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경주엑스포공원에서 열린 ‘경주타워와 건축가 유동룡’ 현판식에서 유이와 이타미준건축사무소장이 유족 대표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비록 아버지는 떠나고 안 계시지만 뒤늦게나마 ‘건축가 유동룡’의 명예를 되찾아서 다행스러워요. 13년 만에 온전히 저작권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지난해 다큐멘터리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를 보고 성원해주신 관객들 덕분이지요.”
지난 17일 경북 경주엑스포공원에서 ‘경주타워와 건축가 유동룡’ 현판식을 성대히 마친 고인의 딸 유이화 이타미준(ITM)건축사무소장은 “애초에 아버지 원안대로 건축되지 않아서 아쉽지만 경북도와 엑스포 쪽에서 공공기관으로는 처음으로 건축물 디자인 표절을 사과하고 바로잡은 것은 좋은 선례”라고 말했다.
재일동포 출신 세계적인 건축가 유동룡(1937∼2011·예명 이타미 준)은 2004년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조직위원회의 상징건축물 공모에 지명 참가해 우수작에 뽑혔다. 그런데 2007년 8월 완공된 경주타워는 당선작이 아닌 유씨의 설계작과 비슷했다. 유리로 된 사각형 타워 안쪽을 신라시대 황룡사 9층 석탑 모양으로 투각하고 꼭대기층에 전망대를 둔 것이다. 이에 유 선생은 표절 소송을 냈고, 2011년 7월 대법원의 최종 판결로 경주타워의 디자인 원작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는 한달 전 이미 별세한 뒤였다.
“끝까지 싸워 명예를 지켜달라”는 부친의 유언에 따라, 유 소장은 다시 ‘디자인 원작자 이름 표시 소송’을 제기해 이겼다. 마침내 2012년 경주타워에 ‘원저작자 유동룡(이타미 준)'을 명시한 표지석이 설치됐다. 하지만 표지석이 구석 바닥에 깔려 잘 띄지 않는 데다 문구 도색이 벗겨지는 등 훼손이 심했다. 지난해 8월 극장 개봉된 유동룡 일대기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감독 정다운)를 통해 그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1978년 아버지의 첫 한국 작품인 온양민속박물관 건축 때부터 인연을 맺어온 조문현 변호사(법무법인 두우앤이우)가 지금껏 소송을 맡아주셨는데, 지난해 영화를 보시고 수임료를 받지 않을테니 재설치를 요구하는 소송을 다시 하자고 제안해주셨어요.”
새 표지석 설치 요구 소송에 경주시와 경주엑스포는 맞소송으로 대응했지만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결단으로” 소송을 취하했다. 이 도지사는 표절 사실을 사과하고 새 표지판도 제대로 세우게 했다.
경주엑스포공원의 상징 조형물인 경주타워 앞에서 지난 17일 원저작권자 유동툥 선생을 알리는 새 현판이 세워졌다. 사진 이타미준건축문화재단 제공
가로 1.2미터 세로 2.4미터의 새 현판에는 유동룡의 건축철학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수상 경력, 서울 인사동 학고재 갤러리, 제주 포도호텔·방주교회, 수·풍·석 미술관 등 대표작 소개가 담겼다.
“덕분에 경주타워는 한국건축사에 기념비로 남게 됐어요. 공공기관에서 디자인 표절을 했고, 뒤늦게나마 잘못을 바로잡았고, 아이디어를 훔쳐도 디자인 완성도는 베낄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니까요. 도움 주신 분들께 고마울 뿐입니다.”
경주엑스포에서는 내년 ‘유동룡 10주기 헌정 미술전’도 열기로 했다. 2018년부터 이타미준건축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유씨는 ‘이타미 준 건축상’ 제정과 부친이 생전에 가장 좋아한 제주도에 기념관을 설립하고자 여전히 분주히 한국과 일본을 오가고 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17일 ‘경주타워와 건축가 유동룡’ 새 현판 앞에서 함께한 이철우(왼쪽부터) 경북도지사, 유이화 소장, 주낙영 경주시장. 사진 경북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