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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21세기의 앤, 진화한 여성상

등록 2019-07-14 18:23수정 2019-07-15 11:54

넷플릭스 ‘빨간 머리 앤’

원작의 긍정 아이콘서 나아가
페미니스트로서의 면모 부각
인종차별·동성애 이슈 등 품고
“왜 안되냐” 내면의 성장 담아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 머리 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 머리 앤>. 넷플릭스 제공
27년 만에 실사로 탄생한 <알라딘>의 재스민은 왕자를 만나 결혼하는 대신 스스로 왕이 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여자는 술탄(왕)이 될 수 없다”는 아버지의 말에 “왜 안 되냐”고 반발한다. ‘디즈니 공주’도 달라지는데, 하물며 ‘우리들의 소녀’가 과거에만 머물러 있겠는가. ‘21세기 앤’은 명작만화 속 절대 긍정 아이콘을 넘어 진보적 여성으로 거듭난다.

캐나다 <시비시>(CBC)가 제작하고 넷플릭스가 선보인 <빨간 머리 앤>(시즌1 2017, 시즌2 2018년)은 이 시대를 온몸으로 흡수한 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인 모이라 월리-베킷은 시즌1 공개 당시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앤을 ‘우발적인 페미니스트’로 설정했다”며 “지금의 방식으로 원작을 이야기해 나가고 싶었다”고 밝혔는데, 과연 앤은 페미니스트로서의 면모를 당당히 드러낸다. 원래는 마릴라 남매가 남자아이를 입양하길 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여자는 왜 일을 못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라고 쏘아붙이고, “젊은 여자는 아내가 되는 수업을 받아야 한다”는 목사의 말에 혼란스러워하다가도 ‘롤모델’인 조세핀 할머니의 조언에 따라 “자립한 여성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드라마는 진보적 여성들의 모임을 통해 여성 교육과 사회 개혁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대놓고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다.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 머리 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 머리 앤>. 넷플릭스 제공
원작 만화에서도 앤은 자주적이고 독립적이었지만 드라마는 한발 더 나아간다. 특히 시즌2에선 노예제 폐지 뒤에도 여전한 인종차별 문제와 동성애, 성평등 이슈에 깊게 접근한다. 길버트는 증기선 선원으로 일하면서 만난 흑인 베시가 여전히 백인들에게 노예취급을 당하는 걸 목도하며 각성하게 되고, 원작 소설에선 완고하면서도 든든한 앤의 후원자로만 나왔던 조세핀 할머니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앤은 편견없이 동성애를 사랑으로 받아들인다. 앤의 친구이자 성소수자인 콜의 커밍아웃 역시 보수적인 시대 배경에서는 놀라운 변화다.

아동학대, 왕따 등이 만연한 요즘 시대에 골똘히 생각해볼 만한 지점도 많다. 앤이 왜 저렇게 수다스러운지, 왜 상상의 세계를 헤매는 것인지, 왜 빨강 머리에 콤플렉스를 갖게 됐는지 이해하게 된다. 보육원 아이들한테 당한 괴롭힘, 어른들의 구타 같은 비참한 현실을 잊기 위해 부모가 왕실에서 일했다는 둥의 허황된 상상을 하고, 주변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해댄다. “친구가 될 자격이 있다는 걸 최선을 다해 증명할게”라는 앤의 말이 마음 아픈 이유다. 앤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딛고 일어서는 성장기는 마음 저릿한 희망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 머리 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 머리 앤>. 넷플릭스 제공
마냥 해맑았던 만화와 달라서인지, 시즌1 공개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나의 앤이 아니야(notmyanne)라는 해시태그까지 등장했을 정도로 충격에 휩싸인 이들도 많았다. 그래서일까, 시즌1은 방영 당시는 큰 화제를 모으지 못했지만, 입소문을 타며 시즌2가 만들어졌고 시즌3이 제작에 들어갔다. 1800 대 1을 뚫고 선발된 앤 역의 에이미베스 맥널티(18)의 연기도 인기에 한몫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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