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진 캐릭터’ 전문 배우라도 되는 걸까. 예수를 사랑한 마리아(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눈먼 소리꾼 송화(<서편제>), 이집트 노예가 된 공주 아이다(<아이다>), 아더왕의 이복 누나인 모르가나(<엑스칼리버>)까지 뮤지컬 배우 장은아가 했던 작품 속 인물들은 어둡고 쓸쓸한 배역이 많다. 현재 출연 중인 <마리 앙투아네트>에서도 마리를 단두대로 보내며 프랑스 혁명을 이끄는 빈민 출신 허구 인물 마그리드를 연기한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제 필모그래피를 보면 밝은 역을 한 적이 별로 없다”며 웃은 뒤 “한이 많고 처연한 역할에 잘 맞는다고 하셔서 재미있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워할 수 없는 악역, 가혹한 운명에 저항하는 주체적 인물은 그가 가진 매력이 빚은 것들이 많다. 날카로운 외모에서 드러나는 카리스마,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한 맺힌 고음은 아픔 있는 인물의 서사를 관객에게 잘 전달해준다. “의도한 건 아닌데 제가 키도 크고 샤프한 이미지가 있다 보니 이런 배역을 맡게 되는 것 같아요. 오랜 시간 무명 가수로 노래하며 배고픈 시절도 겪고, 무대를 갈망했던 것들이 강인한 모습으로 나오나 봐요.”
뮤지컬 배우 7년차인 그는 원래 가수였다. ‘제이민’ ‘자스’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며 음반을 내기도 했고, 그룹 러브홀릭스 객원 멤버(2011년), 그룹 더블유 앤 자스 멤버(2013년)로도 활동했다. 뮤지컬은 <광화문연가>(2012년)를 시작으로 지금껏 15편(재연 제외)에 출연했다. 올해는 특히 바빴다. 예능 <복면가왕>(MBC)에서 ‘불난 위도우’로 출연해 가왕이 되면서 대중의 눈도장을 받았고, 공백 없이 <엑스칼리버> <마리 앙투아네트>에 잇따라 출연 중이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끝나면 다음달 시작하는 <레베카>에서 집주인 레베카에 집착하는 집사 댄버스 부인으로 다시 무대에 설 예정이다. <레베카>는 2016년에 이어 두번째 출연이다.
“지난 시즌은 이미 공연이 올라간 상태에서 대타로 갑자기 들어간 거라 제대로 연습을 못 했어요. 그때는 캐릭터 분석을 하는 여유보다는 사고 없이 올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 얼마 전 누군가와 대화하며 ‘섬세한 돌아이’가 돼보겠다고 했는데(웃음) 이번엔 댄버스의 섬세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출연했던 작품들은 하나하나가 큰 의미로 남았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는 마리아 ‘얼터’(대역)로 무대에 섰는데 뮤지컬 배우로 처음 인정받은 작품이에요. 오디션 운이 지독히도 없다가 “까맣다, 아이다네”라는 한마디가 호랑이 기운을 내게 해 배역을 따낸 <아이다>는 제 경력을 업그레이드시켜준 작품이죠. 76회 공연하며 한 회도 안 운 적이 없어요. <모래시계>는 연기 고민이 깊었던 애증의 작품, <엑스칼리버>는 여태까지 만난 캐릭터 중 가장 많이 사랑받은 작품이에요.”
뮤지컬을 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가수 활동에 대한 꿈을 접지 않았다. “할머니가 됐을 때 엘라 피츠제럴드처럼 재즈 가수를 하는 게 목표예요. 재즈는 인생을 담은 음악이라 나이 들고 농익은 다음에 하는 게 좋겠더라고요. 지금도 프랭크 와일드혼(<엑스칼리버> 등을 만든 유명 뮤지컬 작곡가)이 심각하게 가수 안 할 거냐고 물으며 자신이 쓴 재즈곡을 보내주고 있는데 좋은 투자자가 나타나면 내년에 뉴욕에 가서 본격적으로 얘기해볼 수도 있겠죠.(웃음)”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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