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연출 김원석 피디. <한겨레> 자료 사진
에이(A)4 용지 14장. 구구절절 긴 답변에서 복잡한 속내가 읽힌다. <아스달 연대기>(티브이엔) 김원석 피디는 지난달 1일 1회가 나간 이후부터 하루가 1년 같은 시간을 보내왔다. 모든 드라마를 평정할 거라는 기대와 달리 뚜껑 열기 무섭게 “유치하다” “엉성하다”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익숙하지 않은 장르여서 호불호가 갈린 것”(김원석 피디)이라고 넘기기에는 심상치 않다. 김원석 피디가 둘러싼 논란에 대해 9일 서면으로 대답했다.
<아스달 연대기>는 태고의 땅 ‘아스'에서 서로 다른 전설을 써가는 영웅들의 이야기다. “공간적 배경은 ‘아스’라는 가상의 대륙이고 시대적 배경은 청동기다.” 상상 속에 존재하는 태고 시대를 창조했다는 점은 이 드라마의 부인할 수 없는 가치다. 아스달, 이아르크, 뇌안탈 등 부족을 넘어 건축물까지 연구하며 하나의 세계를 건설했다. 그는 “태고의 자연환경과 발달된 청동기 문명의 화려함을 모두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스 양식’은 가상의 대륙이지만 갑골문 시대의 중국 문자를 쓰는 걸로 설정했고, 청동기 문명의 건축물은 실제 이집트 건축물 등에 많이 남아 있다. 아스 문명을 동양과 서양의 경계쯤에 있다고 생각하고, 혼재된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뇌안탈어 등 언어를 드라마에서 만들어낸 점은 신선하다. “발음은 언어학자의 자문을 받았다. 단어를 조어하는 과정에서 애너그램을 사용했고, 문법체계와 규칙, 시제, 인칭, 격식 표현 등도 만들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것 외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그는 “작품이 어려울 수 있어 초반 이야기 진행 속도를 빠르게 하지 않고 세계에 대해 익숙해지는 시간을 갖고 그 안의 인물을 따라갈 수 있게 유도했다”지만 촘촘하지 않은 전개는 시청자들을 흡인하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부족들의 이야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데, 각 종족들이 따로 노는 느낌이 강하다.
의도와 달리 인물들의 내면 변화가 섬세하게 드러나지 못한 탓이다. 김원석 피디는 드라마 <미생> <시그널> <나의 아저씨> 등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인물의 심리를 세밀하게 담아내는 재주가 탁월하다. 하지만 등장인물이 50명 가까이 나오는 방대한 드라마에서 한명 한명 보듬지 못한 듯 보인다. 그는 “드라마 안의 사람이 보이도록 하는 것은 어떤 드라마를 연출하든 첫번째 목표다”며 “한번도 다룬 적 없는 시대의 인물에게 어떻게 하면 시청자가 빨리 감정 이입 하게 할 것인가를 가장 신경썼는데, 그런 반응들이 나오는 건 나의 부족함 탓이다”고 말했다.
스스로 이전과 다른 접근 방식의 드라마에 고뇌가 깊었다. 그는 “고대사와 문화인류학이 인간에 대한 애정과 함께 재미있는 영웅 이야기 속에 잘 녹아든 대본을 읽고는 가슴이 뛰었다”면서도 “하고 싶은 마음과 해내지 못할 것의 두려워하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했다”고 말했다. 이 드라마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도 “<아스달 연대기>가 한계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에 없던 시도를 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은 내비쳤다. “이러한 시도가 앞으로 더 나올 수 있을 정도의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스달 연대기>는 근로시간을 준수하지 않아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로부터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고발당하는 등 시작부터 삐걱댔다. 그는 “연출로서 책임을 느낀다”며 “주로 한 팀으로만 촬영을 해왔는데 에이(A)·비(B)팀으로 나누고 하루 14시간이 넘어갈 경우 낮신과 밤신을 나누어 하루에도 두 팀을 돌리겠다”고 말했다.
파트1(1~6회)·2(7~12회)로 나눴던 드라마는 9월7일부터 나머지 파트3(13~18회)을 방영한다. 그는 <아스달 연대기>가 “세상을 바꿀 운명을 타고난 인물들이 역경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스스로 자신을 증명해 내는 이야기”라고 정리했다. 드라마의 흐름을 바꿔왔던 그도 지금 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을 증명해 낼까? 그는 “파트1·2가 주인공들이 역경과 고난을 통해 성장하고 각성하는 내용이라면 파트3은 각성한 인물들이 세상을 바꿀 힘을 얻어가는 과정이다”며 “끝까지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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