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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무명배우 챙기고 막내 스태프에 깍듯…리더십도 ‘봉테일’

등록 2020-02-11 18:50수정 2020-02-12 11:49

오스카 기적 일군 ‘봉준호 리더십’

치밀한 연출력+세심한 배려심
작은 인연들도 소중히 여기고

촬영현장에선 스태프와 소통
자율성으로 더 나은 결과 이끌어
영화 <마더> 촬영 현장.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마더> 촬영 현장.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생충>으로 함께 작업하면서 봉준호 감독의 정교한 연출력에 깜짝깜짝 놀랐다. 그중 가장 정교한 지점은 밥때를 칼같이 지켜줬다는 거다.”

배우 송강호가 지난해 5월 프랑스 칸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는 별명이 상징하는 치밀한 연출력뿐 아니라 배우와 스태프의 식사 시간까지 챙기는 세심한 배려심을 아우른 설명이다. 봉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르는 새 역사를 쓰면서 이를 가능하게 한 ‘봉준호 리더십’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봉 감독은 사람에 대한 예의를 철저히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누구든 정중하고 겸손하게 대하면서도 유머와 쾌활함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봉 감독을 20년 가까이 알고 지낸 김형석 평론가는 “언제 봐도 예의가 바르고 상대방이 편안함을 느끼게끔 대한다. 큰 상을 받고 유명해진 이후에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의 시기가 있을 법도 하지만, 그의 인품을 아는 영화계 인사들은 하나같이 진심으로 축하해준다”고 덧붙였다.

영화 &lt;괴물&gt; 촬영 현장. 쇼박스 제공
영화 <괴물> 촬영 현장. 쇼박스 제공

봉 감독은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그는 데뷔 전 이준익 감독이 대표로 있던 씨네월드에서 시나리오를 쓸 기회를 얻어 충무로에 발을 디뎠다. 당시 인연을 맺은 정승혜 영화사 아침 대표가 2009년 암으로 별세했을 때 칸에서 돌아온 봉 감독이 공항에서 캐리어를 끌고 곧바로 장례식장에 간 일화는 유명하다. 봉 감독과 2009년 <마더> 때 같이 일한 적 있는 영화 마케터 김종애 플래닛 대표는 “감독이 마케팅팀까지 챙기는 건 드문 일인데, 당시 팀원들이 지금까지도 봉 감독님과 연락하며 종종 만난다”고 말했다.

사람에 대한 이런 태도는 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봉 감독의 페르소나가 된 배우 송강호를 만난 것도 작은 인연을 소중히 여긴 데서 비롯됐다. 송강호가 무명 시절 오디션을 봤다가 떨어진 적이 있다. 당시 조감독이었던 봉 감독은 ‘언젠가 꼭 함께하고 싶다’는 삐삐 녹음 메시지를 보냈고, 송강호는 감동했다. 훗날 톱배우가 된 송강호는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의 흥행 참패 뒤 절치부심한 봉 감독의 두번째 영화 <살인의 추억>에 기꺼이 출연했고, 이후 둘은 ‘호·호 콤비’로 불리며 여러 작품에서 환상의 호흡을 맞췄다.

봉준호 감독이 직접 그린 &lt;설국열차&gt; 스토리보드.
봉준호 감독이 직접 그린 <설국열차> 스토리보드.

봉준호 감독이 직접 그린 &lt;옥자&gt; 스토리보드.
봉준호 감독이 직접 그린 <옥자> 스토리보드.

봉 감독은 모든 스태프와 격의 없이 소통한다. 머릿속에 그려둔 상황을 스토리보드에 글과 그림으로 꼼꼼히 표현하고 이를 배우·스태프와 공유한다. 그래야 불필요한 혼선을 줄이고 완성도 높은 장면을 만들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기자 시절 <살인의 추억> 촬영 현장을 취재했던 김형석 평론가는 “감독이랍시고 무게 잡는 모습이 전혀 없다. 조곤조곤 소통하며 그들의 능력치를 최대한 끌어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김종애 대표는 “현장에서 막내 스태프 이름까지 기억하고 불러준다.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지시하면서도 해당 분야 전문가로 존중해준다”고 말했다.

배우에게 자율성을 줌으로써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봉 감독은 <살인의 추억> 촬영 당시 클라이맥스의 결정적 대사를 일부러 비워뒀다. 캐릭터를 잘 이해한 배우가 직접 생각해내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서다. 송강호는 고민 끝에 이런 대사를 던졌다. “밥은 먹고 다니냐?” 영화를 대표하는 명대사가 탄생한 것이다. 송강호는 봉 감독을 두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경청한다. 의견을 나누면서 결국 원하는 걸 얻어낸다”고 설명했다. 예의와 배려, 소통의 리더십이 결국 <기생충>의 기적을 일궈낸 셈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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