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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100위 안에 들게 해줄게”…‘음악 순위 거래’ 무한 반복

등록 2019-12-03 17:56수정 2019-12-04 02:34

[다시 불붙은 ‘음원 사재기’ 논란]

특정 음원 인위적 반복 재생
인지도 없는 신인가수도 1위
멜론 팔로워 부족해도 상위권
이용자 적은 새벽에 급상승해

‘바이럴 마케팅’으로 위장해도
명확한 실체 없어 정황 증거만
블락비 멤버 박경, 실명 저격

최근 아이돌 그룹 블락비 멤버인 박경(27)이 바이브 등 선후배 가수 6명의 실명을 거론하며 에스엔에스(SNS)에 올린 글이 가요계의 해묵은 논란거리인 ‘음원 사재기 의혹’에 불을 지폈다. 이어 지난 2일 김나영·양다일의 듀엣곡이 아이유의 신곡은 물론 1000만 돌파를 앞둔 영화 <겨울왕국2> 오에스티(OST)를 제치고 차트 1위로 올라서면서 또다시 사재기 의혹에 휩싸였다. 당사자로 지목된 가수들은 앞다퉈 “사실무근”이라며 강경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논란은 결국 법적 공방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이렇게 해마다 끊이지 않고 불거지는 음원 사재기 의혹에 관해 전문가들은 “가요계에 횡행하는 불투명한 ‘바이럴 마케팅’과 이미 공신력을 잃어버린 ‘실시간 음원 차트’ 집계 방식이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음원 사재기’란 멜론 등 주요 음원 사이트 차트에 올리기 위해 특정 음원을 인위적으로 반복 재생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로 인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가수가 1위에 오를 때마다 “다수의 아이디나 매크로 프로그램을 동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의 불거지고 있다.

가요계에서는 새로운 마케팅 플랫폼으로 떠오른 에스엔에스와 유튜브 등을 공략하는 ‘바이럴 마케팅’으로 포장한 사재기가 벌어지는 것으로 추정한다. ‘술탄 오브 더 디스코’ 소속사인 붕가붕가레코드 고건혁 대표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새 앨범 발매를 앞두고 페이스북에 노래를 올리는 등의 방식으로 차트 100위 안에 들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투자 비용은 낼 필요 없고 이후 수익을 업체와 기획사가 8 대 2로 나누자고 했다”며 “업체 쪽에서는 ‘사재기는 아니며 이를 계약서에도 명시해줄 수도 있다’고 했지만, 이런 마케팅만으로 차트 안에 들 수 없기에 사재기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어 거절했다”고 말했다.

한 음반 유통사 부장 역시 <한겨레>와 만나 이런 업체들의 제안은 바이럴을 위장한 사재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멜론에서 새 앨범의 알림 팝업을 해주는 기준이 ‘멜론 내 팔로어 수 10만명 이상인 아티스트’인데, 아이유 팔로어가 58만명인 반면 최근 의혹을 받은 가수들은 1만명 남짓에 그친다는 것이다. 그는 “팔로어가 1만명인 신인 가수가 바이럴만으로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용자 수가 적은 새벽 시간대에 주로 1위를 차지하는 점만 봐도 바이럴 마케팅 업체가 또 다른 사재기 업체와 결탁했거나, 직접 사재기를 했을 거라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ㅍ업체, ㅇ업체, ㄹ업체가 ‘3대 바이럴 마케팅 업체’인데, 이 업체들이 회사 이름을 자주 바꾸거나 회사 이름을 여러 개 갖고 있다고 전한다. 한 기획사 이사는 “음반 유통사에서 ㅍ업체를 소개해줘 연락을 해 봤는데, 절대 대면을 하지 않고 일을 진행하려고 해 관뒀다”고 말했다.

멜론 누리집 캡쳐
멜론 누리집 캡쳐

물론 이를 반박하는 의견도 있다. 실제 바이럴 업체를 이용했다는 한 기획사 대표는 “신인 가수가 노래 부르는 영상을 찍은 후, 3대 업체의 페이스북에 태웠는데(돈을 주고 띄웠다는 뜻의 은어) 이후 반응이 오길래 좀 더 오랜 기간, 잦은 횟수의 노출을 대가로 돈을 냈다”며 “비용은 1천만~3천만원 선인데, 기간·횟수별로 다르고 수익 배분도 계약하기 나름”이라고 전했다. 이어 “대부분의 신인이 바이럴을 하지만, 노래가 좋은 경우만 성공한다. 이런 마케팅마저 문제 삼는다면 소형 기획사는 홍보할 방법이 없다. 사재기 논란은 달라진 미디어 환경을 모르는 사람들의 프레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거듭되는 사재기 논란은 그 실체가 명확히 밝혀진 적이 없다. 정황증거를 바탕으로 한 추정일 뿐이다. 일부에선 가수 박경이 촉발한 이번 공방이 수사로 이어져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음원 실시간 차트의 폐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다.

고건혁 대표는 “영화 통합전산망처럼 음원 사이트도 투명하게 데이터를 공개해 공신력 있는 차트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1시간 단위로 집계하는 실시간 차트는 접속자 수가 적은 새벽 시간엔 사재기만으로도 1위가 가능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김학선 평론가는 “음원 사재기 논란은 내부 고발자가 나오지 않으면 해결하기가 어려운 문제다. 아무도 음원 차트를 믿지 못하는 상태라 억울한 가수가 생길 수도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가요계가 더 혼탁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멜론을 운영하는 카카오의 방지연 이사는 “지속적으로 비정상적인 이용 패턴과 관련한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더불어 사재기 관련 조사를 위한 정부기관의 공식적인 요청에도 적극 협조하고 있다”면서도 실시간 차트 폐지 여부에 관해서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한편, 관련 부처도 사재기 근절을 위한 방안을 마련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콘텐츠진흥원은 지난 5월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음악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입법을 추진 중이다. 이 안에는 문체부에 음원 차트 회사의 데이터를 직접 조사할 수 있는 ‘현장 조사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담겼다. 콘텐츠진흥원 콘텐츠공정상생센터는 지난 8월 음원·반 사재기 신고 창구도 개설했다. 센터 관계자는 “사재기 논란이 일었던 곡의 청취자를 직접 조사하는 방안을 두고 법률 검토 중이다. 지난 10월부터 외주 업체를 고용해 꾸준한 모니터링과 자료 분석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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