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아이 땅아이> 공연 장면. 국립극단 제공
지난 2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에스(S)씨어터 극장에 고무젖꼭지를 문 생후 0~12개월 관객들이 입장했다. 아기띠와 힙시트에 의존해 아기들이 보러 온 공연은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 초청작인 스웨덴 작품 <마음의 정원>. 12개월 이하 아이들을 위한 영유아극으로 설치미술과 무용, 음악이 섞인 다원예술극이다. 무대와 객석이 하나인 공연장은 엄마 자궁처럼 어둡고 따뜻한 느낌을 풍겼다. 천장엔 다양한 천으로 만든 모빌이 낮게 매달려 있었고, 바닥엔 반짝이는 조약돌 느낌의 풍선들이 놓여 있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온 아이들이 자유롭게 착석하자 두명의 무용수는 반짝이는 의상을 입고 관객들 사이로 춤을 췄다. 심장박동 소리 같은 음악에 맞춰 쿵쿵 발소리를 내고, 새처럼 푸드덕거리며 아이들과 시선을 맞췄다. 공연장이 낯선지 칭얼대기도 하던 아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기어서 무대를 가로지르고, 조약돌 풍선을 입으로 빨아대고, 그림자놀이 하듯 헝겊에 비친 그림에 손을 뻗었다. 공연이 맘에 드는지 한 아이가 박수를 치며 외쳤다. “아부부부~”
‘베이비드라마’ ‘베이비시어터’로 불리는 영유아를 위한 공연(0~3살)들이 최근 눈에 띈다. 5~7살 아이들을 위한 작품을 주로 선보였던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는 연령을 낮춰 12개월 이하 아이들만 볼 수 있는 <마음의 정원>을 선보였고, 국립극단은 2년에 한번씩 여는 아동청소년극 페스티벌로 이달 19~21일 열었던 ‘한여름밤의 작은 극장’에서 처음으로 영유아극 <하늘아이 땅아이>(6~18개월), <꿈은 나의 현실>(12~36개월)을 무대에 올렸다. 지난 5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등이 주최한 문화예술교육축제 국제심포지엄 주제도 ‘영유아, 어린이를 위한 문화예술교육’일 정도로 최근 영유아극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공연장 입장이 불가했거나 ‘어린이 관람가’ 식으로 연령대가 너무 넓어 공연을 즐기기 어려웠던 생후 36개월 이하 아이들을 위한 콘텐츠가 점차 늘어나는 분위기다.
12~36개월 유아들을 위한 베이비드라마 <꿈은 나의 현실>. 국립극단 제공
유럽에선 수십년 전부터 영유아를 위한 예술 콘텐츠를 풍성하게 선보여왔다. <마음의 정원>을 선보인 스웨덴 연출가 달리야 아신은 “일본은 베이비드라마라는 장르가 있고, 유럽에선 따로 장르를 나누진 않지만 3살 이하 콘텐츠가 많다”고 했다. 국내에선 2010년 8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6개국 30여명의 아동극 전문가들이 참여했던 ‘베이비드라마 페스타’ 이후 극단 사다리, 극단 민들레 등 민간 극단에서 간간이 영유아극을 펼쳐왔다. <꿈은 나의 현실>을 만든 전유진 연출가는 “우리 사회엔 영유아들이 공연을 봐도 이해하기 어려울 거다, 가르쳐야 한다 같은 편견이 있다”며 “이 시기 아이들은 하나를 알면 열을 깨칠 만큼 감각이 열려 있는 때인데 이들을 위한 공연은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립극단이 이번에 선보인 두 작품은 민간단체의 공연을 국립극단이 지원하는 형식이었다. <하늘아이 땅아이>는 기쁨, 슬픔 등 인간의 7가지 감정을 파스텔톤 쿠션으로 표현하며 자연의 소리를 들려줬다. <꿈은 나의 현실>은 동화구연처럼 시작해 동물인 곰과 인간인 안나가 우정을 나누는 과정을 보여줬다. 공연 도중 곰이 겨울잠을 자듯 탈과 의상을 벗고 코를 골자 한 아이가 “아빠?”라고 반응해 객석에서 웃음이 터지는 등 아이들은 의외로 30분짜리 공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늘아이 땅아이>를 보러 9개월 된 아기와 함께 온 관객 김서진씨는 “키즈카페 가면 뽀로로 탈도 무서워하는 아이가 암전이 있는 공연을 어떻게 볼까 걱정했는데 잘 적응해 놀랐다”고 말했다.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에서 선보인 12개월 이하 영유아극 <마음의 정원>.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 제공
영유아극은 대체로 비언어극이 많고 30분 정도로 공연 시간이 짧다. 아기를 대상으로 하지만 부모들이 함께 보기 때문에 아이와 부모가 함께 볼 수 있는 내용이 필요하다. 관람 방식은 자유롭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기저귀를 갈거나 수유를 할 수 있도록 출입이 자유롭고, 아기들이 울어도 양해가 된다. 그러나 수유실 같은 시설이 필수적이다. 10개월 된 아기와 <마음의 정원>을 본 관객 서민정씨는 “극장에 수유 시설이 없다고 따로 공간이 마련됐는데 춥고 불편했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방지영 아시테지 코리아 이사장은 “영유아극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나 노력은 성인극 한편과 견줄 만한데 관객수를 제한하기 때문에 민간단체가 주도해 만들기엔 어려움도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 이사장은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가 지난해부터 영유아극 연구를 시작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예대에 아동·청소년극 과목이 생겨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영유아극이 좀 더 많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앞날을 밝게 전망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