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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19금 농담·정치 풍자…“시원~하게 한번 하자!”

등록 2019-10-27 16:18수정 2019-10-29 22:43

[어디까지 왔나, 한국 스탠드업 코미디]

“여러분 이거 창피한 거 아니에요”
박나래, 넷플릭스 ‘농염주의보’에서
성 이야기 쏟아내며 스탠드업 도전
비방용 멘트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콩트 위주에서 코미디로의 확장
소극장 중심이었던 스탠드업 시장
개방적 분위기 타고 지상파 예능까지
시사·종교 등 유기적 연결이 성공 관건
넷플릭스 ‘농염주의보’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도전한 박나래 모습. 영상 갈무리
넷플릭스 ‘농염주의보’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도전한 박나래 모습. 영상 갈무리
“세상에 남자는 둘로 나뉩니다. 나랑 잔 남자, 앞으로 잘 남자.”

“아끼면 똥 된다고 여러분 많이 하세요. 한번뿐인 인생 하고 싶으면 하며 삽시다.”

세상에! 지금 박나래가 뭐라는 거야. 박나래의 토크 콘서트인 줄 알고 온 관객들은 깜짝 놀랐나 보다. 입이 떡 벌어져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얼어붙은 관객을 박나래가 놓치지 않는다. “오늘 여러분들은 8만8천원(표값)으로 귀로 섹스하는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넷플릭스 스탠드업 코미디 <농염주의보>의 한 장면이다. 박나래가 스탠드업 코미디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의 이름을 내건 스탠드업 코미디가 지난 1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티브이에서는 방송 불가 될까봐 연애 이야기를 많이 못 했다”는 그는 첫 경험부터 원 나이트까지 성 이야기를 쏟아낸다. “박나래 이제 연예인 안 하려나 보다라는 소리까지 들었다”는데 “세상이 만든 프레임에 갇혀 살면 뭐 하냐”며 아랑곳하지 않고 외친다. “시원~하게 한번 하자!”

넷플릭스 ‘농염주의보’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도전한 박나래 모습. 영상 갈무리
넷플릭스 ‘농염주의보’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도전한 박나래 모습. 영상 갈무리
인터넷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기반인 넷플릭스가 2016년 한국 시장에 파고들면서 스탠드업 코미디도 우리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2018년 <앨리 웡: 성역은 없다>와 엘런 디제너러스의 <공감 능력자> 등 세계의 다양한 스탠드업 코미디를 넷플릭스에서 접하면서 낯가림이 줄었다. 임신과 출산 이후의 ‘19금’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들려주는 <성역은 없다>는 한국에서도 반응이 꽤 좋았다. 이런 분위기에 유병재의 <비(B)의 농담>(2018)처럼 우리 아티스트들이 직접 뛰어들었고, 그즈음 소극장을 중심으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전문 아티스트도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명확한 기폭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모든 것이 조금씩 영향을 미치며 서서히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여성+유명인’이 성 이야기를 늘어놓는 건 쉽지 않은 도전이다. 박나래도 지난 23일 서울 삼청동에서 기자들과 만나 “3년 전에 소속사에서 권유했는데 처음에는 부담감을 많이 느꼈다. 개그맨으로서는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고 정말 많이 떨었다”고 말했다. 그는 남자친구와의 첫 경험을 관객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가슴을 만지는가 하면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행동도 한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서비스된 이후 ‘수위가 더 세도 될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색다른 시도는 ‘의외의 환영’을 받고 있다. 그는 “특히 남성 관객의 반응이 걱정됐는데 중년의 신사분이 박장대소해서 뿌듯했다”고 말했다.

유명 여성 코미디언까지 뛰어들면서 스탠드업 코미디가 이제 대중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느냐에 관심이 쏠린다. 지상파인 <한국방송>(KBS)에서도 2부작 맛보기(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스탠드업>을 11월에 내보낸다. <스탠드업>은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전하는 정도이지만 ‘스탠드업’이라는 형식 자체를 전면에 내세운 예능이 등장했다는 것은 최근의 흐름과 무관치 않다.

극장용 스탠드업코미디에 도전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공연한 박영진의 모습. 제이디비제공
극장용 스탠드업코미디에 도전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공연한 박영진의 모습. 제이디비제공
이런 시도가 이어진다는 것은 대중도 마음의 문을 열 준비가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가 성공하지 못한 데는 관객들이 낯설어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이유도 있었다. 실제로 지난해 7~9월 서울 홍대 소극장에서 열린 <옴니버스 스탠드업 코미디쇼> 당시만 해도 관객들은 성 이야기가 대놓고 등장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미국 현지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공부한 뒤 무대에 섰던 박영진은 당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섹스’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니 관객들이 예상보다 더 놀라서 두번째 공연에서는 그 대목을 뺐다”고 말했다. 수많은 코미디언이 “스탠드업 코미디가 잘되려면 신랄한 정치 풍자에 음담패설이 나와도 정말 편하게 즐기는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해왔는데, 그런 분위기가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시장이 커지려면 단순히 성적 농담을 넘어 외국처럼 정치, 시사, 종교 등의 소재가 유기적으로 흘러가야 한다고 말한다.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고 싶다는 한 코미디언은 “한국에서 정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하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환자나 장애 등을 활용한 이야기도 거부감이 많아서 주로 19금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럴 경우 자칫 선정적인 농담 수준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다. 박영진도 “말을 잘하려면 다양한 영역을 깊게 알고 유기적으로 인용해야 한다”며 “19금에 정치풍자까지 얹은 세련된 공연을 선보이고 싶어서 공부 중”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스탠드업 코미디가 서서히 관심을 받으며 코미디의 영역이 콩트 위주에서 확장된 것은 반갑다. 또 여성 코미디언까지 뛰어들면서 ‘19금’ 등 그동안 여성을 억압하던 틀을 깨는 발전된 변화가 엿보이기도 한다. 하재근 평론가는 “여성의 당당한 성 이야기는 달라진 사회를 보여준다”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의 새로운 도전이라는 점에서 더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나래가 <농염주의보>에서 관계를 요구하지 않는 남자에게 기다리지 않고 “언제 할 거냐”고 먼저 물어봤다고 말하는 식이다. 그는 “많이 하는 거 창피한 거 아니”라며 사회의 시선을 신경쓰지 말고 자신에게 자유롭고 당당하라고 말한다. 앨리 웡도 <성역은 없다>에서 “처음 만난 남자와 잠자리를 하는 것은 (여자가) 본인을 존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남자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며 성에 관심 많은 여성을 가볍게 보는 시대를 꼬집는다. 박나래는 “성 얘기를 쿨하게 털어놓는 자리가 별로 없어서 내가 해보자고 결심했다”며 “지금까지 국가가 나를 막았기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농염주의보>에서 하겠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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