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인간 박정자가 배우 박정자에게 “니 참 잘 살았다, 이 한마디면 충분”

등록 2020-01-30 19:10수정 2020-01-31 02:35

[‘1인 노래극’에 담은 60년 연극 인생]

1962년부터 한 해도 쉼 없이
시모상·만삭에도 무대 위에 올라
조·단역 가리지 않고 어린이극도
내달 6일 자전적 이야기 첫 공연

“6·25 직전 9살때 본 ‘원술랑’ 이후
연극은 관객이 지켜주는 내 삶
연극계 성장 위해 헌신하면서
무공해로,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
연극배우 박정자씨가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뮤지컬협회에서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연극배우 박정자씨가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뮤지컬협회에서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니 참 잘 살았다. 잘 나이 먹었다.” 무대에서 60년 가까이 산 연극배우 박정자에게 인간 박정자(78)가 해주고 싶은 말을 물으니 그는 이렇게 답하며 웃었다. “이런 말을 듣는다면 더 이상 바랄 게 뭐가 있겠어요.” 미소가 번진 얼굴이 숲길의 기운처럼 청량하다. 살아온 세월이 얼굴에 묻어난다면 그는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무공해로 살고 싶었어요.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 지난 22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박정자가 말했다.

그는 1962년 스무살에 연극 <페드라>로 데뷔한 이후 58년간 한해도 거르지 않고 무대에 섰다. 참여한 작품이 170편 정도 된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에도, 임신 마지막 달에도 무대에 섰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 그만하고 싶은 적은 없었느냐는 질문은 그에게 의미가 없다. “우리가 숨을 쉬듯이 나는 내 삶인 연극을 해왔을 뿐”이기 때문이다. “연극은 관객과 만나는 현장에 있는 거잖아요. 결국은 관객들이 내 삶을 지켜주고 있는 거예요. 그들이 바라보고 있으니 나는 그 시간을 살아야죠.”

그는 왜 연극이 좋으냐는 질문에도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그냥 삶이다”라고 했다. 무대 위 삶 자체가 좋아 작품마다 더 좋은 연기를 보여주려고 조연·단역 가리지 않았다. 아기를 죽인 아그네스 수녀의 비밀을 감싸주는 원장 수녀였다가 딸이 사랑하는 남자를 우물에 가둬 죽여버리는 엄마도 됐다. 20대에 노인 역을 맡아도 거부하지 않고 찰떡처럼 소화했다. ‘적당히’라는 말을 모를 정도로 철저한 자기관리의 결과다. “데뷔작 <페드라> 때 주인공 대신 시녀를 맡게 된 것에 자극을 받았다”는데, 그 첫 단추가 동력이 된 셈이다. 첫 주연을 맡은 건 1986년 <위기의 여자>에서였다. 그는 “보이는 것에 연연해하지 않고 흐르는 대로 내 삶을 살아왔다”고 말했다.

자신의 삶의 터전인 연극계를 발전시키려는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연극계의 성장을 위한 의무”라는 생각에 2005년 데뷔 40여년 만에 처음 어린이극에 출연한 이후 최근까지도 참여하고 있다. “6·25 직전인 9살 때 부민관에서 <원술랑>을 봤어요. 먹고살기도 힘든 시절에 문화가 뭔지도 몰랐죠. 그때 연극을 볼 수 있었던 건 대단한 축복이었어요. 어려서 뭘 보고 자랐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다른 누군가도 연극을 보고 비슷한 느낌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12년간 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을 맡은 것도 “연극인들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연극은 여전히 배고픈 동네예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대중매체로 가죠. 하지만 이순재·신구씨 등이 다시 돌아와 지금도 무대에 서고 있어요. 연극을 놓지 못하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맙죠.”

나이가 들면서 그는 좋은 어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한다고 했다. 그래서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둔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나라니까요. 전쟁을 겪어봐서 그런지 그 어려운 시절을 우리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싶지 않아요.” 환경을 생각해서 30년 넘게 탔던 차를 버리고 운동화를 신고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꼰대’라는 표현을 쓰며 신구 세대를 가르는 현상도 그는 불편하다고 했다. “세대 간 갈등을 없애려면 어른들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그는 젊은 세대와도 잘 지내려고 마음을 연다. 2018년 라이선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오디션에도 흔쾌히 응했다. “한국 제작진이 당황해했죠. 하하. 하지만 원칙을 따라야죠.”

‘라떼는 말이야’가 유행하는 요즘, 그는 지금도 자신이 부족하다고 말하며 끊임없이 공부한다. 공연을 준비하는 중에는 에너지를 받으려고 영화 등을 더 열심히 챙겨 본다고 한다. “이번에는 <천문>을 봤어요. 어떤 다른 에너지를 받고 위로를 받아야 해요. 다른 이들의 작품은 공부가 돼요. 저도 만들어가는 사람이니까.”

그의 이런 무공해 같은 60년 연극의 삶이 2월6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시작하는 <박정자의 배우론―노래처럼 말해줘>에 담긴다. “나의 자전적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다 거절해왔는데, 올해는 뭔가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의 대표작들과 실제 그의 이야기를 1인극으로 만들었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페드라> 속 사랑의 테마 등 6곡을 직접 부른다. 패션잡지 <지큐> 편집장 출신인, 세대를 뛰어넘은 친구 이충걸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다.

실제 자신의 인생과 닮은 작품은 뭐냐고 물으니 그는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닮고 싶은 삶은 있죠. <19 그리고 80>의 80살 할머니 ‘모드’ 같은 인생을 살고 싶어요.” 모드는 동물원에 사는 바다표범을 몰래 풀어주기도 하는 등 마음 따뜻하고 엉뚱하고 유쾌한 할머니다. 박정자는 이미 그 인생을 살고 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