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꽃미남’이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당연한 듯 쓰이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필자는 딱 30년 전에 그 표현을 떠올렸다. 그것도 연예인이 아닌 동네 형을 보면서. 30년 전 반포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이런 광경을 자주 봤을지도 모른다. 하교 시간만 되면 여학생들이 줄지어 누군가를 쫓아간다. 반포중학교 교문에서 시작된 그 행렬은 예림레코드를 지나 즉석떡볶이 식당인 미소의 집까지 이어진다. 수줍어하기도 하고 가끔 소리를 지르기도 하는 여학생들의 행렬을 쫓아, 얘들이 대체 누구를 따라가는지 확인해보면 어떤 소년이 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연인 아도니스가 아마 이렇게 생겼을까 싶었던, 반포중학교 3학년 학생 김원준.
또 다른 반포 출신 연예인 류시원 형도 꽤 인기가 있었는데 둘은 동갑내기 동네 친구였다. 심지어 둘이 함께 학교를 마치고 나란히 걸어갈 때면 여학생들의 줄도 두배로 길어졌다. 나는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없이 부러워하던 꼬마였고.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며 내 얼굴과 김원준 형의 공통점을 찾아보는 날도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깨닫곤 했다. 닮은 점보다 안 닮은 점을 찾는 편이 빠르겠구나. 눈이 두개인 건 똑같네.
이런 김원준을 연예계가 그냥 놔둘 리 없었다…, 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김원준의 데뷔는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경로와 전혀 다르게 이뤄졌다. 우수에 찬 꽃미남 소년 김원준이 걸어가고 있는데 기획사 직원이 다가와 ‘자네 연예인 해볼 생각 없나?’ 이렇게 물어보고 몇달 뒤 일약 스타가 되었을 것 같지만 정반대다. 그는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이 추진했던 광고 캠페인으로 데뷔했다. 삼성물산 의류사업부에서 패션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신인 가수를 발굴해 광고 모델을 맡기는 이벤트를 개최했는데 거기 지원해서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뽑혔다.
그다음부터는 다들 익숙한 성공담. 데뷔곡 ‘모두 잠든 후에’는 당시 최고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인 <가요톱텐>에서 연속 4주 1위를 휩쓸었고 그는 일약 엑스세대의 아이돌로 떠올랐다. 그 이후로도 ‘언제나’ ‘너 없는 동안’ ‘쇼’로 히트곡 퍼레이드를 이어갔다. 처음부터 의류 광고 모델로 등장했던 만큼 패션의 아이콘으로도 인기가 대단했다. 아재들은 그의 치마 패션을 기억할 터. 그가 최고의 연예인으로 소녀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류시원의 활약을 보면서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동네 형들이 슈퍼스타가 되었구나.
꽤 오랫동안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인기를 누린 류시원과 달리 김원준의 전성기는 무척 짧았다. 1992년에 데뷔했는데 1996년 이후로 이렇다 할 히트곡을 내놓지 못했고 대중은 빠르게 그를 잊어갔다. 한때 스포츠카들을 수집할 정도로 돈도 많이 벌었지만 무려 4장의 음반이 연이어 실패하면서 경제적으로도 곤궁해졌다.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친형 모두 의사인 집안이었지만 경제적인 지원은 일절 받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지방 행사도 부지런히 다니고 아침 드라마 조연도 마다치 않으며 생계를 해결했고 음악 활동도 쉬지 않았다. 여기서 의외인 대목이 또 나온다. 워낙 외모로 주목받다 보니 비디오형 댄스가수로 그를 기억하기 십상인데, 사실 그는 싱어송라이터였다. 데뷔곡인 ‘모두 잠든 후에’도 그가 직접 작사, 작곡했다. 음악적인 성향도 록음악이었고 장르 실험을 마다치 않는 아티스트였다. 피디의 시선으로 보자면, 대중에게 익숙한 이미지와 실제로는 상반된 본질이 충돌하면서 인기가 시들해진 안타까운 케이스랄까. 필자를 포함한 오징어들 입장에선 너무 잘생겨도 탈이라고 자위할 수도 있겠다.
현재 그는 실용음악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몇년 전 결혼해 딸도 낳아 키우는 생활인이기도 하다. 필자가 연출한 프로그램에도 몇번 출연했는데 개인적으로 매우 슬픈 에피소드가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선배인 그에게 이렇게 인사를 건넸더랬다.
“안녕하십니까? 저도 반포 초중 졸업입니다!”
그랬더니 너무나도 반가워하며, 나보다 더 정중하게 허리 굽혀 인사하는 그였다.
“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선배…. 당신이 2년 선배라고요! 어려 보이면 답니까? 왜 사람을 외모로만 평가합니까? 몇 회 졸업인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필자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인 <이재익의 정치쇼> 로고송으로 하필 김원준의 히트곡 ‘쇼’가 쓰이기에 매일 원준 형님의 목소리를 듣는다. 가끔 방송에서 그의 근황을 볼 때마다 여전히 동안인 그에게 감탄하면서 30년 전 반포의 꽃미남 전설이 떠오른다. 레코드 가게 음악 소리가 넘실대던 거리가 살아나고 그를 쫓아가던 여학생들의 수줍은 표정과 웃음소리도 선하다. 다음에 마주치면 인사는 안 하려고. 또 나를 선배라고 부르면 어떡하나.
이재익 ㅣ 에스비에스 피디 · 정치쇼 진행자
<한겨레> 자료사진
먼저 독자님들께 사과드립니다 . 최근 두어달 과열된 정국에 이 칼럼도 다소간 휩쓸렸습니다 . 추억과 음악 이야기가 주메뉴가 되고 시사적인 메시지가 양념처럼 들어가야 하는데 주객이 전도된 측면이 있었지요. 그래서 오늘은 순도 백퍼센트 추억 팔이 음악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하는데 어떠신지요 ?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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