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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난민’과 ‘위안부’에겐 아직 오지 않았던 해방…오페라로 만나는 ‘1945’

등록 2019-08-14 11:35수정 2019-08-14 19:34

[배삼식 작가×최우정 작곡가 인터뷰]
2017년 호평받은 동명의 연극을 각색
훨씬 화려하고 커진 무대로 관객 맞아
오페라 <1945>를 함께 만드는 배삼식 작가(왼쪽)와 최우정 작곡가. 예술의전당 제공
오페라 <1945>를 함께 만드는 배삼식 작가(왼쪽)와 최우정 작곡가. 예술의전당 제공
“푹푹칙칙 푹푹칙칙 뛰~이/ 건넌다 검정다리 달빛 어린 음 철교를/ 고향에서 못 살 바엔 아 타향이 좋다/ 달려라 달려 달려라 달려/ 크고 작은 정거장엔 기적소리 남기고/ 찾아가는 그 세상은/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모른다 모른다”(노래 ‘울리는 만주선’ 3절)

1930년대 노래 ‘울리는 만주선’은 일제강점기에 땅과 집을 뺏기고 쫓겨나듯 만주로 떠나간 사람들의 막막한 심정이 담겨있다. 구성진 멜로디에 애달픈 가사가 담긴 노래는 새달 27~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올리는 오페라 <1945>에 나오는 주요 배경음악 중 하나다. <1945>는 국립오페라단이 올해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기획했다.

오페라 <1945>의 원작은 2017년 국립극단이 선보인 연극이다. 연극 대본을 썼던 배삼식 작가가 이번엔 오페라 각색과 작사를 맡아 참여한다. 배 작가는 연극 <벽 속의 요정>,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 등을 쓴 공연계의 소문난 이야기꾼이다. 정식 오페라는 첫 도전이라는 배 작가와 그에게 <1945>를 오페라로 만들자고 손을 내민 최우정 작곡가를 지난 2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오페라 <1945>는 해방이 됐으나 진정한 해방은 오지 않은 1945년을 배경으로 한다. 만주에 살던 조선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전재민 구제소(전쟁으로 재해를 입은 사람들이 임시로 기거하는 장소)에 몰려든다. 구제소에 모인 이들은 자신들을 고향에 데려다줄 기차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난민들 사이엔 일본군 ‘위안소’에서 지옥을 함께 겪은 분이와 미즈코가 있다. 임신까지 한 미즈코는 말 못하는 언어 장애인 행세를 하며 자신이 일본인인 사실을 숨긴다. 구제소엔 이들 말고도 선함과 악함을 넘나드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모여든다. 생존을 위해 사람됨을 버려야 했던 전쟁 이후의 혼란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며 호평받은 연극이 오페라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공연계에선 일찌감치 관심이 컸다. 배삼식은 “음악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아 걱정하면서 오페라로 만들어지면 어떨까 기대도 됐다”며 “각색하고 가사를 쓰면서 최대한 상상을 통해 연극 속 극적인 출렁거림을 음악적인 구조에 넣으려 했다”고 말했다. “연극적으로 필요하나 음악적으로 군더더기 되는 건 걷어내려 했어요. 반대로 연극에선 작아도 음악에선 확장해야 하는 것을 최 작곡가와 협의하며 작업했습니다.”

고향길 앞둔 조선인 모인 만주 ‘구제소’ 무대로
“무서운 세상 헤쳐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우리에게 소중한 게 무엇인지 묻는 작품”

연극 <1945>를 대본으로만 접하고도 감동해 오페라로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는 최우정은 이번 작품을 ‘기술자’로서 어떻게 음악을 끌어올릴 것이냐에 집중했다고 했다. “1930~1940년대 유행했던 창가, 종교음악, 클래식 등을 다양하게 끌어왔어요. ‘엄마야 누나야’ ‘울리는 만주선’ 등을 비롯해 생활 속에서 들어봤음 직한 노래들을 넣었습니다.”

<1945>는 두 사람의 세번째 공동작업이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금 명인 박종기(1879~1941)와 김계선(1891~1943)의 삶을 다룬 음악극 <적로>, 정가 가수인 하윤주의 독창회 <추선>도 함께 했었다. 앞선 작품들이 보여주듯 평소 국악에 조예가 깊은 두 사람이라 이번 오페라에도 우리 가락을 녹여내지 않았을까. 최 작곡가는 “극 중 누이가 죽는 장면에서 서양의 장례식풍 음악을 쓰지 않고 씻김굿의 특징을 딴 음악을 사용하긴 했지만 너무 국악 같지 않게 표현했다”고 했다. 오페라가 가진 격조를 해치지 않도록 악기편성에서도 전통악기보다 아코디언 같은 서양 악기로 국악의 느낌만 살렸다고 설명했다.

오페라다 보니 노래를 위해 수정이 불가피했던 부분들이 있다. 먼저 등장인물 몇몇의 이름을 바꿨다. ‘위안소’를 탈출한 분이의 연극 속 원래 이름은 명숙이었지만 캐릭터는 그대로 두고 이름만 노래 부르기 좋게 바꿨다. 연극의 재미요소였던 사투리는 아쉽지만 만나기 어렵다. 최우정은 “이북 사투리의 경우 장단으로 표현하며 사투리 맛만 살짝 냈다”고 했다. 반면 무대연출은 연극보다 더 화려해진다. 오페라가 스케일이 큰 만큼 연극에선 불가능했던 기차나 휑하고 쓸쓸한 만주 벌판 등을 사실감 있게 표현해 극의 몰입감을 더해줄 예정이다.

<1945>는 조선 ‘난민’과 ‘위안부’를 그린 묵직한 작품이다. 오페라로 풀어내기에 음악적으로 버거운 작품은 아닌지 묻자 최우정은 “그래서 이 작품이 오페라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누구보다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 있어요. 특히 분이와 미즈코는 극한의 슬픔에서 소리를 뽑아내는 아리아가 가능한 인물들이죠. 이들의 노래는 개인의 삶을 최대한 추측해보고 음악적 능력을 동원해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훅훅 넘길 수 없었죠.”

배삼식 역시 “이 작품이 대단히 생경하고 복잡한 작품은 아니다”라며 “음악은 음악대로 즐기면서 미즈코와 분이가 과연 기차를 탈 수 있는지를 따라가면 된다”고 했다. “이 작품은 무서운 세상을 건너는 사람들이 (혐오와 배제를 일삼는) 시대착오적인 사람들로 인해 상처받고, 역설적으로 위로받는 이야기에요. 그 속에서 과연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묻고 있죠.”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사진 예술의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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