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카메라가 눈을 깜빡인다, 그날을 잊지 말라고

등록 2019-09-09 18:00수정 2019-09-09 19:52

대중문화 원천이 된 ‘참사’

대구 지하철·구의역·가습기·세월호…
전국민 트라우마로 남은 사건들
영화·드라마 소재로 녹여 재생산
일본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는 책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에서 “사고를 잊지 않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원전 사고지가 관광지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 국민의 트라우마로 남은 참사를 직면하고 끊임없이 기억하며 같은 일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도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됐던 서대문형무소 등 비극적인 역사 현장을 찾는 ‘다크 투어리즘’이 뜨고 있다.

대중매체에서도 뷰파인더로 떠나는 ‘다크 투어리즘’이 활발하다. 멀게는 성수대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 구의역 김군 사건, 삼성전자의 하청노동자 메탄올 실명 사건 등이 영화와 드라마로 재소환돼 외친다. 잊지 말라고.

영화 <벌새>(8월29일 개봉)는 1994년 10월21일 벌어진 성수대교 붕괴 사건이 모티브다. 사상자가 49명에 이르렀던 그날의 사건을 당시 중학생 은희의 개인적 서사에 엮어낸다.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9월11일 개봉)는 2003년 2월8일 대구 지하철 화재를 다뤘다. 사망자 192명 등 다치고 죽은 사람이 340명이나 발생한 대형 참사다. 당시 사람을 구하다가 생긴 후유증으로 후천적 지적장애를 앓는 소방관을 통해 살아남은 자들의 오늘을 말한다. 5일 종영한 드라마 <닥터 탐정>(에스비에스)은 산업 노동 현장에서 벌어진 은폐된 재해들을 씨줄 날줄로 엮어 16부작 미니시리즈로 구현했다.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망’을 시작으로 이야기는 ‘삼성 하청업체 노동자 메탄올 중독 사건’ ‘가습기 살균제 피해’ 등이 유기적으로 흘러간다. 상업영화에서 처음으로 세월호를 담은 영화 <생일>(4월3일 개봉)과 <악질경찰>(3월20일 개봉) 등도 올해 쏟아졌다. 2015년 세월호를 모티브 삼은 드라마 <앵그리 맘>(문화방송)이 방영될 당시만 해도 ‘용감한 드라마’라고 불렸던 것에 견주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이후 무엇이 바뀌었나’ 뼈아픈 일침
참사의 기억으로 ‘오늘’ 되돌아봐

참사의 원인을 파헤치는 고발물에 머물지 않고 코미디와 휴먼 등으로 장르를 확장한 것도 변화다. 다큐와 드라마를 섞은 <닥터 탐정>의 시도는 특히 의미 있다. 이 드라마는 6회부터 5분간 에필로그 형식으로 드라마에서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을 미니 다큐로 만들어 소개했다. 이를테면 6회에서 수은 중독 관련 내용을 내보낸 뒤 에필로그에서 실제로 있었던 1980년대 말 원진레이온 사건을 다큐로 만들어 보여주는 식이다. 9회 메탄올 실명을 다룬 뒤엔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씨 가족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박준우 <닥터 탐정> 피디는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산업재해’라는 소재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지점이 있다. 편하고 쉽게 그리고 뜨겁게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닥터 탐정’의 한 장면.
‘닥터 탐정’의 한 장면.
힘주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녹아든 이야기의 힘은 강하다. <닥터 탐정> 시청자 게시판엔 ‘잊고 있던 사건을 일깨워줘서 고맙다’는 평이 많고,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를 맡았던 배우 박진희는 드라마 종영 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더 이상 무법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저, 싸울 겁니다’라는 대사가 마음을 움직였다”며 “드라마를 통해 일터의 안전이 보장받는 사회로 조금씩 변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참사와 코미디를 접목한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후천적 지적장애를 앓는 철수를 통해 참사가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영화는 철수가 구해준 사람들, 가족들, 지인들이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는 다소 비현실적인 장면을 통해 희망을 표현한다.

물론, 실제로 벌어진 재난이나 참사를 다룰 때는 극도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다. 일각에선 누군가의 아픔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데 대한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망각과의 투쟁이다. 그래서 이 말은 의미심장하다. “1%의 국민이라도 99%의 노력으로 보호하고 지켜야 할 국가가 99%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1%의 기업을 보호했던 게 아닐까. 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닥터 탐정>)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