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경남 통영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지휘자로 데뷔한 조성진의 무대.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지난 한주는 피아니스트 조성진(25)의 팬들에게 ‘축복’의 주간이었다. 17일 하루를 제외하고 15~22일 경북 경주(슈베르트 페스티벌), 경기 연천(DMZ국제음악제), 서울(마티아스 괴르네와의 듀오 리사이틀), 그리고 경남 통영에서 조성진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19~22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펼쳐진 <조성진과 친구들>은 조성진의 다양한 매력을 볼 수 있는 종합 선물세트였다. 첫날은 현악 4중주단 벨체아 콰르텟과의 실내악 협연, 둘째 날은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의 가곡 반주, 셋째 날은 독주회가 이어졌다.
정점은 마지막 공연인 22일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었다. 조성진은 이날 지휘자로 데뷔무대를 열었다. 조성진이 이번 공연을 기획한 통영국제음악재단에 ‘깜짝 제안’을 하면서 이뤄진 무대다. 통영국제음악재단 관계자는 “마지막날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협주곡의 곡목이 정해진 뒤 누가 지휘를 할지 의논하던 중 조성진이 잠시 생각해 본다고 하더니 나중에 본인이 하겠다고 연락이 왔다”며 “조성진은 통영 무대를 위해 6개월 전부터 지휘를 공부했다더라”고 말했다.
이날 지휘대 자리에 놓인 피아노 앞에 선 조성진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크고 대담한 몸짓으로 지휘해 나갔다. 장송곡처럼 스산한 도입부를 시작으로 환희에 찬 3악장까지 조성진의 지휘는 막힘이 없었다. 알레그로(빠르게)에선 박력 있게 팔을 뻗어 연주자들에게 신호를 주었고, 피아노와 관악 파트가 하모니를 만들어갈 땐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를 주문하듯 왼손으로 ‘쉿’ 하고 입술을 손가락에 대며 오른손으론 건반 연주를 이어나갔다. 연주자들과 눈을 맞추며 열정적으로 지휘하는 모습에서 여린 소년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없었다.
2부에선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곡이었던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려줬다. 콩쿠르 우승 이후 여러 마에스트로의 해석대로 연주해왔을 이 곡을 그는 온전히 자신만의 해석으로 풀어냈다. 악기들이 튀지 않도록 섬세하게 조율해 담백한 연주에서는 여유와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모든 연주를 마친 그는 스스로도 만족스러웠는지 기립박수를 치는 관객들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다. 음악 칼럼니스트인 노승림 숙명여대 겸임교수는 “조성진 본인은 지휘자가 될 생각은 없다는데 이번 무대가 그의 음악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 것 같다”며 “고독한 연주자에서 벗어나 다른 음악가들과의 소통에도 주력하겠다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22일 경남 통영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조성진이 지휘자로 첫 신고식을 치렀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노승림 평론가 “음악세계 확장, 다양한 스펙트럼 보여준 무대”
박찬욱 감독 “화려한 스타 플레이어…진짜 예술가의 길 가고 있다”
지휘 데뷔무대를 지켜본 관계자와 청중도 한 단계 더 성숙해진 조성진에게 놀라고 감격한 모습이었다. 통영음악재단의 한 관계자는 “지난 20일 통영 초중고생들을 대상으로 ‘스쿨콘서트’를 열었을 땐 조성진 스스로가 지휘를 어색해하는 모습이었는데 오늘 공연에서는 과감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줘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클래식 마니아로 유명한 <아가씨> <박쥐>의 박찬욱 영화감독도 현장에서 만났다. 조성진 팬이라는 그는 나흘짜리 통영 공연(괴르네와의 공연은 서울에서 관람)을 다 챙겨 봤다. 박 감독은 “20대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성숙해지고 레퍼토리가 늘었다”면서 “화려한 스타 플레이어를 넘어 진짜 예술가의 길을 성실하게 가고 있는 것 같다”고 공연을 본 소감을 전했다.
22일 경남 통영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조성진이 지휘자로서 데뷔 무대를 가졌다.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이날 조성진의 인기는 경남 지역을 강타한 태풍 ‘타파’도 울고 갈 정도였다. 예매 시작 49초 만에 매진된 공연답게 거센 비바람을 동반한 험악한 날씨에도 공연장 좌석이 꽉 찼다. 현장에서 취소된 티켓을 양도받으려고 기다리는 팬들의 모습도 보였다. 온라인 암표상이 5만원짜리 좌석을 19만원에 두번 재판매한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서울 관객들의 요청으로 서울행 고속버스도 임시 증차됐으나 이마저도 곧 매진됐다. 인터넷사이트 조성진 갤러리 팬들은 단체로 버스를 대절해 오기도 했다. 터미널과 음악당을 오가며 나흘간 승객을 실어 나른 한 택시 운전사는 “통영 택시들 죄다 여기 음악당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며 태풍도 꺾지 못한 조성진의 인기에 놀라워하기도 했다.
통영/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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