각본과 제작을 맡았으며, 율 브리너가 나왔던 1973년 영화 <이색지대>를 바탕으로 한다. 첫 방영부터 메시지와 함께 공상과학(SF) 드라마를 과하지 않게 녹인 만듦새가 호평을 받으며 시즌2에 이어 시즌3 제작까지 이어졌다.
인간들은 서부시대를 모티브로 한 테마파크 ‘웨스트월드’를 만들고 인간과 닮은 로봇을 배치해놓는다. 사람들은 그곳을 찾아 수백개의 시나리오에 따라 롤플레잉 게임을 하듯 자신이 선택한 이야기를 실제로 경험한다. 감정, 행동 등 디테일하게 설정된 로봇들은 자신들이 진짜 그곳에 사는 ‘인간’이고, 방문객들은 ‘이주민’이라 여긴다. 현실과 똑같지만 현실은 아닌 웨스트월드에서 인간 본성은 가감 없이 까발려진다. 로봇은 방문객을 공격할 수 없게 설정돼 있는 반면 인간은 로봇을 대상으로 살인·강간 등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악행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웨스트월드>는 인간의 탐욕과 잔인함을 적나라하게 비추며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해 앞으로 전진하는가를 묻는다. 잔혹한 처우에 대한 기억이 채 삭제되지 않은 돌로레스(에번 레이철 우드) 등을 주축으로 로봇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과정은 현실 속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과 저항으로도 읽힌다. 인간과의 대립에서 여성 로봇이 주축이 되는 점도 흥미롭다. 테마파크에서 순종적으로 설정됐던 그들이 주체적으로 변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전 시즌들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왓챠플레이와 아이피티브이(IPTV)에서 다시 볼 수 있다.
한국형 좀비물로 화제를 모았던 <킹덤 시즌2>는 넷플릭스에서 13일 공개된다. 지난해 1월 시즌1 마지막 회에서 공개된 카드를 중심으로 좀비들과 맞서는 남은 인간들의 사투를 그린다. 김은희 작가가 집필했으며, 김성훈 감독이 1회를 만들고 2회부터는 박인제 감독이 연출했다. 시즌1 출연진이 그대로 나오고 전지현이 깜짝 등장한다. 김은희 작가는 “시즌2에서는 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피를 탐하는 인간과 핏줄과 혈통을 탐하는 인간의 민낯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이유가 없는 미국 드라마와 달리 <킹덤>에서는 권력자들끼리의 싸움으로 굶주린 민초들이 고통받고 좀비가 됐다. 그래서 좀비들의 울부짖음은 잔인하기보다 슬프다. <킹덤>은 <웨스트월드>에 견줘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우리의 현실과 더 닮았다. 역병이 번지자 양반들만 한 척밖에 남지 않은 배를 타고 도망가는 등 이기적인 모습이 현실의 ‘마스크 사재기’ 등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난 절대로 백성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세자 이창(주지훈) 같은 이들 덕분에 절망 속에도 희망이 비친다. 드라마처럼 현실의 바이러스도 어서 빨리 사라지기를.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