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을 지키겠다는 10대 줄광대 4인방을 최근 경기도 과천시 줄타기보존회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이경재(12), 박서현(17), 조민형(15), 한산하(15).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고들 외치면서, 정작 전통을 이어가려는 노력은 얼마나 할까. 2012년 공옥진 여사 별세 이후 ‘1인 창무극’의 맥이 끊기는 등 전통문화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 줄타기도 마찬가지다. ‘광대 줄타기’를 중요 무형문화재 제58호로 지정하며 보존을 위해 노력하지만 배우려는 이들이 없어서 쉽지 않다. 전통예술계는 “젊은 전수생들이 많아져야 한다”는데, 화려하고 인정받는 분야로 눈을 돌리는 요즘 친구들에게 전통은 관심 밖의 영역이다. 그런 가운데 “그 전통 내가 이어가 보겠다”고 나선 10대들이 눈길을 끈다. ‘광대 줄타기’를 전수받고 있는 이경재(12), 한산하(15), 조민형(15), 박서현(17)이다. 초등학생 장래희망 1위가 아이돌인 요즘 그들은 ‘줄타기 명인’을 꿈꾼다. 설을 맞아 전통을 잇는 10대 줄광대들을 과천 줄타기보존회에서 만났다.
놀랍게도 모두 자발적으로 손을 들었다. 배운 지 5년 된 초등학생 이경재는 “1학년 때 줄 타는 것을 보고 하고 싶어서 직접 줄타기보존회에 찾아왔다”며 똘망똘망한 눈을 반짝인다. 과천 줄타기보존회 류연곤 사무국장은 “처음 왔을 때 함께 온 누나 옆에 붙어만 있어서, 2년 뒤 다시 오라고 보냈더니 진짜 2년 뒤에 왔더라”고 전했다. 7년 된 중학생 한산하도 “초등학교 2학년 때 줄타기 공연을 보다가 엄마도 권하고, 나도 하고 싶어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예술 중·고등학교에서 국악(타악기)을 전공하는 고등학생 박서현과 중학생 조민형은 방과 후 수업 때 줄타기를 경험한 뒤 이 길에 들어선 지 1년 남짓이다. “무형문화유산이고 재미있을 것 같았다. 여자가 드물어 도전해 보고 싶었다”는 박서현은 줄타기보존회 첫 여자 전수생이다. 이후 조민형이 들어왔다.
차세대 줄타기 명인으로 꼽히는 15살 한산하와 12살 이경재. 김혜윤 기자
우리나라 줄타기는 크게 대령광대 계열의 ‘광대 줄타기’와 유랑예인 계열의 ‘뜬광대 줄타기’로 나뉜다. 대령광대 계열은 왕이나 양반들 앞에서 재주를 부리는, 이른바 나라에서 관리하던 연예인이다. 유랑예인 계열은 마을을 떠돌며 서민들 앞에서 재주를 부렸다. 대령광대 계열의 명인은 김대균 선생이고, 유랑예인 계열의 명인은 권원태 선생이다. 줄타기는 이 두 선생을 중심으로 나뉘는데, 무형문화재 제58호로 지정된 건 ‘광대 줄타기’다. 이들 10대 4명은 나라에서 지정한 ‘광대 줄타기’의 전수자들이다. 줄을 타는 전체 인원은 집계되지 않는데 대략 15명 정도로 파악된다. 그중에 10대는 이들 4명을 포함해 6명.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쪽은 “김대균 선생의 ‘줄타기보존회’, 권원태 선생의 ‘권원태 줄타기 연희단’,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패’와 천안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연희단인 ‘난장 앤 판’, 파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연희단 ‘천지개벽’, 국립부산국악원 소속 예술단원 한용섭 선생 정도”라고 말했다.
20대가 피크인 줄타기에서 이들 10대들의 존재는 귀하다. 줄타기는 전문적 기교가 필요한 기예인 만큼 기술과 예술을 모두 갖춰야 한다. 시작하더라도 살아남기 힘들다. 줄타기보존회가 매년 새로운 학생을 10명 정도 받지만, 옥석을 가리고 나면 남는 이들이 거의 없다. 줄 위에서 균형 잡는 것부터 시작해 배우는 데 오래 걸리니 중도 하차하는 이들이 많다. 한산하도 “처음에는 줄을 오가는 기본부터 배워야 하니 체력적으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경재는 “줄 위에 올라가는 게 무서웠다”고 했다. 총 44가지로 분류되는 기술을 다 습득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줄타기보존회 류 국장은 “기본기를 습득한 다음 기술을 배워야 하니 완판을 갖추려면 매일 연습한다고 쳐도 5년 이상이 걸린다”고 말했다. 한산하는 전체 44가지 중 절반을 습득했고, 이경재는 12가지를 익혔다. 이경재는 최근 옆쌍홍잡이(줄 한쪽으로 두 다리를 늘어뜨려 걸터앉았다 반동으로 줄 위에 올라서는) 기술을 익히는 등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조민형과 박서현은 기본기를 다지는 중이다.
네명 모두 습득이 빠른 편이다. “이경재는 균형을 잘 잡고 겁이 없고”(한산하), “산하 형은 응용력이 좋다”(이경재)고 서로 덕담도 오간다. 얼핏 순둥해 보이는데 모두 악바리들이다. 실력이 만만찮다. 사진 촬영을 위한 동작에서도 한산하와 이경재는 줄 위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매일 오전 7시 오후 4시 두차례 연습하는 등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한산하는 7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고 류 국장은 전했다. 조민형과 박서현은 부천과 서울에서 하교 뒤 과천까지 통학한다.
시작 단계지만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인 몇 안되는 10대 여자 줄타기 전수생. 조민형과 박서현. 김혜윤 기자
처음에는 다치기도 한다. 조민형은 “허벅지 안쪽이 쏠리고 엉덩이에 피멍이 기본으로 든다”고 말했다. 매트를 깔고 다치지 않게 조심하지만,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 울기도 한단다. 그렇지만 이경재는 “잠깐 줄타기를 중단했던 것 외에는 한번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산하는 “하다 보면 안전하게 떨어지는 나만의 낙법도 터득하게 된다”고 말했다. 성장판이 다치지 않게 초등학교 때는 기본기 위주의 안전한 동작을 하고 본격적인 기술은 중학교 때부터 배운다.
줄타기는 날렵함과 힘을 모두 갖춰야 해서 적절한 몸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 줄은 나무 끝과 끝이 9m(전체 25m)이고 높이 2m6㎝~3m일 때 가장 탄력이 좋다. 줄을 잘 타려면 균형감도 좋아야 하고 다리 힘도 좋아야 한다. 줄광대가 줄을 탈 때 드는 부채는 일반 부채와 달리 끝이 말려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을 주지만 줄 위에서 모든 것은 결국 줄광대 혼자 해내야 한다. 한산하는 “허벅지 힘을 키우고 있다”고 하고, 박서현은 “키가 좀 더 커야 하는 데 큰 일”이라며 웃었다. 모두 자신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다. 10대들답게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싶은 욕망도 있다. 소속된 단체 없이 개인적으로 줄을 타는 올해 대학생이 된 남창동은 피겨스케이팅 기술을 도입한 턴을 선보여 유명하다. 한산하도 “아직은 기본기를 탄탄하게 하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 실력이 늘면 나만의 기술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박서현은 “다른 악기를 전공하는 친구들과 팀을 꾸려 줄타기 버스킹도 해보고 싶다”며 “줄타기를 문화 공연으로 만들고 싶다”는 당찬 포부도 내비쳤다.
하지만 10대는 10대다. 줄타기는 줄광대와 밑에서 대화하는 어릿광대로 나뉜다. 줄광대가 줄을 타면서 어릿광대와 대화도 하고 때론 관객과 이야기도 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이들은 아직 부끄러움이 많다. 한산하는 “부끄러워서 잘 못 한다”며 볼이 빨개졌다. 이경재는 관객과 말을 할 수 있느냐니 수줍게 웃었다. “사람들이 쳐다보면 긴장돼요.” 극을 끌고 나가려면 공연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도 갖춰야 한다. 줄타기보존회는 수줍음을 없애려고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 풍물캠프도 보낸다.
지금껏 10대 줄광대를 키우려는 움직임은 활발하지 않았다. 이젠 줄타기에서도 후학을 양성하려는 분위기가 일고 있다. 줄타기보존회 외에 권원태 선생도 올해 유치원부터 후학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2~12일 경남 하동을 거점으로 하는 풍물단 ‘하울림’의 풍물캠프를 진행하며 줄타기 강습을 시작했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쪽은 “올해 2회부터는 줄타기에 재능 있는 친구들만 모여 줄타기 강습을 시작했다”며 “10대가 4~5명 정도가 있고, 유치원, 대학생 등 여러 세대 친구들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줄타기보존회도 실내에 연습장을 마련하는 등 귀한 10대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연습할 수 있게 하는 데 공을 들일 예정이다.
동료·후배들이 많아지는 것은 이들 4인방도 반갑다. 조민형은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줄타기의 위대함을 알리고 싶다”고 하고, 한산하는 “우리 전통을 널리 알릴 수 있으니 좋다”며 웃었다. 우리 전통을 잇는다는 것만 빼면 이들도 또래와 다른 게 없다. “축구를 제일 좋아한다”는 이경재는 평범한 장난꾸러기 초등학생이다. 박서현과 조민형은 맛집을 찾아다니고,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등 또래 중·고등학생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3m 줄 위에만 올라가면 눈빛이 변한다. “줄타기 명인이 되고 싶다”는 이들은 영락없는 줄광대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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