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트홀 ‘2020년 올해의 상주 음악가’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 금호아트홀 제공
“클래식을 만만하게 봐도 좋다. 클래식도 그 시대에는 대중음악이었다.”
팝페라 가수 겸 뮤지컬 배우 카이는 예능프로그램 <복면가왕>(문화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클래식은 어렵다는 생각에 접근조차 못 하는 ‘클알못’(클래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향한 외침이다. ‘클잘알’(클래식을 잘 아는 사람)이 되려고 공부하듯 듣는 이들에게 하는 얘기이기도 하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도 말하지 않았나. “음악 감상에 두뇌는 필요 없다.”
각 단체가 선정하는 ‘올해의 음악가’ 혹은 ‘올해의 상주음악가’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클래식을 깊고도 친근하게 알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신인이 아닌 실력 있는 기성 음악가를 대상으로 하니 이들에게만 집중해도 정보가 쌓이고 귀가 열린다. 상주음악가 제도는 전세계 유수의 미술관, 공연장, 오케스트라 등에서 운영하지만 국내에서는 활발하지 않다. 금호아트홀이 2013년 처음 시작한 데 이어, 2018년 서울시향에서 ‘올해의 음악가’라는 이름으로 도입했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도 2014년부터 ‘올해의 상주작곡가’를 소개해왔는데, 2020년에는 적임자가 없어 선정하지 않았다.
금호아트홀의 2020년 음악가는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28)이다. 세계적인 명장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끄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최초의 동양인 악장이다. 솔리스트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독일 한스 아이슬러 음악대학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악장을 지낸 콜랴 블라허를 사사한 뒤 2016년 카를 닐센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이어 2017년 오디션을 거쳐 슈타츠카펠레 최초의 동양인 악장으로 임용돼 화제를 모았다. 금호아트홀 쪽은 “젊은 음악가 중 자신만의 음악 세계가 있고, 다양한 무대를 꾸밀 콘텐츠가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며 “이지윤은 한국 음악가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새로운 세대의 바이올리니스트이며 음악적인 아이디어가 생동한다”고 밝혔다.
이지윤은 1년 동안 총 4번의 개인 공연을 연다. 지난 1월16일 피아니스트 벤 킴과 무대를 연 데 이어 오는 5월7일 첼리스트 막시밀리안 호르눙과 두번째 공연 ‘현의 기법’을 펼친다. 이어 8월27일엔 피아니스트 프랑크 두프리와 함께 ‘센세이션!’을, 12월10일에는 피아니스트 헨리 크레이머와 ‘어드벤처 앤 판타지’ 무대를 꾸민다. 협연하는 음악가가 모두 1980~90년대생인 점이 눈에 띈다. 금호아트홀 쪽은 “첫번째는 이지윤이 가장 관심이 많은 현대 곡에 초점을 맞췄고, 두번째 공연은 이지윤의 바이올린 소리에 집중했고, 세번째는 클래식이라는 틀 안에서도 그의 자유로운 끼를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상주음악가 프로그램 구성은 음악가가 직접 짜서 관계자들과 상의한다. 음악가 스스로 통찰력을 갖고 준비를 해야 해 뛰어난 역량이 필요하다. 베를린에 거주 중인 이지윤은 이미 1년 계획이 다 잡혀 있는데도 이 프로그램에 기꺼이 응했다. 그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연주할 때는 개성을 줄이고, 솔로 연주를 할 때는 개성을 드러내려 한다”며 “별다른 제약이나 요구 사항 없이 내가 하고 싶은 레퍼토리, 내가 하고 싶은 연주자와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는 피아니스트 김다솔을 시작으로, 바이올리니스트 박혜윤, 조진주, 양인모와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박종해, 첼리스트 문태국이 거쳐 갔다.
서울시향의 ‘올해의 음악가’로 선정된 트럼펫 연주자 호칸 하르덴베리에르. 서울시향 제공
금호아트홀이 한국 음악가에 집중한다면, 서울시향의 ‘올해의 음악가’는 외국으로 눈을 돌린다. 연주자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세계적 예술가를 만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를 시작으로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에 이어 올해는 스웨덴 출신 트럼펫 연주자 호칸 하르덴베리에르가 선정됐다.
호칸 하르덴베리에르(58)는 보스턴 심포니, 빈 필하모닉을 비롯한 세계 주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등 실력파 연주자로 유명하다. 그의 트럼펫 연주는 깔끔하고 여운이 남아 한국인이 특히 좋아한다. 그는 한국과도 친숙하다. 2007년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서울시향과 꾸준히 협연하면서 음악적 유대감을 쌓아왔다. 그는 올해 1년간 총 6차례 무대에 오른다. 3월13일과 14일 ‘서울시향 미하엘 잔덜링의 브루크너 교향곡 3번’에서 미하엘 잔덜링의 지휘로 멘델스존, 하이든, 하인츠 카를 그루버의 작품을 협연한다. 3월15일에는 ‘서울시향 실내악 시리즈’에서 피아니스트 임수연과 건서 슐러, 무소륵스키 작품을 연주한다. 8월20일과 21일 ‘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 무대에서는 오스모 벤스케의 지휘로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르’ 등을 들려준다. 8월27일 마지막 무대인 ‘서울시향 올해의 음악가’가 하이라이트다. 그가 직접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지휘도 한다. 헤르텔과 에마누엘 바흐의 바로크 명곡 등을 트럼펫으로 들려주는 환상적인 무대가 예상된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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