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이몽룡은 과거시험 보러 가더니…춘향이는 오디션 보러 왔구나

등록 2020-03-02 18:37수정 2020-03-03 10:30

[국립창극단 ‘춘향’ 이례적 오디션 현장]
당대 최고 소리꾼 거쳐가는 역할
전국서 젊은 지원자 21명 참여
새 한복 사입고 손에 부채 쥐고
소리·연기·무용 기량 펼쳐

국악전공자 매년 늘어나는데
무대 위 자리는 ‘가뭄에 콩 나듯’
창극단 “춘향=실력 인정받았단 뜻
신예발굴·공연 활력 위한 자리”
국립창극단의 ‘춘향’ 오디션 현장. 국립창극단 제공
국립창극단의 ‘춘향’ 오디션 현장. 국립창극단 제공
“춘향을 오디션으로 뽑는다고?” 지난 1월 국립창극단 누리집에 올라온 <춘향> 오디션 공고를 본 박경은 지원자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회가 드디어 찾아온 것이다. 소리를 전공한 그는 창극이 하고 싶어 해마다 기회를 기다려왔다. 하지만 소리꾼들이 공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고, 국립창극단도 단원을 비정기적으로 선발해 단원이 되는 길 또한 쉽지 않다. 그는 “기회가 오면 바로 잡기 위해 늘 준비해왔다”며 “정식 단원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작품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연습실에 간절한 마음을 담고 온 10명의 ‘박경은’이 있었다. 국립창극단이 오는 5월14~24일 국립극장에 올리는 창설 70돌 기념 신작 <춘향>의 오디션을 연 것이다. ‘춘향’ 배역을 극단 단원 한명과 외부 오디션으로 선발한 한명에게 번갈아 맡기기로 했기 때문이다. 국립창극단이 소속 배우가 아니라 오디션으로 배우를 뽑는 건 이례적인 일로, 지난 10년 동안 몇번 되지 않는다. <춘향 2010>(2010년)과 <배비장전>(2012년) 등이다. 국립창극단 쪽은 “창극 신예를 발굴하고 공연에 활력을 더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국립창극단의 ‘춘향’ 오디션 현장. 국립창극단 제공
국립창극단의 ‘춘향’ 오디션 현장. 국립창극단 제공
‘춘향’은 당대 최고의 소리꾼이 거쳐 가는 역할이다. 지금껏 김소희, 안숙선, 유수정, 박애리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춘향을 맡았다. 국립창극단 쪽은 “춘향 배역을 맡는다는 건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젊은 소리꾼들에겐 춘향의 동시대성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원자는 “춘향은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이다. 여성 인권이 취약한 당시에도 끝까지 불의에 항거하는 등 현재에도 의미가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고전을 통해 불변의 진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선배들의 대를 잇겠다며 이번 오디션에는 전국에서 21명이 몰려들었다. 그중 1차 서류심사를 통해 최종 11명이 선발됐다. 포기자 1명을 제외하고 총 10명이 이날 오디션에 참여했다.

창극 배우는 소리를 하며 연기와 무용까지 하는 만능 재주꾼이 돼야 한다. 특히 우여곡절이 많은 춘향은 연기도 어렵다. 몽룡과의 풋풋한 사랑, 애절한 이별, 옥중에서의 불안 등 다양하고 폭넓은 감정을 소화해야 한다. 이날 오디션도 소리, 연기, 무용까지 세 분야에 걸쳐 까다롭게 진행됐다. 소리는 지정곡과 자유곡으로 나눠 5분씩 부르고, 무용은 장구 반주에 따라 3분 동안 즉흥무를 펼쳤다. 연기는 3분 동안 했는데 대본을 당일 현장에서 공개했다. 한명당 오디션 시간만 약 20분이 소요되는 것이다. 왕윤정 지원자는 “지정곡이 어려웠고, 노래로 부르는 가사를 대본으로 연기해야 해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명곤 연출은 “춘향이 소리로 극을 끌어나가야 하고, 어려운 노래도 많이 불러야 해 소리의 역량을 중점적으로 봤다”고 말했다.

국립창극단의 ‘춘향’ 오디션 현장. 국립창극단 제공
국립창극단의 ‘춘향’ 오디션 현장. 국립창극단 제공
간절함보다 더 큰 무기는 없다. 지원자 모두 ‘로망의 역할’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유곡에서는 목소리의 장점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곡을 신중히 골랐다. ‘갈까부다’를 부른 왕윤정 지원자는 “내 목소리의 호소력이 잘 묻어나는 곡이라 선택했다”고 말했다. 지원자는 한복을 입고 코슈즈(한국무용 신발)를 신고 까미 머리(앞머리는 밋밋한 가르마를 타고 뒷머리는 말아올림)를 하고 와야 한다. 차별화를 위해 부채를 들고 오는 등 지원자 각자가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이지수 지원자는 “곡 분위기에 맞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경 썼다”고 말했다. 박경은 지원자는 “극의 분위기에 맞게 한복도 새로 샀다”고 한다.

이날 오디션은 국악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자리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해마다 국악 전공자는 늘지만 설 자리는 좁아진다. 소리꾼을 포함한 국악인은 졸업하면 프리랜서로 공연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부분 국립창극단 같은 단체의 단원이 되는 게 목표다. 여러 작품을 꾸준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물에 콩 나듯 자리가 나기 때문에 젊은 소리꾼에게는 기회가 잘 오지 않는다. 유수정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소리꾼들이 졸업 후에도 기량을 펼칠 기회가 많지 않다. 국립극장뿐 아니라 크고 작은 여러 극장에서 젊은 소리꾼에게 기량을 펼칠 기회를 줘야 한다. 그런 환경도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 차원에서 전통문화에 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런 기회를 통해 국악의 별들이 탄생했다. <춘향 2010>에서 ‘춘향’에 선발된 이소연과 <배비장전>에서 ‘배비장’으로 뽑힌 김준수는 2013년 국립창극단 단원이 됐고, 현재 국악계를 이끌고 있다. 비록 객원 멤버로 참여하더라도 훌륭한 국악인들과 함께 연습하며 기량을 끌어올릴 좋은 기회가 된다. 박경은 지원자는 “좋은 선생님들 앞에서 오디션을 본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됐다”고 말했다.

국립창극단의 ‘춘향’ 오디션 현장. 국립창극단 제공
국립창극단의 ‘춘향’ 오디션 현장. 국립창극단 제공
지원자 대부분은 어릴 때 소리를 시작해 오직 한길만을 걸어왔다. 힘든 현실에서도 소리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우리 것에 대한 사랑이 크기 때문이다. 김우정 지원자는 “소리는 깊이 있는 예술이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더 깊이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세월마다 달라지는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지수 지원자는 “시대 흐름에 맞게 파격적인 시도도 하고 대중과 호흡하며 우리 소리를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건강식으로 식단을 짜고 목을 관리하려고 항상 따뜻한 차를 마시는”(김우정 지원자) 등 자기 관리는 이미 프로 그 이상이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또 다른 기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것의 맥을 잇겠다는 이들의 소망이 바로 국악의 미래 아닐까. 국악의 내일을 이끌 새로운 춘향의 탄생이 기다려진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