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경주 남산 칠불암과 일본 석불의 숨겨진 인연

등록 2019-08-25 13:45수정 2020-12-27 18:12

[노형석의 시사문화재]

신라와 8세기 일본 심포지엄
“일 석불, 칠불암 참조 복원 가능”
오사카대 교수 후지오카 분석
경주 남산의 대표적인 불상 유적 가운데 하나인 칠불암 마애불상.
경주 남산의 대표적인 불상 유적 가운데 하나인 칠불암 마애불상.
“경주 남산 칠불암 부처님들이 제 고민을 받아주셨습니다.”

일본에서 고대 불상 연구의 실력자로 꼽히는 후지오카 유타카 오사카대 교수가 고백하듯 말했다. “일본 나라현 호산(芳山) 산속에 있는 돌부처상을 연구할 때 남산에 가서 신라 부처상을 함께 봐야만 눈이 트일 것 같아 찾아갔지요. 그렇게 신라의 남산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발언이 끝나자 후지오카는 막걸리 잔 들고 건배사를 외쳤다. “남산 칠불암과 일본 호산 석불을 위하여!” 청중도 박수 치며 화답했다. “한·일 불교문화유산을 위하여!” 지난 22일 저녁 경북 경주시 첨성대 사적공원 근처의 순두부식당에선 후지오카를 비롯해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미술사 연구자 30여명이 연신 건배사를 외치면서 뒤풀이를 했다. 이날 오전·오후 내내 국립경주박물관 강당에서 열띤 말판을 펼치고 온 터였다. 두 나라 고대 불교 문화의 동질성과 차이점을 견줘가며 8시간여를 토론하는 학술심포지엄이었다. 이 한-일 문화재 심포지엄에선 신라의 천년 도읍이었던 금성(金城·경주)의 남산과 8세기 고대 일본의 도읍이었던 헤이조쿄(平城京·현 나라시)의 동산(동쪽 산줄기)이 주제가 됐다. 경주박물관이 일본의 고대 왕경 불교유적 연구모임 학자들과 함께 꾸린 이날 자리엔 두 나라 학자들이 10개의 관련 논고를 발표했다. 7세기부터 석탑과 불상, 마애불 등 약 700곳의 불교유적이 조성된 신라인들의 불국토 경주 남산과 도다이지(동대사) 등 거대 불교사원이 기슭에 있는 ‘일본의 경주’ 나라시 동쪽 산줄기의 옛 절터와 유적들이 핵심적인 비교검토 대상이 됐다.

일본 나라현에 있는 호산 이존석불. 일본의 불교미술사가인 후지오카 유타카 오사카대 교수는 22일 열린 국립경주박물관 심포지엄에서 이 석불이 경주 남산 칠불암 불상과 도상, 구조면에서 밀접한 영향관계가 있다는 논고를 발표했다.
일본 나라현에 있는 호산 이존석불. 일본의 불교미술사가인 후지오카 유타카 오사카대 교수는 22일 열린 국립경주박물관 심포지엄에서 이 석불이 경주 남산 칠불암 불상과 도상, 구조면에서 밀접한 영향관계가 있다는 논고를 발표했다.
특히 일본 학자들의 발표는 당대 신라와 일본의 불교문화 사이에 걸친 숨은 인연을 드러내는 것이 많았다. 후지오카는 헤이조쿄 인근의 호산에서 조사한 바위새김 이면불 등의 불상조각(마애불)들이 경주 남산 마애불들과 닮았다고 지적하면서 호산 이존석불은 남산 칠불암 사면불을 참조해서 목조지붕을 얹은 형식으로 복원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요시카와 신지 교토대 교수는 일본 나라 산속이나 산기슭에 있는 옛 산림사원들은 승려들의 산림수행 기능을 갖춘 곳으로, 헤이조쿄 왕경 도심의 큰 국가 사원들과 하나의 사원처럼 왕도와 불도가 융합된 신앙 네트워크 체제를 형성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일본 학자들의 논고는 여러모로 주목할 만하다. 국내 연구자들은 신라 사원이 원래 평지에 조성됐다가, 9세기 이래 수행을 중시하는 선종이 들어오면서 점차 산속으로 들어가 속세와 격리됐다고만 생각해왔다. 그러나 고대 일본의 경우 수행을 하는 왕경 근처의 산속 산림사원이란 독특한 개념이 있었고, 승려들이 산림사원과 도시의 평지사원을 오가며 밀접하게 교류했다는 점을 일본 학자들의 논고로 알게 된 셈이다.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와 한정호 동국대 교수 등 국내 학자들은 일본 고대 왕경 불교사원의 독특한 이원적 시스템이 당시 신라의 불교사원 체제와 영향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무엇보다 산골짜기에 700곳 가까운 불교유적이 무수히 흩어져 있는 경주 남산의 불교문화사적 정체를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정호 교수는 “그동안 경주의 신라 절터들은 산지와 평지로만 구분하는 정도였는데, 이번 일본 연구자들의 발표를 통해 남산 불교유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연구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었다”고 말했다. 일본 학자들의 낯선 개념과 사례들 외에도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국내 연구자들의 도전적인 신라 불교문화사 고찰도 펼쳐졌다. 경주 불국사가 중국 수당 제국의 웅장한 대(臺) 형식의 궁궐건축을 모델로 만들어졌다는 남동신 서울대 교수의 새로운 설과 아기부처로 유명한 남산 삼화령 미륵불 도상이 원래는 자연신앙의 대상이었다가 나중에 불교적 명칭이 붙여졌다는 신종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의 논쟁적인 주장이 함께 발표되면서 신라 불교유산을 둘러싼 논의가 더욱 풍성해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지금 한-일 관계는 일본의 수출규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등으로 갈수록 악화하는 상황이지만, 이날 심포지엄의 발표와 토론들은 고대 두 나라의 역사적 관계가 신앙과 문화의 동질적 교감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뒤풀이 자리에 합석한 두 나라 학자들은 남산과 헤이조쿄 답사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밤이 이슥하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경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