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 한국공연예술센터가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며 팝업씨어터 공연을 방해하고 취소한 사건이 발생하자 연극인들이 서울 대학로 대학로예술극장 앞에 모여 진실 규명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대표적 사건인 ‘팝업씨어터’ 피해자들을 오는 19일에 만나 공개사과할 예정이다. 블랙리스트 작성과 시행에 관여한 정부 기관들이 블랙리스트 사태를 두고 대국민 사과를 한 적은 있어도 개별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직접 공개사과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사과는 지난해 말 문화체육관광부가 ‘블랙리스트 책임규명 권고안 최종 이행방안’을 내놓은 뒤 이뤄지는 후속 조처 중 하나다.
예술위 산하 한국공연예술센터가 개입했던 ‘팝업씨어터’ 사건은 2015년 10월18일 벌어졌다. ‘카페, 공원 등 일상의 공간을 놀이터로 만들자’는 의도로 기획된 팝업씨어터 공연 중 하나로 이날 연극 <이 아이>(김정 연출)가 서울 대학로 대학로예술극장 안 씨어터카페에서 공연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공연 시작을 앞두고 주최 쪽으로부터 공연 불가 통보, 카페 내 의자 및 테이블 이동 금지 등 조직적인 방해를 받았다. 수학여행 중 죽은 아이가 나오는 장면이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 아이> 공연이 파행을 겪은 데 이어 차기 공연작이던 <불신의 힘>(송정안 연출), <후시기나 포켓또>(윤혜숙 연출)도 대본 검열을 받았다. 블랙리스트와 검열이 작동된 사실을 연극계와 언론에 알린 공연예술센터 문화사업부의 김진이 대리는 이후 인사에서 불이익을 겪다 끝내 퇴사했다.
예술위는 피해자들을 만나 사과하기에 앞서 8~19일 12일 동안 예술위 누리집에 공개사과문을 띄운다. 사건이 발생했던 대학로예술극장 건물 외벽, 씨어터카페 내부 등에도 사과문이 담긴 대자보를 건다. 예술위는 이 사과문에서 “2015년 10월 팝업씨어터 사태 공론화 이후 문제 해결을 위한 예술가들의 수차례 항의와 시위가 진행되었고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결과가 밝혀졌음에도 그동안 적극적인 후속 조처를 하지 않았다”며 세 연극의 공연팀(연출, 배우 등)과 함께 팝업씨어터를 담당하면서 조직의 불합리한 지시를 따르지 않고 불이익을 감수한 김진이(무기계약직)·김준수(파견직)·염한별(인턴)씨 등에게 사과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에 참여했던 한 민간위원은 “팝업씨어터 사건은 블랙리스트 피해 사례 중 유일하게 행정기관 직원이 내부고발자가 돼 세상에 알린 상징적 사건”이라며 “블랙리스트 사태가 지난해로 모두 마무리됐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블랙리스트 방지 법제화 문제 등 후속 조처들이 남아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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