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프라다 봄·여름 컬렉션
서은영의트렌드와놀기
얼마 전 우연히 다시 보게 된 영화 <러브 어페어>에서 아네트 베닝이 입었던 하얀색 원피스는 역시 인상적이었다. 여성적이면서도 순수한 분위기가 영화를 더욱 절절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영화 <이창>에서 그레이스 켈리가 백조처럼 하얀 드레스를 입고 방안으로 들어 올 때는 그의 우아함에 넋을 잃고 말았다. <엠마>에서 기네스 펠트로는 하얀색 레이스 드레스 덕분에 더 사랑스럽고, 순수하게 빛났다. 하얀 수영복을 입은 배우 보데릭은 더없이 섹시했다.
하얀색은 가장 기본이 되는 색으로 모든 것을 수용하고 모든 것을 뿜어 낼 수 있는 아주 강력한 힘을 지닌 색이다. 지극히 순수한 모습으로, 지독하게 섹시한 모습으로, 그리고 더없이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으로 변신시킬 수 있는 순백색이 바로 이번 2006년 봄, 여름 유행에 폭풍의 눈이 되어 나타났다.
흰색 하면 보통 ‘순수’, ‘부드러움’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하얀색이라고 다 똑같은 하얀색이 아니다. 디자인에 따라, 혹은 연출법에 따라 하얀색은 극과 극의 분위기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베르사체 광고에 마돈나가 등장한 적이 있었다. 그는 금색도 분홍색도 검은색도 아닌 순백색의 드레스를 입고 요부처럼 포즈를 취했다. 머리는 눈이 부셔서 쳐다 볼 수도 없을 것 같은 밝은 금발로 염색을 하고, 눈썹은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갈매기 모양으로 그리고, 몸에 달라붙는 긴 순백색 드레스를 입고 그는 사람들을 유혹했다. ‘이글이글’ 불타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정열적이었지만 순백의 색상 때문에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차갑게도 느껴졌다.
흰색이 갖는 매력이 바로 이점이다. 매우 세련되고 고혹적인 검정색처럼, 보기에도 너무 정열적인 빨강색처럼, 너무 사랑스러운 분홍색처럼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고 모든 것을 부드럽게 감싸주고, 하고 싶은 말은 다하는 생각이 깊은 색이다.
‘발렌시아가’에서는 흰색을 바탕으로 은색과 검은색을 적절하게 보태 조형적이면서도 세련되게 연출했다. 마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클로에’는 흰색 튜닉 스타일(고대 그리스인들이 입었던 것 같은 직사각형 실루엣의 원피스나 블라우스)에 레이스와 면 소재를 써서 순수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셀린’에서는 얇은 면 셔츠와 플레어 스커트, 폭이 넓은 원피스 스커트로 약간은 복고적이면서도 화려한 분위기를 냈다. 이 밖에도 레이스 소재로 사랑스럽고, 섹시한 분위기를 연출한 ‘디앤지’부터 남성적이면서도 세련된 감각으로 연출한 ‘장 폴 고티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디자이너가 순백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국내 디자이너들도 서울 콜렉션 등에서 순백의 열풍을 보여주고 있다. 강희숙은 실크 시폰과 가공된 리넨 소재로 순백색의 트렌치 코트나 드레스를 선보였다.
서은영/스타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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