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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슈퍼맨이 돌아왔다’…육아 사라진 ‘육아예능’

등록 2020-02-28 17:29수정 2020-02-29 02:02

【황진미의 TV톡톡】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한국방송2)는 지난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과 시청자들이 뽑은 최고의 프로그램상을 휩쓸고, 미국과 중국으로 판권이 수출될 만큼 인기가 높다. 2013년에 시작할 때 아빠들이 고군분투하며 양육자로 거듭나는 모습이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육아가 얼마나 힘들고 소중한 체험인지 남자들도 알게 한다는 점에서 성평등적인 의미도 있었고, 아이와 아빠의 동반 성장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출산 장려의 효과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7년이 지난 지금 프로그램은 사뭇 달라졌다. 일단은 아빠 혼자 아이를 돌본다는 원칙이 희미해졌다. 엄마가 함께 등장하거나 가족여행을 떠나는 모습도 보이고, 온갖 명목으로 게스트들이 등장해 아빠의 육아를 돕는다. 또한 적은 수의 아이들을 숨어서 관찰하며 더딘 성장 스토리를 만들어가던 호흡에서 쌍둥이, 삼둥이, 겹쌍둥이 등이 출연하는 등 아이들의 수가 늘어나고, 자막과 내레이션이 빽빽이 삽입됐다. ‘카메라 삼촌’이란 말을 아이가 할 만큼, 카메라와 제작진의 존재가 공공연해졌다. 섬세한 관찰카메라와 느린 스토리텔링보다는 물량 공세와 ‘게스트’발, 연출 양념으로 재미난 토막 영상을 방출해내는 셈이다. 시청자의 소비 패턴도 달라졌다. 티브이로 보기보다 모바일을 통해 ‘동물 짤’을 보듯 아이들의 귀여움을 짧게 즐긴다. 출산 장려 효과는 미미하다. 프로그램 초기부터 있던 위화감 논란은 무덤덤해졌다. 아이를 기르는 집이야 간혹 위화감도 느끼겠지만 출산과 결혼을 포기한 사람들은 위화감을 느낄 것도 없다. 오히려 화면 속 아이들과 잘 꾸며진 남의 집을 실컷 구경하면서 현실의 불가능성을 추인한다.

이런 변화에는 이유가 있다. 자극의 강도를 올려 시청률을 유지해야 한다는 제작진의 강박과 쉽게 분량을 뽑으려는 안일함도 한몫하지만, 그보다는 우리 사회의 여성주의적 문제의식과 저출생의 문제가 더욱 심화했기 때문이다. 7년 전 기대했던 프로그램의 긍정적인 의미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

사실 ‘아빠들의 독박육아’라는 홍보 문구도 모순적이다. <82년생 김지영> 등이 고발하듯, ‘독박육아’는 그동안 많은 여성을 질식시켜온 족쇄다. 그런데 고작 48시간 동안 홀로 돌보는 것을 ‘독박육아’라는 말로 추어주며, 아빠들의 고생을 측은해하는 것이 온당한가. 똑같이 부모 노릇이 처음이건만, 능숙하지 못한 엄마들에겐 ‘맘충’이란 비난이 따라붙고, 아빠들은 아무리 서툴러도 육아를 한다는 것 자체를 칭찬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7년 전에는 ‘아빠들의 서툰 육아’가 응원의 대상일 수 있지만 이제 아빠 혼자 아이를 돌보는 일을 예외적인 양 취급하는 인식이 바뀔 때도 됐다.

아빠 육아를 강조하거나 아이들의 귀여움을 소비하는 것은 저출생의 기조를 감소시키지 못한다. 7년 전만 해도 육아의 어려움이 조금만 개선되면 아이를 낳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빠 육아나 아이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출생률을 높이는 데 기여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선택을 한다. 아이가 없고 낳을 계획도 없지만, 아이를 구경하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요컨대 아이는 귀엽지만 육아는 힘들다는 것을 모두 아는 상태에서, 내가 책임져야 하거나 나한테 민폐를 끼치는 현실 속 아이는 싫고 화면 속의 아이를 마냥 귀여워하는 것이 풍조다. 육아 예능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지만 저출생의 기록이 갱신되고 ‘노키즈존’이 늘어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이후 <살림하는 남자들>(한국방송2), <미운 우리 새끼>(에스비에스)처럼 한 가족의 공간과 일상을 통째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많아졌다. 비혼이나 정상성에서 조금 벗어난 집을 비추는 여타 프로그램과 달리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아이가 있는 정상가정’을 여전히 고수한다. 프로그램은 백인 다문화 가정 등을 보여주며 다양성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결국 ‘중대형 평수 대단지 아파트’로 귀결되는 중산층 정상가정의 모델을 제시한다. 육아용품이나 여행 등에 대한 간접광고 논란도 있었지만 가장 강력한 광고 효과는 부동산에 있다. 삼둥이가 살았던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 단지, 건후 남매가 사는 울산의 아파트 구조 등은 실제로 광고 효과를 톡톡히 봤다.

자본은 끊임없이 ‘아이를 키우려면 이 정도는 갖추고 소비해야 한다’를 홍보하고, 그 정도를 해주지 못하는 이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거나 아예 결혼과 출산을 남의 이야기로 넘기고 그냥 귀여운 아이들의 ‘짤’을 소비한다. 아마도 이 프로그램을 가장 극적으로 소비하는 시청자는 화면 속 ‘스위트홈’을 구경하면서, 내가 외롭지 않고 마치 저들과 잘 알고 지내는 것 같다는 환상을 즐기는 사람이리라.

7년 전 <아빠 어디 가>(문화방송)나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했던 아이들도 얼추 자랐을 터다. 이들 중 몇몇은 자신의 영상이나 가족들에게 달린 댓글을 찾아보기도 할 것이다. 어른들이야 아이들의 귀여운 시절을 오래 담아둘 수 있어서 만족스럽지만, 정작 본인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아역배우를 보호하기 위한 논의가 있듯이 자기 뜻과는 무관하게 관찰카메라로 어린 시절을 전 국민에게 노출한 아이들에 대해서도 아동 인권 보호의 측면에서 논의할 가치가 있다. 그들에게도 잊힐 권리가 있지 않은가.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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