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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 문익환 지켜낸 아내 ‘봄길의 편지’ 첫 공개한다

등록 2019-10-22 19:17수정 2019-10-23 10:25

고 박용길 장로 탄생 100돌 기념전
‘사랑의 기록가, 박용길’ 24일 개막
평소 단아한 글씨체로 이름났던 고 박용길 장로는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때 성명서를 정서했으며 평소 붓글씨를 즐겨 썼다.  사진 문익환통일의집 제공
평소 단아한 글씨체로 이름났던 고 박용길 장로는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때 성명서를 정서했으며 평소 붓글씨를 즐겨 썼다. 사진 문익환통일의집 제공
‘바라지’는 누군가의 생활에 긴요한 일들을 건사해주는 행동이다. 보통의 바라지도 수고스런 일인데, 감옥에 갇힌 이를 돕는 ‘옥바라지’에 이르면 이는 노고를 넘어 걱정과 설움, 애태움과 그리움이 뒤섞인 극한의 돌봄 노동에 이른다. 여섯 차례 투옥에 123개월간 옥살이. 남편이 갇혀 있는 이 기나긴 시간의 무게를 거의 매일같이 편지를 쓰면서 힘과 용기를 준 아내가 있었다. 늦봄 문익환(1918~94) 목사의 부인 봄길 박용길(1919~2011) 장로다. 봄길 탄생 100돌을 맞아 그가 남긴 ‘사랑의 기록’을 펼쳐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봄길은 남편에게 쓴 3000여통의 편지, 면회록, 한빛교회 역사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와 관련한 기록 등 방대한 기록물을 남겼다. 이 가운데 편지 100통을 골라 담은 도록과 20통의 편지 원본을 전시하는 <사랑의 기록가, 박용길>이 열린다. 문익환 목사와 관련한 기록·출판물은 워낙 많지만,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박용길 장로의 기록이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는 서울 수유동 ‘문익환 통일의 집’에서 24일부터 12월31일까지 열린다.

결혼 전 1940년부터 ‘편지 소통’ 시작

76~93년 남편 6차례 투옥때도 ‘매일’

3천통 편지 가운데 100통 ‘도록’으로

‘나의 채찍과 거울과 힘이 되어 달라’

44년 늦봄과 청혼 때 약속 평생 실천

1981년 6월19일 옥중의 문익환 목사에게 박용길 장로가 보낸 편지. 고형렬 시인의 ‘흐르는 물에 몸을 담고’라는 시와 함께 나팔꽃과 네잎 클로버를 그려 보냈다. 사진 문익환통일의집 제공
1981년 6월19일 옥중의 문익환 목사에게 박용길 장로가 보낸 편지. 고형렬 시인의 ‘흐르는 물에 몸을 담고’라는 시와 함께 나팔꽃과 네잎 클로버를 그려 보냈다. 사진 문익환통일의집 제공
문익환·박용길의 만남은 1938년 일본의 신학교 학생모임에서 시작된다. 여러 사정으로 1940년 각자의 고향인 만주 용정, 서울로 돌아간 뒤 44년 결혼 전까지 두 사람은 서로를 둥근달(문익환)·코스모스(박용길)라는 서정적 애칭으로 부르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갔다. 박용길은 금요일마다 배달되는 편지에 반가움을 전하며 멀리 떨어져 있는 애틋함을 이렇게 표현한다. “아마 이곳에서 ‘더워 죽겠다’를 연발할 때에야 용정에서는 따뜻한 봄이 양반 걸음으로 점잔히 찾아오려나 봅니다.”(1941년 4월26일)

1949년 미국 유학을 떠난 문익환이 한국전쟁 발발로 일본의 유엔 극동사령부에서 통역을 맡게 되면서 다시 이별이 찾아왔다. 박용길은 시부모 문재린 목사·김신묵 권사를 모시고 살면서 육아일기를 써내려간다. 큰아들 호근의 태몽으로 유난히 큰 대추를 고르는 꿈을 꾼 일, 큰딸 영금이의 귀여운 재롱 등을 가지런히 적어내려갔다.

문재린 목사가 세운 한빛교회를 중심으로 목회·사회 활동에 매진했던 문익환이 옥살이를 하게 된 것은 58살을 맞은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성명으로 구속되면서다. 1976년 유신헌법의 비민주성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가 두번째 구속됐고, 김대중내란음모사건(1980~82년), 집시법 위반(1986~87년), 방북(1989~90년), 분신정국 정치활동(1991~93년) 등으로 모두 10년 넘는 옥고를 겪었다.

남편이 감옥에서 환갑을 맞은 두번째 투옥부터 매일 편지를 쓰기로 결심한 박용길은 여섯번째 투옥 마지막 날까지 외국에 다녀왔던 한달을 빼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적어 보냈다. 영금의 결혼식에 남편이 올 수 없는 안타까움, 세째아들 성근이 문풍지를 발라준 고마움, 조카 영미(문동환 목사의 딸)의 학예회 참석, 시부모 결혼 70돌 축하 행사, 시모의 옷장 문고리 수선 등 집안의 대소사를 바지런히 적었고, 배꽃 봉오리가 터지고 작약이 자라며 벚꽃이 만발한 수유동 자택 정원의 풍경도 전했다. 일상을 전하는 문장 곳곳에선 간절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어느날 문익환의 물건을 정리하다 지갑에서 동전 네개를 발견한 박용길은 슬하의 네 아이를 떠올리면서 작은 네잎 클로버를 편지 귀퉁이에 그려 보냈다. 추운 감옥에서 고생할 것을 생각하며 연탄을 땔 때의 미안함, 단식으로 몸이 상했을 남편에 대한 걱정 등도 빠지지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의 막내아들(홍걸)이 고려대에 합격해 이희호 여사가 한턱을 쐈다거나 해직기자 정연주가 허리 디스크로 입원해 문병을 다녀온 소식 등 주변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발견하는 재미도 만만찮다.

‘3·1민주구국선언’ 성명서를 직접 정서했을 만큼 글씨가 정갈했고 그림도 잘 그렸던 박용길은 예쁜 그림과 꽃과 나뭇잎 등을 눌러 붙여 직접 만든 편지지에 글을 썼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성탄절 때 공연한 음악극 극본, 주보, 노래 악보, 그림엽서, 자작시 등 다양한 자료도 보냈다. 딸 문영금 통일의집 관장은 “주변 가족과 친지들은 나뭇잎, 카드, 펜 등 예쁜 것만 보면 모아다 드렸고 이는 어머니의 손길로 아름다운 편지로 태어났다”며 “오죽하면 간수들까지도 어머니의 편지를 기다렸다고 한다”고 전했다.

‘봄길 탄생 100주년 특별전-사랑의 기록가 박용길’ 포스터. 1970년대 민주화운동가족협의회 활동을 하던 시절 박용길 장로 옆에 이소선 어머니도 보인다.
‘봄길 탄생 100주년 특별전-사랑의 기록가 박용길’ 포스터. 1970년대 민주화운동가족협의회 활동을 하던 시절 박용길 장로 옆에 이소선 어머니도 보인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딸이자 통일의집 이사인 김병민씨는 “편지를 통해 문익환 목사의 뜻을 밖으로 전달하고 밖의 뜻을 감옥 안으로 전달하는 메신저 노릇, 대신 집회에 가고 다른 구속자 가족들을 도와준 일 등은 옥바라지라는 단어 안에 가두기엔 대단히 광범위한 활동이었다”며 “그의 기록들은 여성으로서 집안일, 옥바라지에 사회활동까지 모든 것을 감당하면서도 옳은 일을 하다 감옥에 갇힌 남편을 여전히 사랑하며 씩씩하고 능동적으로 삶을 살아내는 모습을 엿보게 한다”고 말했다.

1944년 청년 문익환은 박용길에게 “부족한 나의 채찍과 거울과 힘이 되어 달라”며 청혼했다고 한다. 박용길의 편지는 평생 지킨 그 약속의 실천을 보여준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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